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그리트 뒤라스 <고독한 끌레르(영국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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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마르그리트 뒤라스 <고독한 끌레르(영국 연인)>

by 브린니 2021. 3. 14.

사랑과 행복 그리고 죽음의 카니발 : 프랑스식 정원 살인 사건?

 

 

이 책의 원제는 <영국 연인>이다. 그러나 이 책은 프랑스 작가가 쓴 프랑스 소설이며 주인공들 모두 프랑스 사람들이다. 영국 사람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소설의 제목은 <영국 연인>이라니. 제목대로라면 최소한 영국인이 두 명은 나와야 하는데 말이다.

 

<영국 연인>은 이 소설의 주인공 끌레르가 영국 박하나무를 잘못 표기한 것을 제목으로 쓴 것이다. 영국 박하나무는 프랑스어로 la menthe anglaise라고 쓰는데 끌레르는 이것을 같은 발음을 내는 l’amante anglaise라고 쓴다. 그럼 뜻이 전혀 달라지는데 바로 ‘영국 연인’이 되는 것이다.

 

끌레르는 집 안의 정원에 영국 박하나무를 기르고 있는데 이를 영국 연인으로 부르는 것이다. 일부러 그러는지 아니면 철자법을 잘 모르고 그러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녀는 정규 교육을 별로 많이 받지 않았으나 자신이 지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소설은 오직 대화로만 이루어진 소설이다. 뒤라스는 이 소설을 희곡으로 다시 펴내기도 한다. 프랑스 한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두고 한 기자가 관련자 세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1부는 비요른 시市의 카페 주인 ‘로베르 라미’와의 인터뷰

2부는 살인자의 남편 ‘삐에르 란느’와의 인터뷰

3부는 살인을 저지른 여성 ‘끌레르 란느’와의 인터뷰이다.

 

이 소설은 한 기자와 세 사람이 주고받은 이야기들로 사건을 재구성하고 있으며, 그들의 입을 통해 살인자 '끌레르 란느'라는 여성에 대해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끝내 끌레르가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살인 증거를 어디에 감추었는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소설이 살인을 다루고 있는 추리소설이나 스릴러가 아닌 한 여성에 대한 심리소설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살인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거나 범인이 누구인지 살인의 원인과 증거들은 어떤 것인지를 밝히는 데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오히려 끌레르라는 여인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건이란 단지 현실에서 벌어진 어떤 사실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일어난 특별하고 의외의 일이며 그것을 둘러싼, 혹은 그 속에 숨은 진실은 쉽게 알 수 없다는 작가의 생각 때문일 것이다.

 

 

삐에르와 끌레르 부부의 집에서 가정부 노릇을 하던 끌레르의 마리테레즈 부스케가 어느 날 살해되고 그 시체가 토막 나서 기차에 실려 프랑스 전역으로 옮겨졌다. 경찰은 시체 조각을 맞춰 본 뒤 중키에 건강한 체격, 서른 다섯에서 마흔 살가량의 여성을 피해자로 보고 수사를 시작한다. 경찰이 비요른을 살인 발생지로 지목한 것은 비요른 역이 프랑스 전역으로 가는 기차들의 기착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찰은 시체의 가장 중요한 부위라고 할 수 있는 머리를 아직 찾지 못한 상태였다.

 

경찰은 위장을 하고 카페 <르 발토>에 들어와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손님 가운데 한 사람 ‘끌레르 란느’를 살인 용의자로 체포한다.

 

 

소설의 1부에선 카페 <르 발토>의 주인 ‘로베르 라미’가 나와서 살인 사건과 범인 ‘끌레르 란느’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건의 전모와 끌레르 란느의 살인 행위와 그녀의 성격과 일상 등이 간략하게 설명한다.

 

여행객으로 위장한 형사들이 <르 발토>에 들어와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살인이 인근 숲에서 벌어졌다고 말하자 ‘끌레르 란느’는 살인은 숲이 아니라 자신의 집 지하실에서 벌어졌다고 증언(고백)한다.

경찰은 이미 마리테레즈가 며칠 전 사라졌으며 끌레르와 알퐁소, 삐에르 등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있던 참이었다.

 

로베르 라미의 인터뷰에서 끌레르는 고향인 까오르로 떠나려고 여행 가방을 들고 카페에 들렀으며 그녀는 마음속으로 알퐁소라는 남자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알퐁소는 끌레르의 사촌 마리테레즈와 가끔 잠자리를 했으며 마리테레즈는 귀머거리에 벙어리였다.

