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박성준 <좋은 사람들>
본문 바로가기
독서 리뷰

[명시 산책] 박성준 <좋은 사람들>

by 브린니 2022. 4. 17.

좋은 사람들

 

 

아무도 믿지 않기로 했으나 그게 잘 안 되었다

그뿐이었다

윗집으로 이사 온 목사 내외는 겸손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미신으로 떡을 돌리기도 하고

손 없는 날에 맞춰 이사를 들어올 줄 아는

꽤나 현명한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목사의 여자는 얼굴이 하얬다.

소음에 대해 아주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양해를 구할 줄 알았고

모르는 나에게 쉽게 미안한 표정을 지어줄 줄 알았다

나는 그런 결함 없는 친절함이

딱 견딜 수 있을 만큼만 무서웠다

새벽 두 시 이후가 돼야 들리는 사랑을 나누는 기척이라든가

늘 창문으로 소리가 경미하게 빠져나갈 수 있게끔 조치를 취해두는 수고라든가

그런 것들이 목사 내외를 굉장히 예의 바른 이웃으로 인지하게 했다

그럴수록 그들이 믿는 예수를 나는 더욱더 질투했다

그들은 누구보다 화목했고 절실했고 평판이 좋았다

그뿐이었다

이따금씩 여자는 초대를 빙자해 신앙을 강요했다

불필요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도 나는 자주 생각 했었다

어떤 표정이 누군가를 굉장히 아프게 할 수 있다고

신을 믿지 않는 나를, 여자는

늘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어느 추운 날 지방 소도시, 시동을 걸어놓은 버스 배기구에 손을 녹이고 있던 부랑자처럼

소파는 많이 낡았고 무방비했다

나는 그들과 적당히 친해졌고, 설교를 조금은 들어줄 수 있었다

친절한 여자의 하얀 무릎을 뚫어져라 오래 바라볼 수도 있었다

한 번도 넘어져본 적이 없는 뜨거운 무릎만큼

윗집으로 이사 온 목사 내외는 늘 그렇게 겸손했다

모르는 내 손을 꼭 붙잡아주면서

구원을 이야기할 수 있는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무서웠다

그들이 맹신하는 견고한 무엇이 더 무서워졌다

어떤 죄를 짓더라도 용서를 해줄 것만 같아서

그럴 것만 같아서, 나는

용서가 필요한 내가 그토록 공포스러웠던 것이다

 

 

박성준

 

 

 

산책

 

이 시를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의 넋두리쯤으로 읽기엔 왠지 마음이 켕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아니, 스스로를 성도라고 말하면서

남들을 세상 사람들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모욕이 되는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여기는 것이 얼마나 교만한 일인지.

 

신을 믿지 않는 나를, 여자는

늘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런 결함 없는 친절함이

딱 견딜 수 있을 만큼만 무서웠다

 

 

왜 친절을 무서워할까.

이유 없는 친절?

정말 이유 없이 친절한 것일까?

 

전도를 위해 친절을 가장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스도인들의 속내는 정말 이웃을 사랑해서 그들을 친절하게 대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웃을 전도의 대상으로 여기고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죄에서 건져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고 친절하게 접근하는 것은 아닐까?

 

목적이 있는 친절이 진짜 친절일까?

 

 

 

 

불필요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도 나는 자주 생각 했었다

어떤 표정이 누군가를 굉장히 아프게 할 수 있다고

 

예수를 믿으라고, 그래야 죄에서 구원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불필요한 대화일까?

이웃을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이웃을 아프게 하는 것일까?

 

그리스도인들은 정녕 이웃을

세상 사람들,

구원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일까?

 

그냥 이웃으로

아무런 목적 없이

사랑하고 친절하게 대하고

겸손하면 안 될까?

 

 

 

 

한 번도 넘어져본 적이 없는 뜨거운 무릎만큼

윗집으로 이사 온 목사 내외는 늘 그렇게 겸손했다

모르는 내 손을 꼭 붙잡아주면서

구원을 이야기할 수 있는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무서웠다

그들이 맹신하는 견고한 무엇이 더 무서워졌다

어떤 죄를 짓더라도 용서를 해줄 것만 같아서

그럴 것만 같아서, 나는

용서가 필요한 내가 그토록 공포스러웠던 것이다

 

한 번도 죄를 지은 적 없을 것 같은 사람들

(자신은 한 번도 죄를 지은 적 없는 듯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

혹은 과거에는 죄인이었으나 지금은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죄와는 무관한 듯한 사람들

(그러나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을 여전히 죄인 취급하는 사람들)

 

언제나 죄와 구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죄에서 건져내줄 메시아 노릇을 하려드는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있는 것은 진짜 예수 그리스도일까?

아니면 자기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다고 스스로 믿는 신념일까.

바로 그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신념이 맹신이 될 수 있다.

진짜 믿음이란 어떤 것일까?

 

예수를 믿으면 정말 어떤 죄를 짓더라고 용서받는 것일까?

그렇다면 예수를 믿지 않는 죄도 용서될 수 있을까?

 

만약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지 않는 것 말고는 정말 착하고 선하게 산다면 그를 무엇으로 불러야 하는가?

 

 

 

 

다른 것은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그리스도인의 말과 행동이

이웃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심지어 겸손과 친절도 이웃을 불편하고 무섭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예수 믿고 죄에서 구원받으라는 전도의 말과 행위도.

 

 

 

 

이웃을 사랑하라.

 

아무런 조건을 따지지 말고 그냥 사랑하라.

 

그가 죄인이라면 그 자체로.

 

어쩌면 그를 구원하는 것은 우리의 전도가 아니라

그저 우리의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바로 그 사랑.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

 

그에게 예수를 믿고 구원받으라고 말하기 이전에 그를 위해 죽는 것, 

예수님처럼 그를 사랑하고, 그의 죄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 그를 대신해서 죽는 것. 

 

조건 없이, 목적 없이, 희망 없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