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본문 바로가기
성경 묵상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by 브린니 2021. 1. 24.

*평신도 성경 묵상은 평신도에 의한 평신도를 위한 묵상입니다. 화석화된 동어 반복의 신학적 용어들은 때때로 우리 삶의 부조리한 고통을 위로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보다 피부에 와 닿는 실제적인 깨달음과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나눔을 하기 원합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태복음 16장 18절~19절)

 

 

이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 이후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라고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바르게 신앙고백을 했으니 나도 너에게 진리를 말해주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너는 베드로라”에서 ‘베드로’(페트로스)는 ‘돌, 반석에서 떨어져 나온 돌멩이’라는 뜻으로 남성형 고유명사입니다. 이에 반해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에서 ‘반석’(페트라)은 여성형 일반명사로 ‘바위 덩어리’를 의미합니다.

 

이 낱말의 차이 때문에 여러 가지 해석의 견해 차이가 나오게 됩니다. 로마 천주교회는 베드로와 반석을 동일시하여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천국 열쇠를 받았고 그 권위가 교황으로 이어지므로 교황이 교회와 천국의 전권을 위임받은 것으로 봅니다.

 

개신교에서는 두 낱말을 다른 것으로 이해하여 유한하고 흠결이 있는 인간 베드로가 교회의 기초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반석은 베드로의 바른 신앙고백을 의미하고 이와 같이 고백하는 모든 신앙 고백자의 기초 위에 교회가 세워진다고 이해합니다.

 

이렇게 세워진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음부’란 헬라어 ‘하데스’로 ‘지하세계, 죽은 자의 거처’입니다. 이는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구분없이 모두 들어가게 되는 죽은 자의 영역입니다.

 

한번 죽어 그곳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내보내지 않기 때문에 죽음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죽지 않는 영원성을 지닙니다.

 

예수님은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이 땅 위에서는 예수님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겠다고 하신 말씀에 대해서 로마 천주교회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베드로에게 교회 수장으로서 특별한 권한을 주신 것으로 해석합니다.

 

하지만 개신교에서는 이 권한을 12사도를 대표하는 베드로에게 주셨기 때문에 12사도와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교회 전체에게 주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모두에게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천국 혹은 교회에 열쇠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열쇠를 예수님이 인간 무리에게 주셨다는 것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은 베드로로 대표되는 교회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오순절의 성령 강림으로 인해 점차 천국 복음을 깨달아 알아가게 되고 그것을 선포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천국을 열어 주지만 동시에 그 문을 닫을 수 있는 열쇠도 가졌다는 것입니다.

 

천국의 열쇠로 그 문을 매거나 풀 수 있는 통제권이 있다는 것으로 심각한 범죄를 행한 이에게 교회의 문을 열지 않을 수 있는 치리 혹은 통제권을 가진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초대교회 때는 이러한 통제로 교회가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 예수님이 가지고 계시던 천국 열쇠를 베드로로 대표되는 교회에 주셨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 천국 열쇠를 어떻게 사용하셨던가를 돌아보며 예수님처럼 사용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이들에게 그 열쇠를 사용하여 천국의 문을 열어주셨는가 돌아보면 유대인들이 흉을 볼 정도로 당시 사회에서 비난받은 죄인과 세리와 창녀에게까지 열어주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그 천국 열쇠를 건네주실 때는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기를 바라셨고, 그렇게 하라고 주신 것이 분명합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을 대할 때 예수님에게서 천국 열쇠를 건네받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마땅한 보상을 한다든가 책임을 져야 할 일에 책임을 지는 등의 정당한 죄의 대가는 당연히 치러야 하겠지만,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희생이 모든 죄인들의 죄를 사하시는 것임을 인정할때 구원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문을 열어두어야 할 것입니다.

 

천국 열쇠는 매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맬 수밖에 없는 경우라도 기꺼이 풀어 열어주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시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은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은 그 매는 행위의 중대한 결과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라는 뜻일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관대, 누군가의 영혼을 천국에서 영원히 쫓아낼 수 있을까요? 감히 그렇게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교회에서 쫓아내거나 구제불능이라고, 구원받을 수 없는 인간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첫 아담에게 세상 만물의 이름을 짓게 하시고 다스리는 통치권을 위임해 주셨습니다. 인간은 그 권한을 범죄와 함께 잃었지요.

 

그리고 두 번째 아담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심으로 서로에 대해 천국을 열어줄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천국은 교회, 즉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신앙고백으로 서로를 확인한 이들의 모임입니다.

 

이 열쇠가 예수님이 사용하셨던 방법대로 사용되려면 먼저 내게 죄를 지은 이에 대해서부터 내 마음의 빗장을 풀어야 합니다. 그게 천국 열쇠의 사용법일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심각한 마음의 고통이 따를 수 있습니다. 타인의 죄로 인해 고통받은 피해자가 용서하는 고통까지 짊어진다는 것, 그것은 십자가의 고통입니다. 그 고통을 이기며 천국의 문을 열쇠로 열어주는 것이 십자가의 길이며,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천국 열쇠를 받아서, 통치권을 가져서, 치리권을 가져서 어깨가 펴지고 권위가 생겨 지위가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열쇠를 받는 순간 예수님의 피 흘리는 고통에 우리도 참예하게 되는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