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찰스 부코스키 <첫 숨에 산산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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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찰스 부코스키 <첫 숨에 산산조각>

by 브린니 2022. 11. 9.

첫 숨에 산산조각

 

 

남은 날들은 부족한데

이른 아침 햇살에

난간이 반짝인다.

 

우린 꿈에서조차

쉴 수 없을 거야.

 

이제 해야 할 일은

조각난 순간들을

다시 맞추는 것

 

생존이 승리처럼

느껴질 때

행운은

가냘프다

 

죽음을 향한 혈류보다 더

가냘프다.

 

인생은 서글픈 노래.

너무 많은 목소리가

들려오고

 

너무 많은 얼굴

너무 많은 몸뚱이가

보인다.

 

최악은 그 얼굴들.

그것은 아무도 이해 못 할

질펀한 농담.

 

당신의 두개골 안에는

야만적이고 무의미한 날들뿐.

현실은 즙이 없는

오렌지.

 

계획도 없고

탈출구도 없고

신성함도 없고

기뻐하는

참새도 없구나.

 

우리의 인생이 그 무엇에 비견될 수 있으랴.

그래서 전망이

난망한 게지.

 

우리의 용기는 비교적

부족한 적은

없었으나

 

승산은

최고일 때도

요원했고

최저일 때는

철벽이었다.

 

최악은

우리가 그걸

허비한 게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허비되었다는

.

 

자궁에서

나와

빛과

어둠에

갇혀

 

찌들고 무감각한 상태로

 

말로 못 할 고통의 온대 안에

홀로 있는 꼴일세.

 

지금

 

남은 날들은 부족한데

이른 아침 햇살에

난간이 반짝인다.

 

찰스 부코스키

 

 

산책

 

남은 날들은 부족한데

이른 아침 햇살에

난간이 반짝인다.

 

어느 날 아침 문득

문을 열고

(우유나 신문을 집어들 때)

보니

난간이 빛에 반짝거린다.

 

당신이 살아온 날이 짧다면

혹은 당신이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 없다면

 

아니면 당신 자신이 아주 젊다면

 

그 반짝거리는 빛의 느낌이 아주 다를 것이다.

그것의 의미나 가치가 따위가.

 

 

그 햇살과

반짝이는 난간을 보며

우리는 잠시 생각에 빠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꿈에서조차 쉬지 못하고 일에 쫓겨 왔을 수도 있다.

퍼즐이 맞지 않는 사건들, 상황들, 문제들

 

비록 아직 생존하고는 있지만

행운은 우리의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인생이 서글프다고 생각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을 테고

여러 사람들의 입바른 충고와 험담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얼굴들이 너무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얼굴들을 계속 마주하며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농담과도 같다.

(진담보다 더 진하고 거부할 수 없는 농담?)

 

현실은 늘 메마르고 신맛 나는 날들의 연속이다.

더 이상 어떤 계획을 세울 수도 없다,

 

비상구는 없고,

신성함이란 찾을 수 없다.

 

기쁨이라곤 느낄 수 없고,

앞으로의 전망은 암울 그 자체!

 

용기가 있었지만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보다 앞서 비겁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었으니까?)

 

태어나면서부터 죽어가는 것이 인생이다.

 

빛과 어둠은 하루에 두 번씩 반복되고

그 사이에서 살아가고 동시에 죽어간다.

 

 

이제 무엇을 생각해보아야 하는가.

 

난간에 빛이 맺힐 때

 

잠과 깸

 

하루

 

인생의 날들

 

직업과 소득

 

꿈 대신 일상

 

이런 것에 대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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