 

 

2부에서는 ‘삐에르 라미’가 나와 자신과 아내 끌레르, 마리테레즈에 관해 이야기한다. 삐에르는 시청 공무원으로 끌레르가 자신과 만나기 전 고향 까오르의 경찰관과 열렬히 연애했지만 이별한 뒤 상심하고 있을 때 만났으며 약 2년간 산 뒤 이곳 비요른에서 계속 살았고, 마리테레즈가 온 뒤 살림은 모두 그녀가 도맡아했다고 말한다.

 

끌레르가 하는 일이라고는 정원 벤치에 앉아 멍하니 있거나 가끔 집안을 어지럽히고 물건들을 깨는 정도라고 했다. 끌레르는 아직 까오르의 경찰관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하면서 살았을 거라고 한다.

 

삐에르는 끌레르가 영국 박하나무와 영국 연인의 철자를 바꿔 쓸 정도로 지적 능력이 떨어졌으며 거의 반 미친 상태였다고 말한다.

 

삐에르는 자신의 삶 자체를 후회하고 있었고, 자유를 원했다. 그는 아내를 정신병원 같은 데 입원시킬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마리테레즈가 살림을 도맡아하는 것에 일상의 안정을 느끼면서 살았으며 다른 여자들과 심심치 않게 바람을 피웠다.

 

삐에르는 끌레르에게 약간의 애정과 연민을 갖고 있지만 사랑하는 정도는 아니다. 삐에르는 끌레르가 상냥하고 부드러우면서 성적인 만족감을 주었기에 결혼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몇 년간은 그런 상태가 유지되었기에 결혼에 불만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런 상태가 아니었고, 그는 자유를 열망하고 있었다.

 

삐에르는 끌레르가 마리테레즈가 아닌 자신을 살해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아마도 끌레르가 다시금 사랑에 미칠 정도로 사랑에 빠질 만한 남자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막연히 느꼈는지도 모른다.)

 

삐에르는 아내 끌레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어쨌든 그녀는 모든 것에 대해 닫혀 있었으며, 또 모든 것에 대해 열려 있기도 했지요.

두 가지 다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소. 그녀의 가슴 속에는 아무것도 머물러 있지 않았으며, 그녀는 아무것도 간직하지 않았지요. 그녀는 바람이 불면 모든 것을 가져가 버리는 대문 없는 집과 같은 사람이었소.

 

그녀의 마음은 텅 빈 채 열려 있었다. '바람이 불면 모든 것을 가져가 버리는 대문 없는 집'과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집(마음)에는 아무것도 가져갈 게 없었다. 그저 바람이 들어왔가가 한 번 휘돌고 다시 나갈 뿐.

 

끌레르가 왜 마리테레즈를 죽였는지에 대해서는 삐에르도 알지 못한다. 삐에르는 마리테레즈와 불륜을 저지르지도 않았기 때문에 치정 살인으로도 볼 수 없었다. 삐에르는 삐에르대로 바람을 필 뿐이며 마리테레즈는 알퐁소를 비롯한 포르투갈 남자들과 어울렸을 뿐이다.

 

기자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고, 거의 대부분 질문하고 듣기만 한다. 그러나 삐에르와의 인터뷰 끝에 이런 멘크를 남긴다.

 

나는 당신이 다만 끌레르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랬던 것이 아니라 마리테레즈에게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합니다. 혼자 있기 위해서 당신은 당신의 삶에서 두 여인이 다 사라져 주기를 바랐던 겁니다. 하나의 세상이 끝나 주기를 열망했을 것입니다. 그건 다시 말하면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누가 당신에게 그것을 줄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끌레르와의 인터뷰.

 

끌레르는 자신이 마리테레즈를 살해했으며 시체를 찾지 못하도록 토막 내서 기차에 실어 프랑스 전역으로 보냈으며 머리를 아무도 찾지 못할 곳에 숨겼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마리테레즈를 왜 죽였는지 그리고 머리 부분을 어디에 숨겼는지 결코 자백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이 감옥에 갇히는 걸 조금 거부한다. 자신을 그냥 정원에 앉아 있도록 놓아둬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마리테레즈가 없으면 집안 어디에나 먼지가 쌓일 것이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이렇게 말한다.

 

― 청결함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어요. 너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어요.

 

― 무엇의 자리를요?

 

― 시간의?

