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시] 시간을 마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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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창작시] 시간을 마중하다

by 브린니 2023. 3. 26.

시간을 마중하다

                        ―길병민 노래를 들으며

 

 

문득 새벽 두 시에 깨어나

그는 피아노 치는 형을 불러내

노래를 부르러 갔다

그는 늘 노래가 아니라 울음을 불렀다

야수처럼 맹수처럼

 

사람이 아닌 것처럼

그의 노래는 너무 치명적이어서

자기 자신의 가슴을 찢었다

 

불행하다는 것은 천국이 아니라 이 땅에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외부로부터 들이닥치는 부당한 고통과 불행을

아무에게도 호소하지 않고 삼킬 때

타인에게 치료제가 되었다

 

고통만이 인간이 신보다 위대해지는 순간이다

 

청춘시절 서울의 외곽은 어두웠고

추억을 파는 것은 비겁한 자의 변명일 뿐

과거는 미래를 위한 알리바이가 아니다

 

그는 노래할 뿐

그는 침묵할 뿐

이유를 알 수 없는 타인들이

그의 찢긴 가슴을 엿보며

경이에 휩싸여 정신을 잃는다

 

시간은 망각되지도

되찾을 수도

두 번 경험할 수도 없지만

미래로부터 오는 당신을 마중할 수 있다

 

피의 꽃을 가슴에 품고

막 꺼낸 심장을 손에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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