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조용미 <내가 없는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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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조용미 <내가 없는 거울>

by 브린니 2021. 4. 3.

내가 없는 거울

 

 

자다 깨어 거울 앞 지나다 얼핏 보니

내가 보이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잠깐 잘못 본 건가

다시 거울 앞으로 가기가 겁이 난다

 

거울 속의 나는 통증을 알지 못하여

이 시간까지 책상에 앉아 있다가

잠시 방심하고 내가 자고 있는 사이

자리를 비운 것이다

 

멀쩡한 몸을 감당하지 못하는 따분함도

그 아무 일 없음의 열락도 차마 모르는,

몸의 비루함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순정한 내가 저기 있다

 

여태 그가 보여주는 것만 보았다

누군가 아마도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살고 있을

진지함을 가장한 저 세계는

지금 이 순간의 나와 가장 먼 거리에 있다

 

일어나 거울을 들여다보아야겠다

나와 마주치기 꺼려하는 차갑고

말이 없고 고독하고

복잡한 내가 저곳에 있다

 

몸을 씻고 나면 늘 마주 보게 되는

그 시간만은 정확하게 잊지 않고 나타난다

거울 속엔 몰래 사는 것들이 많다

내가 없는 거울을 들여다보아도 되는 걸까

 

                                                    ―조용미

 

 

【산책】

 

나르키소스는 호수(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반해서 그 자리를 뜨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사람들은 거울을 보면서 하루에 최소한 한 번쯤은 반한다. 자기 자신에게.

 

만약 인간의 마음속에 나르키소스와 같은 자기애가 없다면 아마도 살 수 없을 것이다.

자기를 기쁘게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한 사랑.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과 다른 존재를 비교하며 살지만 결국 자기 자신을 선택하고 자신을 다른 누구보다 사랑한다.

거울은 ‘나’를 확인시켜줄 뿐만 아니라 ‘나’에 대한 ‘나의 사랑’을 확증한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거울 속에서 사라진다?

 

내가 없는 거울을 내가 보았을 때

거기 아무것도 없었을 때

 

나는 나의 존재 근거를 잃는다.

내가 없다니!

 

나는 나를 볼 수 없다.

나는 나의 얼굴을 볼 수 없다.

 

언제나 타인들만 나의 얼굴을 나의 모습을 본다.

나는 거울을 통해서만, 거울 속에 있는 나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거울에 내가 없다니!

나는 이제 나를 볼 수 없고, 나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거울 속에 없다면 나는 어디로 갔는가?

 

 

내가 거울을 보았을 때 거울 속에 내가 없다면 나는 유령인가?

 

공포영화에서는 실제로 사람이 보이지 않는데 거울에는 비치는 경우가 있다.

사진을 찍었는데 실제로 없는 사람이 찍혀 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누구인가?

유령인가?

 

이 시에서는 실제로 내가 있는데 내가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

내가 있어야 할 텐데 내가 없다.

 

그렇다면 내가 유령이라는 것인데?

내가 살아 있다고 느끼며 살고 있는데 내가 없다면 나는 누구인가?

 

실제로 나는 살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유령인가?

나의 실재는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그 어떤) 것인가?

 

Something is Nothing?

 

 

나를 확인할 수 없을 때

Something or Nothing?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을 때

Who am I?

 

거울 속에 없는 나는 과연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것인가?

 

 

거울이 없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자신을 어떻게 확인했을까?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되었을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이나 모습을 보고 그림을 그려주었을까?

타인의 눈이 거울이 되는 것일까?

 

거울이 없으니 자기애에 빠질 일도 없었을까?

그저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맡기며 살았을까?

 

그래도 잘들 살았을 것이다.

거울 없이도. 자기 확인 없이도.

 

 

사람들은 거울 속에서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일까?

자기 자신을 거울로 본다고 해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데.

 

그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반복해서 재확인하는 것일 뿐인데.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 지겨운 반복을 결코 지루해 하지 않는 것일까?

 

산업화 초기에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만 멀뚱히 바라보게 되어 그 짧은 시간을 몹시 지루해했다고 한다. (사실은 민망해서 견딜 수 없었겠지.)

그런데 거울을 설치했더니 거울을 보면서 지루한 줄 몰랐다고 한다.

 

왜 인간은 거울을 보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일까.

 

거울을 못 보면 불안해하고,

보고 또 보고.

 

그러다 그 거울 속에 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으악, 공포!

 

 

어쩌면 사람들이 거울 속에서 보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 아닐까?

 

자기 자신보다 훨씬 더 멋진,

자기 자신을 능가하는 매우 이상적인 자기 자신.

 

‘내가 되고 싶은 나’를 보는 것이 아닐까.

거울의 이데아!

 

 

거울이 진짜 나를 보며주면?

나의 실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면 나는 얼마나 놀라고

끔찍할 것인가?

 

 

거울 속엔 몰래 사는 것들이 많다

 

나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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