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시] 독일 가곡 연주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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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창작 시] 독일 가곡 연주 듣기

by 브린니 2022. 8. 17.

독일 가곡 연주 듣기

소프라노는 목이 파인 드레스를

피아니스트는 옛날 고등학교 교복 같은 복장을

피아노는 스타인웨이 앤 선즈

그들은 모두 장례식에 온 듯 검은색이었다

아내는 공연 카탈로그 가사를 꼼꼼히 살피며 외국 노래를 감상할 준비를 단단히 하는데

나는 가수의 목소리와 기교

독일어가 주는 음성학적 풍미를 즐기면 족하다고 여겼다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이 예술을 향유하는걸 가로막을 뿐이라며

성악가는

깔끔하고 단단한 목소리에

오페라 아리아에 어울리는 조금은 과한 동작으로 슈만을 불렀다

곡은 너무 짧았고 독일어가 전달하는 묵직하고 깊은 감정을 맛볼만 하면 이미 끝나 있었다

연가곡 열두곡이 쉼없이 이어지자 살짝 졸리기까지 했다

아 이러면 아내의 감상법이 승리를 거둘 톈데

정신을 차리자 1부가 끝났다

막간에 아내는 슈만곡의 섬세하고 깊은 감정 전달이 약간 아쉽다고 말했고

나는 차라리 아리아를 부르면 맛이 날 것 같다고 평했다

카탈로그를 드문드문 살피고 후반전에 임했다

소프라노는 강렬한 고음을 내뿜었고 관객들은 환호했다

멋졌지만 나는 그녀가 슬픔을 노래하는지 고통과 분노를 토하는지 아니면 사랑의 환희에 들떠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내가 단지

독일어만 못 알아들은 것일까

아내의 감상법과 취향이 달랐 뿐일까

당신이 했던 숱한 잔소리 같은 말의 의미와 감정을 이해 못한 것은 아닐까

그런 귀머거리로 얼마나 같이 살아왔는가

지금 당신은 그때와 다른가

나는 좀 달라졌는가

가곡의 한결같은 가사처럼

젊은 날의 아름다움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날씨와 빗소리와 한낮의 태양과 어스름 노을 파도와 바위와 도시의 산책길에 내리던 희고 고운 눈, 눈들

사람을 다 덮은 그 흰새들은 다 어디로 떠났는가

늙으면서 사랑을 재발견한다는 것이 진정 가치 있는 일인가

오십 넘어 신세계를 발견하는 것이

개가 시를 쓰는 것처럼 가당키나 하는가

가수는 달콤하고 행복하고 지독히 아름다운 오페라 아리아로 대단원을 장식하고

우리는 일어서서 박수를 친다

노래를 평한 것을 잊고

인생을 탓한 것을 잊고

우리는 한테 어울려져 소리치며 하나의 감정을 공유하며

기쁨에 떤다

독일어든 우리말이든

사랑을 노래하든 슬픔과 절망을 부르든

인생은 살아 있으니 눈물겹고

사랑할 날이 아직 남았으니 고맙다

고맙다 나의 연인 클라라여

사랑하는 아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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