 

― 청결함이 시간의 자리를 빼앗았다, 이건가요?

 

― 네.

 

청결함이 시간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너무 깔끔하게 청소를 해서 과거의 흔적을 모두 지운다는 뜻일까. 아니면 기억을 지운다는 말일까. 아니면 과거의 흔적이나 기억을 지울 수 없는데 그것을 지우려는 마리테레즈의 행위가 못마땅하다는 것일까. 어쩌면 청결함 자체가 흔적이나 기억을 지우는 것이므로 시간의 자리를 빼앗는 것일까.

 

인간이 살면서 먼지처럼 쌓이는 시간을 깨끗이 청소를 한다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 아마도 끌레르는 흔적과 기억이 지워지는 것을 원치 않았는지도 모른다.

 

 

끌레르는 많은 시간을 정원의 벤치에 앉아 보냈다.

 

― 정원에 있으면 그들은 나를 찾으러 오지 않았거든요. 정원에는 시멘트로 만든 의자가 하나 있었고, 그 옆에는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나무 영국 연인(사실은 영국 박하나무la menth anglaise)가 있었어요. 식용나무이고, 양떼가 자유롭게 뛰어노는 섬에서 자라는 나무지요. 영국 연인(영국 박하나무)은 소스 친 고기와 반대야, 라고 나는 생각했어요. (끌레르는 마리테레즈가 만드는 소스 친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 시멘트 벤치 위에 앉아 때때로 나는 내 자신을 아주 지적인 여자로 느꼈다는 걸 말해야겠군요.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으면 내가 지적인 사고력을 가진 여자라는 생각이 들곤 했지요.

 

― 그걸 어떻게 알았죠?

 

― 그냥 알았어요. 이젠 모든 것이 끝났어요. 지금 당신 앞에 있는 나는 아무것도 아닌 여자예요.

 

― 정원에서 당신은 어땠습니까?

 

― 죽고 난 후에 남아 있을 그런 여자였죠.

 

영국 박하나무를 영국 연인이라고 철자를 잘못 쓰는 끌레르는 자신을 지적인 사고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정원에 벤치에 앉아 멍하니 있는 끌레르는 자신을 ‘죽고 난 후에 남아 있을 그런 여자’였다.

 

끌레르가 죽은 것은 아마도 까오르의 경찰관과 헤어진 뒤부터였을 것이다. 그녀는 열렬히 사랑한 남자를 잃고 괴로웠으며 아무도 그 빈 자리를 채워줄 수 없었고, 그런 남자를 기다렸으나 실패했다. 그녀는 그 뒤로 죽고 난 후에 남아 있을 그런 여자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까오르의 경찰관을 사랑했지요. 그게 전부였어요.

 

까오로의 경찰관은 어느 날 밤 불륜을 저지르고 외박을 했다. 그리고 새벽에 돌아와서는 끌레르에게 거짓말을 했다.

 

― 우체국에서 돌아오는 길이라면서 자기가 한 일들을 거짓말로 늘어놓고 있었죠. 내가 계속 그를 쳐다보고 있자, 그가 점점 더 빨리 말했어요. 그러다 갑자기 입을 다물었어요. 침묵의 순간이 다가왔죠. 우린 서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죠. 하늘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죠. (……) 그 이후의 삶을 내가 어떻게 보내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끌레르가 삐에르와 파리에 살 때 까오르의 경찰관이 찾아와 두 사람은 리옹 역 근처 호텔에서 정사를 나누지만 둘 사이를 돌이킬 수 없었다.

 

― 그는 나를 데려가고 싶어했지만 너무 늦었었죠. 우리가 예전에 사랑했던 것처럼 사랑하기에는 말이에요. (……) 우리는 울기만 했어요. (……) 리옹 역의 그 호텔 침실에서 우리는 영원히 헤어진 거예요.

 

 

끌레르는 리옹 역 근처 호텔에서 집으로 돌아와 계속 울기만 했다. 조금 있다가 남편 삐에르가 돌아왔다. 끌레르는 이 날 일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 나는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어요. 타는 듯한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죠. 그날 난 안경과 넥타이, 흰 와이셔츠를 입은 그를 그의 표정을 보았어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의 표정은 ‘울고 싶으면 어디 다른 데 가서 울도록 해’라고 말하고 있었어요. 그날 나는 그가 다른 곳에 마음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이미 그날부터.

