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신해욱 <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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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신해욱 <클론>

by 브린니 2021. 6. 9.

클론

 

 

철컥. 철컥. 예수의 쌍둥이 동무를 찍어내는 기계가 부지런히

 

철컥. 철컥. 속에 들어 있는 것은 팥일까요. 크림일까요. 성령일까요. 아니면 생명이라는 고름일까요.

 

생명. 생명이라니. 철컥. 그렇게 고귀한 것이라니. 철컥.

박자에 맞춰 그저 춤을 추면 좋을 텐데요. 용가리와 함께 트위스트를. 장국영과 함께 맘보를.

 

나는 앞이 깜깜합니다. 철컥. 철컥.

영능력이 형편없습니다. 철컥. 철컥.

십자 대신 엑스자로 성호를 긋고, 긋고. 부르르르 거듭 그으며

명목의 질료들을 있는 그대로 구원하는 일에는 어떻게 일조해야 합니까.

 

한 마리, 두 마리, 다섯 마리, 열세 마리, 부활한 쌍둥이 동무들은

길흉을 초월하고

동무애로 하나가 되어

생명을 넘고 넘어

미래의 시체를 넘고 또 넘어

철컥. 철컥. 이만큼 가까워집니다.

 

나는 거절할 권리가 없습니다.

나는 실수할 자격이 없습니다.

너를 두 번 죽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엑스자 대신 갈지자로, 아니다, 모른다, 아니다, 모른다, 베드로와 함께 차차차를, 마리아와 함께 왈츠를,

박자에 맞춰 춤을 추는 흉내를 내가 발을 밟히게 되면

나의 입에서는 무엇이 튀어나올까요.

철컥. 철컥. 팥일까요. 크림일까요. 위액일까요. 걸쭉한 욕이 섞인 가르강튀아의 침일까요.

이런 입으로는 어떻게 영생을 면해야 하는 겁니까. 철컥. 철컥.

 

―신해욱

 

 

【산책】

 

길을 가다가 나를 복제한 사이보그를 만나면 어떤 심정이 될까?

놀라 자빠질까?

반가울까?

화가 날까?

잡아서 죽이고 싶어질까?

 

거울에서 나를 보면 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밖에서 나를 보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다.

 

나와 똑같이 생긴 내가 아닌 어떤 것?

과학이 좀더 발전하면, 아니, 어쩌면 이미 복제인간은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날이 빨리 닥칠지 모른다.

 

 

나는 일생을 살고 죽지만 나의 복제인간은 내가 죽은 뒤에도 어쩌면 영원히 살지도 모른다.

기계는 죽지 않는다.

 

진시황제가 그렇게도 원했던 불로장생.

오직 기계만이 영생을 완성할 수 있다.

 

스스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고장을 수리하고, 멈추지 않고 계속 작동하는 방법을 터득해서 계속해서 사용을 연장하는 인공지능 복제인간.

만약 나에게 몸의 어느 부분이나 장기들을 기계로 바꾸고 더 오래 살 수 있다면?

혹은 뇌를 기계 장치로 바꿔서 계속 살 수 있다면?

 

나는 나로서 사는 것일까?

그렇다면 과연 나는 정말 어떤 존재일까?

이제부터 인간이 기계로 진화한단 말인가?

 

나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면서 감정을 느끼고 눈물까지 흘리는 기계.

곧 보게 되리라!

 

 

복제인간에게는 운명도 없고, 길흉도 없고, 실수도 없고, 일이 꼬이거나 배신을 당하거나 사기를 당할 일도 없다.

이런 식의 무사안일하고 평온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싶은가?

 

복잡다단하고, 예상하기 어려운 인생의 질곡이 모두 사라진 세상.

사는 것이 모두 예측 가능하고, 계획과 절차에 따른 삶!

 

어쩌면 힘들고 어려운 인생일수록 다른 힘을 빌어서라고 보다 편안한 삶을 꿈꿀 수도 있다.

복제인간이 나를 대신해 보다 나은 삶을 보장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할 수도 있다.

 

나의 쌍둥이로 나를 능가하고 나를 대체하면서 나의 인생을 사는 복제인간.

이제 삶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이제 곧 기계를 이웃으로 두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 새로운 이웃과의 삶은 우리를 또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이제까지의 사회와 문화와 예술과 종교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흥미진진한가?

 

기계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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