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권혁웅 <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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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권혁웅 <수면>

by 브린니 2021. 6. 30.

수면

 

작은 돌 하나로 잠든 그의 수심을 짐작해보려 한 적이 있다 그는 주름치마처럼 구겨졌으나 금세 제 표정을 다림질했다 팔매질 한 번에 수십 번 나이테가 그려졌으니 그에게도 여러 세상이 지나갔던 거다

 

― 권혁웅

 

 

【산책】

물수제비뜨기를 하며 놀던 시절이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한다.

아들과 함께, 가족들과

혹은 이웃이나 동호회 사람들과 ……

얇고 편편한 돌을 골라

호수 위나 강물 위로 던진다.

가끔은 파도를 거슬러 바다 한가운데를 향해 돌팔매질을 한다.

잔잔한 호수 표면을 때리며 돌을 겅중겅중 뛰며 달리듯 날아간다.

호수는 돌아 맞아 아플까?

그러나 수면에는 넓게 미소가 번진다.

사람들이 돌을 덜져 자신을 때려도 호수는 웃는다.

웃음은 둥글게 나이테를 그린다.

호수의 나이를 알 수 없다.

어느 날은 나이를 수십 번 더 먹는다.

풍파 많은 삶을 살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날은 아무런 파고 없이 고요한 날들을 보내기도 한다.

물은 돌아 맞아 주름을 짖지만

금세 제 표정을 다림질했다

나무처럼 나이테가 지울 수 없게 새겨지는 게 아니라 금세 풀리고 만다.

호수는 나이마저 지운다.

나무보다 훨씬 오래 살지만 나이테는 0.01초나 지을까 말까 한다.

눈 깜빡 할 찰나 주름은 생겼다 사라진다.

거기, 물의 영원이 스며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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