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임솔아 <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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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임솔아 <여분>

by 브린니 2022. 5. 24.

여분

 

 

우두둑, 뜯어지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내 머리가 떨어져

바닥을 굴러다니다가 사라졌고

나는 죽었구나

그랬는데

​​

얼마나 더

여분의 목숨이 남아 있을까.

차가운 무릎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면

무릎이 녹아내린다.

무릎이 사라져간다.

사라지고 있는데

살 것 같다.

나를 살게 하는 것들과

나는 만나본 적이 없다.

내 심장은 어떻게 생겼을까.

빨갛고 예쁠까.

무릎에 눈꽃이 피고 있다.

코트를 열어 무릎을 집어넣고 감싼다.

코트 안쪽에 달려 있는 여분의 단추에

나와 닮은 얼굴이 있다.

까맣고 동그랗구나

​했는데

―임솔아

 

 

【산책】

 

코트에서 단추 하나가 떨어졌다.

혹은 한꺼번에 여러 개가

우두둑.

 

눈 코 입 다 뚫려 있고,

내 얼굴과 닮았다.

 

코트에서 단추들이 다 떨어지고 나면

무릎이 시리다.

 

코트를 잡아돌려 무릎을 감싼다.

무릎이 녹아내리듯 따스해진다.

 

 

여분의 단추는 코트 안쪽에 있다.

나의 얼굴과 닮은.

 

그런데 내 머리가 떨어져 나가면

몇 개의 여분이 남아 있을까.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 것들

머리나 심장 등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그것들을 만난 적이 없다.

머리나 심장이 죽으면 나는 죽는다.

 

정작 살아 있는 것은 나인가

아니면

머리나 심장인가.

 

코트 단추의 여분이 몇 개 남아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일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일이

나의 존재와

목숨과

나의 살아 있음과

뭐, 그런 것들을 상기하게 만드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나는 왜 태어났으며

왜 살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으며

죽은 뒤

어떻게 살게 될 것인가.

 

죽은 뒤에도 살아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

등등.

 

현타가 오고,

다시 나에 대해 생각해보고,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만 더 깊어질 뿐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는 질문들,

질문들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쨌든 일상을 살면서 이런 생각들을

문득

하게 ,되면

 

정말 기분 더럽거나

오히려 뭔가, 뿌듯해지는 느낌,

상반되고 역설적인 감정!

 

살아있구나,

혹은

죽는다면?

 

모든 것이

왜?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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