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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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by 브린니 2021. 1. 3.

*평신도 성경 묵상은 평신도에 의한 평신도를 위한 묵상입니다. 화석화된 동어 반복의 신학적 용어들은 때때로 우리 삶의 부조리한 고통을 위로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보다 피부에 와 닿는 실제적인 깨달음과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나눔을 하기 원합니다.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태복음 15장 25절~28절)

 

 

말씀은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셨을 이방 여인이 자신의 딸이 흉악하게 귀신들렸다고 치유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처음에는 여인의 애원에 대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시다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녀의 떡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을 의미함으로 유대인에게 우선권이 있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유대인이 아닌 우리들은 말씀을 보면 조금은 불편합니다. 굳이 유대인이어야 했는지 우리는 이해할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상황은 예수님이 유대인과 율법사들을 향해서 너희는 헛된 계명으로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한다고 심한 말을 하시고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러워 사람을 더럽게 하며 그들은 하나님이 심지 않은 것처럼 뽑힐 것이고, 그들은 맹인이면서 맹인을 인도하여 구덩이에 빠질 거라고 심판의 메시지까지 말씀하셨던 상황입니다.

 

이런 심한 말로 유대인들을 화나게 하셔서 그들을 피해 이방 지역을 가신 상황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렇게 말씀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유가 서서히 말씀을 통해 드러납니다.

 

유대인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진 축복의 떡의 배타적 특권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호세아 등의 예언자들을 통해서 이상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처럼 유대인에게서 복음 전파가 시작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과 특히 사도 바울에 의해서 이방인에게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성경에서(퀴온)’라는 말은 악한 것을 상징하고 그것을 야유할 주로 사용됩니다. 말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인들을 가리킬 자주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예수님이 사용하신(퀴나리온)’라는 표현은 경멸적인 뜻으로 사용하는들개 사납고 악한 개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집에서 기르는반려견이나강아지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입견대로라는 말을 사용하되 의미에는 경멸적 뜻을 담지 않으시고, 이방인들이 순서에 의하면 먼저가 아니라는 뜻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여인은 유대인의 편견이 들어있는라는 말조차도 뛰어넘는 믿음을 보여줍니다.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는 말을 통해 하나님의 질서에 의해 우선적인 권리를 갖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을 보여줍니다.

 

성경에서는 자신을 개로 인정하는 것을 가장 겸손의 행위로 여겼습니다. 특히 당시 사람들은 자신을 가장 비하하였을 자신을죽은 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표현하셨듯이 집에서 기르는 개들은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힘입어 여인은 자신도 메시아가 베푸는 은혜에 최소한이라도 참여할 있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여인이 이렇게 자신에게 적용한 비유를 놓치지 않고 사용하여 예수님께 자비를 구하는 말로 재차 부탁하게 것은 그만큼 끈질긴 확신과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여인의 입장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로 비유한 것은 이미 너도 그 은혜를 먹을 수 있다는 뜻으로 여인의 요구를 들어준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져오실 구원과 은혜는 유대인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며 이방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을 통해서 여인은 더욱 확신할 있었습니다.

 

여인의 대답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은여자여 믿음이 크도다인데 헬라어 성경에는여자여앞에 감탄사 붙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놀라움과 감탄이 담긴 표현입니다.

 

여자의 말을 들으면서 예수님은 유대인에게서는 없었던 기쁨을 느끼셨습니다. 여자의 확실한 신뢰와 겸손과 인내는 실로 예수님의 마음에 감탄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여인은 이방인 중에서 칭찬을 받은 번째 사람입니다. 앞서 종의 병을 고치려 나아온 이방인 백부장에 이어 번째 사람인 것입니다.

 

사람 모두 공통된 특징은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백부장을 보시고 예수님이 기뻐하시고 유대인 중에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보았다고 말씀하셨고, 여인에게도 믿음이 크다고 감탄하셨습니다. 경우 모두 예수님은 병자를 만나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말씀만으로 고쳐주셨습니다. 사람 예수님이 말씀만 하셔도 나을 거라고 믿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경우를 통해서 성경 독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다는 것을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이스라엘 백성을 뜻한다는 구약의 개념에서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약적 개념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가지 생각해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침묵과 거부와 인정까지 오는 과정에 담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인 예수님은 처음부터 그녀의 믿음을 알고 계셨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 필요가 있습니다.

 

그녀의 마음 중심을 알고 계심에도 유대인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은 유대인의 편견을 그대로 보여주시고 그것을 넘어서는 그녀의 믿음을 드러내게 하시며, 믿음을 인정하시는 과정을 통해 유대인의 편견을 깨뜨리시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제자들에게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녀를 바라보는 유대인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며 유대인들이 거부한 구원의 축복이 어떻게 이방인들에게로 나아가는지 보여주기 위한 뜻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침묵과 거부를 이겨낸 여인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내시고 특별한 은혜를 주시는데, 그것은 바로 소원대로 되리라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소원대로"라는 말은호스 델레이스 직역하면원하는 만큼이라는 뜻입니다. 믿고 나아온 예수님께 거절받는 아픔을 인내로 극복한 여자에게 원하는 만큼 보상해 주시겠다는 예수님의 의지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침묵과 거절까지도 이겨낸 사람에게는 원하는 만큼 주어지는 보상이 있습니다. 길은 영광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주님의 침묵 앞에 묵묵히 나아가며 소망을 잃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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