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이이체 <인간은 서로에게 신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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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이이체 <인간은 서로에게 신을 바친다>

by 브린니 2022. 5. 22.

인간은 서로에게 신을 바친다

 

 

 

많은 이별을 겪다 보면

사랑이 이제 우리의 외곽일 뿐인 시간이 온다

 

내면이라니

제 속만 헤집느라 상한 그 동굴 속

박쥐들처럼 흉터가 거꾸로 맺히고

 

살갗이 조금이라도 쓰라리면

마음의 사도들이 경을 왼다

 

한 생의 물혹이 몸에 머무는 동안만

착오한다

 

밤의 언저리

 

성운은 월식으로 흐르는 열외의 구름

 

작고 무거운 종들은 바깥의 가장자리만 가진 탓에

흩어지지 못한다

다 흩어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함부로 마주 보아선 안된다

서로의 사악함을 알고도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미친 자들의 눈

눈의 유해(遺骸)

 

―이이체

 

 

【산책】

 

 

많은 이별을 겪다 보면

사랑이 이제 우리의 외곽일 뿐인 시간이 온다

 

쉽게 말해 많이 차이다 보면

사랑은 나와는 상관없는 것 같아진다.

 

외곽,

나의 존재 밖,

그곳에 사랑이 있다.

 

사랑의 장소는 나의 바깥이다.

 

정말 불행하다.

 

사랑을 하려면 나의 존재 밖으로

나를 열고 나가야 한다.

 

 

그렇다.

사랑이란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하는 것이므로.

 

나는 내 속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고,

나의 바깥으로 나가

다른 존재에게로 가야 한다.

 

심지어

그 존재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는 것

그것이 사랑이니까.

 

 

사랑이 없는

내면의 동굴에선 박쥐가 들끓고

쓰라린 속을 부여잡고, 통곡을 한다.

 

마음에 암덩어리가 자라고

빛이 보이지 않는다.

 

몸은, 혹은 마음은 속이 뻥 뚫린 채

껍데기만 남아 울리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함부로 마주 보아선 안된다

서로의 사악함을 알고도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사랑이 눈에서

서로를 향하는 시선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아채고 있다.

 

눈이 맞았다.

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누군가는 유혹할 때 강렬한 눈빛을 보내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기술은 없다.

그때의 눈빛보다 더 사악한 것도 없으리라.

 

눈의 사랑.

눈이 뒤집히는,

 

미친 자들의 눈

눈의 유해(遺骸)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모두 다 미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눈의 시체들이다.

 

 

사랑에 빠지는 것도 어렵고,

그 사랑에서 헤어 나오는 것도 어렵고,

이별 후는 더욱 어렵다.

 

사랑은 그 자체로 어렵고,

사랑 없이 사는 것도 어렵고,

사랑을 하면서 사는 것도 쉽지 않다.

 

그냥 사는 것도 정말 어렵다!

 

삶과 사랑,

신은 인간에게 이웃을 사랑하라는 축복을 내렸고,

인간은 그것을 신에게 돌려주고 싶어 한다.

 

아니다.

인간은 서로를 사랑하는 대신 신을 선물한다.

 

신은 이제 인간 속으로 들어온다.

 

역설적으로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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