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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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by 브린니 2021. 2. 27.

*평신도 성경 묵상은 평신도에 의한 평신도를 위한 묵상입니다. 화석화된 동어 반복의 신학적 용어들은 때때로 우리 삶의 부조리한 고통을 위로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보다 피부에 와 닿는 실제적인 깨달음과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나눔을 하기 원합니다.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을 세를 면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서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7장 24절~27절)

 

 

성전세 ‘ 세겔 유대인들이 출애굽한 후에 생명을 건져주신 감사하여 여호와께 바쳤던 양과 같은 것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인에게는 의무적으로 부과되는 돈이었는데, 이것은 주로 성소의 유지 비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세겔 받는 들은 로마에 바치는 국세를 거두는 세리와는 다른 이들이었고, 성전을 위해 돈을 걷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베드로에게 나와서너의 선생은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라고 물은 것은 성전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를 묻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물음에 대해서내신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선은 내신다고 대답했지만 베드로의 마음에는 의문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의 마음을 아시고 예수님은 질문으로 답을 주십니다. 세상 임금이 자기 아들에게는 세금을 받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은 성전세를 필요가 없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위에 하나를 덧붙이십니다.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들이 오해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돈을 낸다고 하십니다.

 

실족케 한다, 오해케 한다는 말은스칸달리소멘으로 단순히 넘어뜨린다는 것이 아니라 함정에 빠뜨려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전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지 이해할 없고, 그렇게 경우 가장 먼저 그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외면하고 배척할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 깨달음이 부족한 사람들을 대할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보여주신 예라고 있습니다.

 

성전세를 받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내라고 해서 예수님이 내게 되었기에 자기들 말에 순종한 것으로 여겨 조금은 우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무지한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그들의 우쭐함보다 훨씬 크고 넓습니다.

 

이렇게 겸비하고 낮아지시는 예수님의 성품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 보아야 것입니다. 나는 무지하고 이해가 낮은 사람들의 고집스러운 마디를 들을 어떻게 행동했는가, 어떻게 행동해야 것인가, 생각해 보면 답답하고 예수님처럼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제자된 도리이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예수님의 섬세함은 그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을 베드로의 마음까지도 위로해 주시는 데까지 한발 더 나아갑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바다에 가서 낚시를 하여 물고기를 잡은 입을 열면 세겔이 있을 테니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고 하셨습니다.

 

일단 물고기 안에 세겔이 어떻게 있을 있으며, 그걸 예수님은 어떻게 아셨으며, 물고기가 하필 베드로의 낚시에 가장 먼저 번째로 걸릴 거라는 것을 어떻게 있을까요?

 

성전세를 받는 자들의 닦달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성전세를 내시기는 하지만 방법이 도저히 인간으로는 없는 방법이기 때문에 베드로는 마음에 진정한 위로를 받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분명하시며, 그럼에도 겸손하게 무지한 자들을 위하여 기꺼이 인간 취급을 받으시는 모습을 종합적으로 보여주시니 베드로는 놀랍고 아름다운 성품에 감탄하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겠지요.

 

가지 사실은 필요한 만큼의 세겔만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고기 마리를 잡아 입에 세겔이 들어 있으니, 마리를 잡아 입을 열어 세겔을 챙기면 좋겠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필요한 만큼의 은혜를 채워주신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언제나 예수님을 의지하게 하는 길입니다. 차고 넘치게 은혜를 베풀어달라는 기도가 과연 우리 영혼을 위하여 참된 기도인지 반성해 보아야 것입니다.

 

성전세 물고기 사건은 바로 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수난 예고 바로 뒤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마태복음 17장 22~23절)

 

이런 수난 예고를 들으며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어리둥절할 제자들에게 성전세의 물고기 기적은 무지한 자들에 의해 예수님이 핍박을 받으나 그것을 피할 이유와 방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과 제자들을 위하여 기꺼이 예수님이 겸비함으로 낮아지셔서 받는 수난임을 상징합니다.

 

말씀을 보면서 예수님의 겸비함, 폭넓고 섬세하며 모두를 아우르는 깊은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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