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장승리 <디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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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장승리 <디테일>

by 브린니 2021. 5. 11.

디테일

 

 

물 밖으로 막 끌려 나온

 

물고기의 눈과

 

그 눈 속

 

정오의 태양

 

종이 한 장 차이의

 

심연은

 

어제 죽은 네가

 

오늘 꾸는 꿈

 

 

     ―장승리

 

 

 

【산책】

 

낚시는 세월을 낚는 일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사실 낚싯대를 물에 던져 넣고 물고기가 미끼에 속아서 딸려 나오기를 기다리는 일이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일까, 싶기도 하다.

 

뭐, 작고 단단한 공을 구멍에 넣는 게임을 뭐 그리 대단하다고 열을 올리는지

골프에 대해서도 적의를 갖기도 한다.

 

하지만 남들의 취미를 존중해야 한다.

 

 

물 밖으로 막 끌려 나온 물고기의 눈 속에 정오의 태양이 어려 있다.

얼마나 슬픈 눈인가.

얼마나 슬픈 태양인가.

 

빛을 잃고 흐리멍덩한 물고기의 눈 속에서

빛을 내는 태양

빛을 멈춘 태양

빛의 흔적

한때 밝게 빛났던 흔적

 

물고기는 푸른 바다에서 태양 빛으로 반짝거렸으리라.

 

그러나 물 밖에 나온 물고기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인간의 횟감이 될 뿐,

 

물고기는 이제 물고기가 아니라 그냥 고기가 될 뿐

쫄깃하고 고소한 살집으로 남을 뿐.

 

그러나 그 물고기의 눈 속에 태양이 있다.

태양이 있다니!

 

 

그 물고기 눈 속의 태양은 어둠이다.

정오의 맹점이다.

 

검은 물고기의 눈은 심연과 같다.

끝을 알 수 없는 깊이!

 

깊고 깊은 구멍

빠져든다.

 

꿈 속 같다.

 

꿈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 같은,

밑바닥을 알 수 없이

빨려 들어가는 꿈 속.

 

어제 죽은 사람은 누구인가.

그런데 죽은 사람도 꿈을 꿀 수 있을까.

 

죽은 사람이 꾸는 꿈에는 죽은 사람들이 나올까.

죽은 사람이 산 채로 나올까.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의 죽음,

아직 팔딱이는 임박한 죽음.

 

그 죽음에 깃든 태양의 빛!

깊고 깊은 빛의 두께.

 

거기 들어가 잠들고 싶다.

 

꿈에서 나는 물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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