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임솔아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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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임솔아 <아름다움>

by 브린니 2022. 4. 26.

아름다움

 

바다를

액자에 건다.

 

바다에 가라앉는 나를 본 적이 있다.

팔다리가 부식되어

산호가 되어갔다.

 

허옇게 변한 사지가

산호들 사이에 갇혀 있었다

노랗거나 파란 물고기들이 주변을 배회했다.

 

저기 열대어가 있어, 스킨다이버들이

내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젖은 빵을 찢어 던졌다.

아름답다는 말을 산호 숲에 남겨두고

스킨다이버들은 뭍으로 돌아갔다.

 

나를 그곳에 둔 채 나도

꿈에서 빠져나왔다.

 

이곳을 떠나본 자들은

지구가 아름다운 별이라 말했다지만

이곳에서만 살아본 나는

지옥이 여기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

 

나를 여기에 둔 채 나는

저곳으로 다시 빠져나가서

 

정육점과 세탁소 사이에

임대문의 종이를 쳐다보고 서 있다.

텅 빈 상가 속에서 마리아가 혼자

퀼트 천을 깁고 있다.

 

이 액자를

다시 바다에 건다.

 

 

―임솔아

 

 

 

【산책】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는 어디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가?

 

바다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바다를 걸어놓은 액자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바다 속은 얼마나 깊고 푸르고 아름다운가?

 

바다를 꾸는 꿈은 아름다운가?

꿈에서 나는 아름다운가?

 

아름다운 꿈을 그대로 두고 밖으로 나온 나는 아름다운가?

바다의 풍경 못지않게 일상의 풍경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바다에 걸려 있는 바다 액자는 그렇게 아름다운가?

 

 

나를 그곳에 둔 채 나도

꿈에서 빠져나왔다.

 

꿈에서 빠져 나온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를 여기에 둔 채 나는

저곳으로 다시 빠져나가서

 

나를 그대로 둔 여기는 어디이며 내가 빠져나간 저기는 또 어디인가?

아름다운 것은 여기일까, 저기일까?

 

이곳을 떠나본 자들은

지구가 아름다운 별이라 말했다지만

이곳에서만 살아본 나는

지옥이 여기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

 

이곳은 어디일까?

이곳을 떠난다는 것이 지구를 떠나는 것과 같은 것일까?

이곳에서만 산다는 것은 어디에서 산다는 것일까?

이곳은 대한민국 헬조선인가?

 

 

이 시의 제목은 <아름다움>이다.

무엇에 대한 아름다움인가?

무엇을 아름다움이라고 말하는가?

 

어쩌면 임솔아는 아름다움 자체가 손에 잡히지 않는 꿈이라고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모든 것에 대해 의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다와 산호초의 아름다움

바다와 산호초가 나오는 꿈의 아름다움

환상이 지닌 아름다움

결코 지구를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굳게 믿고 있는 지구가 아름다운 초록별이라는 사실?

 

어쩌면 아름다움이라는 환상에 대해 의심하는 것이리라.

그러니까 아름다움이란 어떤 실체가 아니라 환상이라는 것이다.

꿈이나 환상이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환상이라는 것이다.

 

 

정육점과 세탁소 사이에

임대문의 종이를 쳐다보고 서 있다.

텅 빈 상가 속에서 마리아가 혼자

퀼트 천을 깁고 있다.

 

어쩌면 일상의 모습 외에 다른 실체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상은 아름다운 것일까?

 

일상에 어떤 아름다움이 있다면 과연 그 아름다움은 어떤 것일까?

과연 실체를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름다움이야 말로 일상에서 한발 물러났을 발견하는 그 무엇이 아니었던가.

미술품을 한발짝 떨어져서 봐야하는 것처럼.

 

쓰나미를 직접, 바로 코앞에서 본다면 결코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죽음일 테니까.)

그러나 멀리서 바라본다면 그것보다 장관이 있을까.

(강 건너 불구경 역시 그렇다.)

 

그래서 떠나본 자들만이 지구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시는 대개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다.

아름다운 자연풍경, 아름다운 사랑, 아름다운 마음씨 등등.

 

시는 시적 언어를 통해 아름다움을 창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는 아름다움을 의심할 수도 있다.

시는 아름다움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비판하고

전혀 아름답지 않다고 여겨져 오던 것을 새롭게 아름답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바다를 액자에 걸거나

혹은

액자를 바다에 걸거나

 

아름다움이란 결코 어떤 틀(액자)에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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