 

끌레르는 까오르의 경찰관과 영원히 헤어지고 나서 울고 있다. 남편은 끌레르가 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바라본다. 그의 마음은 다른 곳에 있다.

 

남편은 끌레르와 육체적 관계를 맺고 살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있다. 물론 끌레르 역시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러나 까오로의 경찰관과 영원히 헤어진 날 그녀에게는 남편밖에는 없다. 하지만 남편은 이미 그녀 말고 다른 곳에 마음이 있다.

 

끌레르는 후에 남편의 안경을 우물에 버리거나 다른 집안 물건들을 깨거나 내다버린다. 아마도 자신과 남편, 그리고 이 가정에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 당신은 불행하십니까?

살인자로 체포되어 감옥에 있는 끌레르에게 기자가 묻는다.

 

― 아뇨, 나는 거의 행복해요. 행복의 기슭에 도달해 있어요. 만약 그 정원 갖는다면 완전한 행복감으로 충만할 거예요. 그러나 내게 영원히 정원을 주지는 않겠죠. 이제 나는 정원 없이 지내는 이 슬픔이 더 좋아요.

 

그리고 끌레르는 까오르의 경찰관과의 시절을 말한다.

 

― 나는 한 번도 까오르에서의 행복했던 시절을 잊은 적이 없었어요. 그 행복은 내 삶을 가득 채웠지요. 그 행복은 몇 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는 행복이었어요. 행복은 내가 잠들어 있던 순간에도 계속 되었어요. 그 남자가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나는 울타리 너머로 행복이 미소 짓고 있는 것을 보았어요. 나는 계속 누구에겐가 이것을 설명하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그에 대한 얘기를 어느 누구에게 할 수 있었겠어요? 이제는 너무 늦었어요, 너무 멀리 있고 너무 늦었어요. 그에 대한 편지를 쓸 수도 있겠지만 누구에게 보내겠어요?

 

― 그에게?

 

― 아뇨, 그는 이해하지 못했을 거예요. 아녜요, 그 편지들은 아무도 아닌 사람에게 보내야 했을 거예요. 하지만 아무도 아닌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았어요. 완벽하게 이해되려면 그도 알지 못하고 나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야만 했을 거예요.

 

끌레르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도 아닌 사람’에게 보내야만 완벽하게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것은 글쓰기 혹은 소설에 관한 작가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알지 못하는 불특정 다수에게 보내는 편지가 바로 소설인 것이다. 어떤 정보도 없이 오직 작품만을 읽고 거기서 감동을 받거나 어떤 느낌을 받는 것! 그래서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다.

 

사실 작가의 이력이나 작품 소개 등으로 미리 어떤 선입견을 갖고 소설을 읽는 경우가 많고, 작품 외적인 것으로 작품을 이해하려는 시도 또한 많지만 가장 좋은 독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오로지 쓰인 글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 그 모든 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한 그 모든 시간. 이제 나는 평온해요. 너무 늦었다는 걸 알기 때문에요.

 

‘너무 늦었다는 것’은 까오르의 경찰관과 다시 사랑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그 어떤 남자와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을 뜻하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알퐁소를 마음에 두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다른 어떤 남자가 나타나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모든 것이 불가능했으며 이제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한 모든 시간'은 이제 종착역에 도달한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여름밤 열 시 반>에서처럼 이 소설 역시 사랑과 죽음이라는 테마를 다루고 있다. 똑같이 살인사건이 나온다.

 

<여름밤 열 시 반>에서 마리아는 살인자 로드리고 파에스트라와 자신을 동일하게 느끼는 듯 하다. <고독한 끌레르>에서 끌레르는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는 꿈을 자주 꾸었으며 살인을 벌인 것은 꿈이 아니었다고 진술한다.

 

어쩌면 마리아는 자신이 살인에의 욕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로드리고 파에스트라를 보면서 뒤늦게 깨달았을 수 있고, 끌레르는 꿈에서 저지른 자신의 범죄가 현실에서 반복되고 있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리아와 끌레르 모두 사랑할 때 가장 행복했으며 연인이 배신하거나 사랑이 깨지고 이별할 수밖에 없을 때 가장 불행할 뿐만 아니라 삶도 끝장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사랑의 실패, 그것은 바로 죽음인 것이다.

 

그리고 두 여인 모두 살인에의 충동을 느끼면서 살고 있다.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든 그저 욕망으로 도사리고 있든.

 

사랑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여인들의 외침이 소설을 통해 울려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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