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시] 뼈에 대한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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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창작 시] 뼈에 대한 명상

by 브린니 2020. 6. 10.

뼈에 대한 명상

 

 

마트에서

싼값에 냉동 갈치를 샀다

구워보니 살이 너무 얇아

프라이팬에 들어붙어 먹을 수 없다

뼈를 다 발라놓은 종잇장 같은 갈치

조림으로 상에 올려도 무보다 살이 없다

 

역시, 생선엔 뼈가 있어야 한다

세상 모든 것에 뼈가 들어 있다

날렵하게 휘는 뱀의 몸뚱어리에도

새들의 날개 속에도 도사리고 있다

 

공룡 화석에도 세월의 뼈가 찍혀 있고

고고학은 뼈에서 비롯되었다

뼈는 인류의 역사를 말한다

등뼈를 곧추 세우면서 비로소 사람이 되었다

 

헤겔은 말했다. 정신에 뼈가 있다.

아, 말에도 뼈가 있다!

독이 되고, 가시로 박힌다

 

생선을 놓고 논쟁하는 저녁식사

녹슬고 부러진 칼이 올라와

아내의 가슴을 베고 남편의 배를 가른다

 

피가 낭자한 식탁

이제야,

이 집 부부가 사는 맛이 우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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