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이영주 <교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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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이영주 <교회에서>

by 브린니 2022. 5. 26.

교회에서

우리가 등밖에 없는 존재라면 온 존재를 쓸어볼 수 있다

우리는 왜 등을 쓸어내리면서 영혼의 앞 같은 것을 상상할까

등을 만지면 불씨가 모여 있는 것처럼 따뜻하다고 생각했어

너는 의자에 앉아 있다

구부린 채 도형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다

형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 때문에

등은 점점 더 깊어진다

이렇게 하면 붉은 동그라미밖에 남질 않는데

그렇다면 마음의 형식이라는 것이

네 등에 얼굴을 묻으면서 불처럼 타오르고

무너지는 네 안으로 들어가

흩어지는 영혼 앞부분으로 번져가는데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알 수가 없어서 함께 불탄 것이겠지

누군가가 내 등에 기름을 흘린다

몸을 구부리고 눈물을 흘리면 오래 묵은 기름 냄새가 난다

어른은 죽는다는 것이다

죽지 않으면 어른이 될 수 없겠지

이런 기도문을 쓰고

엎드린 채 기도를 하고 있는 등을 보면 쓸어주고 싶다

이미 불타오르고 있으니 마음을 바치지 않아도 된다고

추운 사람들이 모여 있다

서로를 모르지만 뒤를 보고 있다

―이영주

 

 

【산책】

 

교회에 가면 긴 의자가 가로로 일렬로 정렬하고 있다.

긴 의자에 앉으면 앞사람의 등이 보인다.

등만 보인다? (뒤통수도 보인다)

 

가끔은 앞사람이 등을 구부린다.

기도를 하려는 것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어쩌면 신의 축복을 구하기 위해 고개를 숙인 것인지도.

 

앞사람의 등이 유독 측은해 보일 수도 있고,

매우 강건하고 튼실해 보일 수도 있다.

무너지지 않는 벽처럼 보일 수도 있고,

흐느끼며 울면서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왜 교회는 긴 의자를 일렬로 정렬해놓아서

앞사람의 등만 보게 만든 것일까.

 

내 등은 지금 누가 보고 있는가.

나의 흔들리는 등을 누가 쓰담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망설이고 있을까.

 

 

등만 있는 존재가 있다면 하루종일 쓸고 싶어질까.

두드리고 싶거나 치고 싶거나 구멍을 내고 싶지는 않을까.

 

아, 교회가 아니라면 많은 다른 상황이 펼쳐지겠지.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교회에서라면

앞사람의 등을 토닥토닥, 쓰담쓰담

사랑과 위로의 손길로 어루만져줄 수 있겠지.

 

과연 그럴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교회에선 그래야겠지.

 

 

서로에게 뒤를 보여주는 것,

그것처럼 무방비상태가 또 있을까.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마구 등을 보이다니.

 

그런 등을 서로 보고, 보여주고, 맨마지막 사람의 등은 누가 보는 것일까.

누가 쓰다듬어줄 수 있을까.

 

그런데 등은 누군가 보고 쓰다듬어줄 수 있는데

앞은 누가 어루만져줄 수 있을까.

 

앞은, 얼굴은, 가슴은

부끄러워서 누군가에게 내어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얼굴을 가리고

손을 가슴에 모르고

몸을 웅크리면서

자신을 보호할지도 모른다.

 

서로 눈길을 피하고, 서로 모른 채 할 수도.

 

그러나 등은 무방비로 노출되어

눈을 보고

손으로 쓸어내릴 수 있다.

 

추운 사람들이 모여 있다

서로를 모르지만 뒤를 보고 있다

 

 

만약 (교회에서)

 

추운 사람들이 뒤를 돌아다보면

서로 와락 껴안아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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