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시] 병든 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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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창작 시] 병든 뮤즈

by 브린니 2022. 8. 21.

병든 뮤즈

 

 

1

 

정오가 지나면서 구름을 걷고 나온

햇살이 고와서

장마와 가을의 중간 어디쯤 

마음이 서성이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나뭇가지들 사이를 직선으로

가로지르는 햇빛

빛과 빛의 틈으로 도시의 옆모습이 언뜻 열리고

아이들이 노란 버스에 올라탑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변덕이 죽 끓는 듯한 아이의 마음을 늘 토닥여야 하니까요

 

코로나 후유증이 깊은 아내는

역류성 후두염으로 고생하지만

우울에 빠지지 않으려고……

그래, 바다를 보러 떠나자

 

 

2

 

눈앞에서 바다는 점점 뒤로 물러서고

연한 갯벌이 평화롭게 열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바다를 밟고 구름 속으로 걸어 들어갈 것 같습니다

파도는 연인의 거친 손처럼 까슬하게 피부를 자극합니다

여기서는 사람도 그저 풍경으로 박혀 있으니

다칠 일도 피 흘릴 까닭도 없습니다

 

토요일 오후까지 일하다 폭발할 것 같은 짜증을 가라앉힙니다

 

사람들은 사람이 많은 곳으로 점점 더 모여듭니다

한적하고 텅 빈 곳은 시시해 보여서일까요

이곳에서는 어떤 상처도 아픔도 없어 보입니다

카페의 이름은 1950입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시간에 전쟁을 기억하라는 뜻일까요

사람들은 부동산 시세를 이야기하며 해물 파스타와 소금빵을 먹습니다

 

이국 도시 이름을 새긴 해변의 파라솔 아래

사람들은 인공모래를 덮고 버려진 듯 드러누웠습니다

희고 살진 소파는 소나무 풀밭에서 나이 든 남자들을 유혹합니다

한쪽 바퀴가 커다란 자전거가 갯벌과 파도 사이에서 빙빙 돌다가 멈춥니다

노을은 등대 저쪽에서부터 세상을 물들여 옵니다

 

가끔은 싸우다시피 매초 최선을 다했던 일상도 쉴 때가 오겠죠

 

병든 뮤즈는 마음 깊은 집을 읽고

시를 쓰는 개는 물로 지은 집에서 하품을 하고 있습니다

저녁에는 간장게장을 먹을까

짭조름한 상상에 빠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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