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임솔아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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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임솔아 <어째서>

by 브린니 2022. 5. 12.

어째서

 

잊고 있던 꽃무늬 원피스가 잡혔다.

어떻게 이런 걸 입고 다녔을까 의아해하다

의아한 옷들을 꺼내 입어보았다.

죽어버리겠다며 식칼을 찾아 들었는데

내 손에 주걱이 잡혀 있던 것처럼

그 주걱으로 밥을 퍼먹던 것처럼

밥 먹었냐, 엄마의 안부 전화를 끊고 나면

밥 말고 다른 얘기가 하고 싶어진다.

나는 이제 아무거나 잘 먹는다.

잊지 않으려고 포스트잇에 적었지만

검은콩, 면봉, 펑크린, 8일 3시 새절역, 33만 원 월세 입금,

포스트잇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었다.

까맣게 잊어버린 검은콩이 냉장고에 있었다.

썩은 내를 풍기는 검은콩엔 왜 싹이 돋아 있는지.

이렇게 달콤한데, 중얼거리며

곰팡이 낀 잼을 식빵에 발라 먹던 엄마처럼

이렇게 멀쩡한데, 중얼거리며

유통기한 지난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던 엄마처럼

죽고 싶다는 말이 솟구칠 때마다

밥을 퍼서 입에 넣었다.

엄마도 나처럼 주걱을 잡았을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엄마는 매일 주걱부터 찾아야 했을 것이다.

밥맛은 어째서 잊힌 적이 없는지

꽃들의 모가지가 일제히

햇빛을 향해 비틀리고 있는지

경이로움은 어째서 징그러운지.

멈춰버린 시계를 또 차고 나왔다.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꽃 없는 꽃밭에 철퍼덕 앉아보았다.

 

 

―임솔아

 

 

【산책】

 

 

임솔아의 시는 일상의 낯익은 것들을 약간 낯설게 만들어서 일상을 환기한다.

그의 시를 읽으면 문득 나는 잘 살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든다.

 

늘 입는 옷만 입고,

늘 가는 곳에 가고,

늘 앉는 자리에 앉는다.

 

일상은 그래서 일상이다.

크게 달라지는 게 있다면 그것은 일상이 아니다.

 

가끔 일상에 파문이 일 때가 있다.

죽고 싶다고 느낄 만큼 모욕적인 순간도 있다.

 

죽으려고 칼을 쥐었는데

알고 보니

주걱이었다?

그래서 그 주걱으로 밥을 마구 퍼먹는다.

 

다들 그런 적 있을 것이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

양푼에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다 꺼내서 들이붓고

고추장 넣고 마구 비벼서

주걱만 한 수저를 들고 우거적우거적 퍼먹던 기억!

 

 

어째서 부모님들은 밥은 먹고 다니냐고 묻는 것일까.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을 도대체 몇 번이 받아먹었을까.

 

하루 세끼,

1년이면 1,095끼.

10년이면 10,950끼.

20년이면 21,950끼.

 

계산이 맞는지 모르겠으나

2만끼 넘게 부모에게서 받아먹었다.

 

경이롭다.

 

그러니 부모들은 자식을 보면 차려준 밥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를 것이다.

불효자들에게 내가 먹여준 밥이 얼만데, 하고 따질만 하다.

밥을 먹고 다니냐, 하고 물어봐줄 사람이 있다는 것, 감사한 일이다.

 

 

경이로움은 어째서 징그러운지.

 

시인은 이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우리 독자들도 알 수 없다.

 

경이롭다는 것 자체가 일상에선 별로 없다.

 

그래서 막상 경이로운 것과 마주했을 때

징그럽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아, 어쩌면 징그러운 것이 경이로울 수도 있겠다!

 

 

밥맛은 어째서 잊힌 적이 없는지

꽃들의 모가지가 일제히

햇빛을 향해 비틀리고 있는지

 

시에 나오는 이런 말들이 경이로운가?

 

이런 것들에게서도 경이로움을 느끼는 시인이야 말로 징그럽지 않은가.

 

어쩌면 당연한 것들을 경이롭다고 느끼는 것이야 말로

일상에 신화를 더하는 것이 아닐까.

 

일상을 신화의 시간처럼 살면 어떨까.

하루하루가 멋질까.

아니면 망연자실할까.

 

또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 혹은 환상,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꽃 없는 꽃밭에 철퍼덕 앉아보았다.

 

무늬만 있고 꽃은 없는 삶처럼 헛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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