연애의 국경
정글은 손과 손 사이에 있다
내가 너에게 손을 내밀 때 사실은 뿌리를 내미는 것이다
대개 잠복기를 갖지만 잠복기 없는 케이스가 발견되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 정글은 순식간에 확장된다
이때 국경이 발생한다
국경은 외부에 있지 않다 정글의 국경은 정글의 내부에 있다
국경은 생태학적으로나 지리학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손과 손이 맞닿는 순간의 일
그러니까 정글의 국경은 사건이다
언젠가 한번 정글을 여행한 적이 있다
정글을 걸으며 사람의 몸에서 먼저 사라지는 것은 말이다
우리는 느낌을 확장한다
뿌리를 더듬으며 걷지만 뿌리를 내리지는 않는다
손을 내밀어 서로의 국경을 더듬는다
그러니까 연애는 국경과 국경이 만나는 일이다
네 쪽으로 국경을 확장하는 일이다
나도 너처럼 정글의 빗소리가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다
계산된 섹스 의미 없는 회화, 이때 정글은 귀와 귀 사이에 있다
나는 너에게 귀를 내민다
사실은 장전된 총의 방아쇠를 내미는 것이지만
나는 방아쇠를 당기고 너는 국경 어디선가 사살된다
정글은 폭발하고 국경은 스스로를 확장한다
내가 너에게 손을 내밀 때
사실은 팽팽한 밖을 내미는 것이다
―여성민
◆
[산책]
정글은 손과 손 사이에 있다
손과 손 사이엔 무엇이 있는가?
시인은 이를 정글이라고 부른다.
정글이란 무엇인가?
거대한 식물들이 자라고, 맹수가 들끓고, 생존의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한 마디로 정글이란 전쟁터, 한복판이다.
내가 너에게 손을 내밀 때 사실은 뿌리를 내미는 것이다
사랑은, 연애는 손을 잡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실 손을 잡으면 다 끝난다.
손을 내밀 때, 손을 잡는다는 것은 이미 나를 너에게 준다, 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이미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손을 주고 나면 …… 그다음 순서는 사실상 일사천리다.
국경은 외부에 있지 않다 정글의 국경은 정글의 내부에 있다
손을 잡는 순간, 경계는 사라진다.
그러니까 국경은 밖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 것이다.
손과 손이 맞닿는 순간의 일
그러니까 정글의 국경은 사건이다
국경은 지리적인 경계가 아니라 존재와 존재의 만남인 사건인 것이다.
손을 내밀어 서로의 국경을 더듬는다
그러니까 연애는 국경과 국경이 만나는 일이다
네 쪽으로 국경을 확장하는 일이다
손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가?
손이 속삭이는 작은 소리에 귀기울였던 적이 있던가.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의 손
화가나 조각가의 손은 말할 것도 없고,
농부와 노동자의 손
어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을 때
애인이 뺨을 쓸어내릴 때
그 손이 말하는 애틋한 소리에 마음이 움직였던 기억이 얼마나 많은가.
손은 마음을 확장하고, 손은 마음으로 들어온다.
국경을 허물면서.
계산된 섹스 의미 없는 회화, 이때 정글은 귀와 귀 사이에 있다
나는 너에게 귀를 내민다
사랑이 매너리즘에 빠질 때가 있다.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고, 마음을 돌보지 않는다.
사실은 장전된 총의 방아쇠를 내미는 것이지만
나는 방아쇠를 당기고 너는 국경 어디선가 사살된다
정글은 폭발하고 국경은 스스로를 확장한다
고흐처럼 귀를 내민다.
사랑이 거부당할 때
혹은 그 사랑이 차고 넘칠 때
나는 누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것일까.
내가 너에게 손을 내밀 때
사실은 팽팽한 밖을 내미는 것이다
손을 잡기 위해 손을 내미는 것일까.
손을 내밀어 너를 내치는 것일까.
국경의 밖은 어디일까.
손을 잡을 때 우리는 국경의 안쪽에 있다.
그러나 너를 밀어낼 때 국경은 내 영역 밖에 있다.
닿을 수 없다.
단지 손과 손 사이를 가로지르는 국경이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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