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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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by 브린니 2020. 12. 15.

*평신도 성경 묵상은 평신도에 의한 평신도를 위한 묵상입니다. 화석화된 동어 반복의 신학적 용어들은 때때로 우리 삶의 부조리한 고통을 위로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보다 피부에 와 닿는 실제적인 깨달음과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나눔을 하기 원합니다.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마태복음 15장 12절)

 

 

말씀은 예수님의 이적과 기사의 소문을 듣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 예수께 나아와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으로 트집을 잡으려 때에 예수님이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들에게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신 후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묻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때문에 바리새인들이 크게 화가 났다는 것을 제자들이 고하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을 존경했고 그들의 말을 철썩같이 믿고 따랐습니다.

 

제자들 역시 예수님이 그들을 부르기 전까지는 다른 유대인들과 같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그렇게까지 종교 지도자들을 분노하게 하신 말씀의 의미를 더욱 정확하게 알고 싶었을 것입니다.

 

공동번역에는 말씀을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지금 하신 말씀을 듣고 비위가 상한 것을 아십니까?”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말씀을 듣고 화가 나고 분노했음을 있습니다.

 

자기들의 잘못된 생각을 지적받을 종교 지도자들의 반응은 분노였습니다. 분노는 가지 원인 때문입니다.

 

첫째, 지금까지 옳다고 믿어왔던 절대적인 믿음을 잃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배반이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노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몸과 마음과 시간과 열정과 재능을 바쳐 믿어왔던 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신이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거부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말한 상대방을 이단시해야 하며 이때 필연적으로 분노의 감정이 따라옵니다. 진리를 인정하지 못하는 이는 진리를 두려워하고 외면하고 싶어합니다. 가장 쉽게 외면하는 방법은 미워하고 분노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혐오하고 싫어하는 감정이 불타오릅니다.

 

자신이 잘못된 믿음을 가졌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이 여태까지 믿어왔던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진리를 말하는 이를 없애버려야 합니다. 입을 다물게 해야 불안과 고통이 없어지니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의 분노와 미움을 받으셨고, 그들의 선동하에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했습니다.

 

오늘날 극단적 종교인들이 심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을 봅니다. IS 단체들의 잔인함 뒤에서 우리는 이런 심한 분노를 봅니다. 그리고 분노 뒤에는 두려움과 불안을 억누르고 자신들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확신하려는 몸부림이 있습니다.

 

코로나 2 유행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당한 교회의 교인들은 폭력적인 행위로 건물 철거에 맞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지역사회 주민들의 지탄을 받으면서도 지역 개발에 계속 반대했고, 결국 철거 인력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교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까지 믿어왔던 것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의 분노를 봅니다.

 

분노, 비위상함, 인정할 없음,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바꿀 없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로 바꿀 없는 신념이라고 믿는 이상 감정에서 벗어날 없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그렇게 절대적으로 믿어야 근거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가 있을 만큼 작은 분일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아마도 하나님의 아주 작은, 극히 미미한 부분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겸손해야 하고, 내가 알고 있는 , 혹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아주 작고 미미하며, 어쩌면 잘못 알고 있을지도 모를 가능성에 대해서 열어 두어야 합니다.

 

알기를 원하고, 혹시 내가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내가 아는 것이 다인 것처럼 교만하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오랜 세월 동안 마음을 다해 믿어왔던 것이라 할지라도, 진정 올바른 진리 앞에서 기꺼이 내려놓을 있을 만큼 겸손하다면, 예수님을 못박은 종교지도자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내가 죽을 때까지 배워도 하나님을 없다는 , 그래서 이제까지 믿어온 것에 대해 목숨 필요가 없다는 , 언제든 참된 진리 앞에 유연하게 내가 배워온 것들을 다시 점검해보려는 자세, 그것이 우리 신앙의 기본 자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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