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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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by 브린니 2020. 12. 6.

*평신도 성경 묵상은 평신도에 의한 평신도를 위한 묵상입니다. 화석화된 동어 반복의 신학적 용어들은 때때로 우리 삶의 부조리한 고통을 위로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보다 피부에 와 닿는 실제적인 깨달음과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나눔을 하기 원합니다.

 

그들이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그 곳 사람들이 예수이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다만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마태복음 14장 34절~36절)

 

 

게네사렛은 갈릴리 호수 서쪽에 자리잡은 비옥한 평야 지역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즉시 알아보고 모여들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 범위가 아주 넓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자기들만 것이 아니라 근방에 두루 통지했다고 합니다. ‘통지하다라는 말은아포스텔로사자를 보내어 소식을 전한다 뜻입니다.

 

게네사렛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일일이 알리고 가르쳐주었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의 사역이 유대에 알려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입은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들어서 예수님이 차례차례 사람씩 만나주실 없지만, 병자 스스로 지나가는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나을 거라는 강한 믿음과 기대를 가진 것입니다.

 

나음을 얻으니라 말은디에소데산으로완전히 구원을 받다라는 뜻입니다. 몸의 병이 낫는 것뿐만 아니라 영혼의 질병까지 나아 완전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영혼의 질병이란 죄가 들어온 세상에서 우리가 갖게 되는 여러 욕망들로 인해서 생기는 고통으로부터 자유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고통받는 이유는 어떤 면에서 삶의 욕망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갖고 싶고, 무언가를 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이기고 싶고, 높은 곳으로 오르려는 욕망이 우리를 힘들게 하며 실패했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 이후에 가시와 엉겅퀴를 땅에서 한정된 자원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치열한 경쟁의 이기고 지는 싸움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불가피한 전쟁과 같은 속에서 욕망으로 인해 영혼이 병들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시려고 하나님이 직접 육신을 입고 예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전까지 정상적인 인간의 삶을 사셨습니다. 나사렛 지방의 사람들이 "그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고 말했듯이,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목수 일을 배웠고, 목수라는 직업에 충실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대로 충실히 배워야 것들을 배우고 직업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은 어려서부터 성전에서 말씀을 읽고 토론하셨습니다. 인간의 삶에 충실하되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를 게을리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래야 것입니다. 학생으로서 충실히 공부하고 직업인으로서 충실히 일하되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그분이 인간을 지으신 이유와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님 뜻에 합당한지 알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때가 되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음을 알리기 위해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치유하고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오심으로 땅에 임하게 천국을 누리기 위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천국의 삶은 가시와 엉겅퀴가 가득한 땅의 삶과 다릅니다. 그러므로 천국 백성의 눈으로 땅의 가시와 엉겅퀴를 바라 알아야 합니다.

 

천국 백성의 눈으로 보면 땅의 가시와 엉겅퀴는 유한하며 그것이 주는 고통은 우리의 영원한 삶을 제한할 없습니다. 길어야 100년이 되지 않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 받는 고통일 뿐이며, 천국 백성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땅의 가시와 엉겅퀴가 주는 고통에 대해서 초월적인 마음으로 기꺼이 견딜 있게 됩니다. “천국이 임하였다 말씀하신 예수님의 의도를 그대로 받아 이미 임한 천국 백성으로서의 자세로 땅의 고통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3년을 가르치신 후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가시와 엉겅퀴에 찔려 피를 흘리며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가 찔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에 대해서 대속해 주심으로 본을 보이셨습니다.

 

우리 역시 작은 예수가 되어 기꺼이 유한한 땅의 가시와 엉겅퀴에 찔릴 , 어린 양처럼 침묵하며 십자가의 길을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영혼이 병들지 않은 자의 길입니다.

 

그것은 매우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일상사에서 흔히 벌어지는 작은 손해, 타인의 욕심 때문에 내가 피해를 입게 되는 , 혹은 타인을 위해 내가 가진 재물이나 시간, 재능을 기꺼이 내어주는 등에서 시작됩니다.

 

시험에서 경쟁 상대라 할지라도 상대가 모르는 것을 물어올 기꺼이 마음을 다해서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이걸 상대가 몰라야 내가 이긴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게 정말 시험에 나올지 나올지 모르니 말입니다.

 

미국의 어느 유명 대학 입시에서는 같은 시험 점수를 받은 백인 학생과 흑인 학생 중에서 유색 인종에 대한 배려로 흑인 학생을 뽑아주었다고 합니다. 물론 백인 학생은 억울하겠지만 그것이 지나온 역사에 대한 속죄임을 깊이 생각해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의 대가를, 아무런 죄도 없는 내가 치러야 ?’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걸 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이 대가를 치르는 , 그것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직장생활을 때도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는 것이 매우 합당하고 동료들 간에 공평하게 일이 배분되는 것이 맞지만, 때때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생깁니다.

 

물론 대가보다 많이 일하기를 강요받는 상황은 옳지 않습니다. 직장 상사나 오너에게 부당한 일을 강요받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지만 강요받은 상황이 아니라 스스로 동료를 돕거나 나의 귀한 재능과 시간을 발휘하여 상대방을 도울 있는 경우라면 기꺼이 그렇게 알아야 합니다.

 

각박한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떤 이들은 자꾸 그렇게 공짜로 해주다보면버릇되어 당연히 해주는 걸로 안다혹은처음에는 고마워하지만 자꾸 그러다보면 나를 우습게 보게 된다 등의 말로 후배들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나 제자들의 사역 정말 많은 말로 차분히 정성껏 앞뒤 전후 좌우를 설명하되 절대로 비굴하거나 얕잡아보일 만큼 약해보이지 않는 것을 있습니다.

 

사랑이 많고 부드럽고 간절하고 따뜻하지만, 한편으로 단호하고 사리에 딱딱 맞으며 논리적이고 당당한 어투를 발견합니다.

 

사랑과 배려로 상대방을 대하고 기꺼이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내어 봉사할 알지만, 결코 얕잡아볼 없는 당당함과 자존감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힘이 그리스도인들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사람들로부터 칭찬받고 사랑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의 경쟁과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배려와 봉사를 귀찮아하지 않으며, 육신의 건강과 영혼의 건강으로 세상의 고통과 공격을 이겨내는 그리스도인!

 

그에게서 나오는 힘은 오늘도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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