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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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by 브린니 2020. 12. 18.

*평신도 성경 묵상은 평신도에 의한 평신도를 위한 묵상입니다. 화석화된 동어 반복의 신학적 용어들은 때때로 우리 삶의 부조리한 고통을 위로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보다 피부에 와 닿는 실제적인 깨달음과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나눔을 하기 원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마태복음 15장 13절~14절)

 

 

말씀은 바리새인들에 대해서 예수님이 강하게 비판하시어 바리새인들이 기분이 몹시 상한 후에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비유하시면서 하나님이 심지 않은 이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심은 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들을 하나님이 심은 식물이라고 자주 표현하는 것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밭이요 포도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심으신 포도나무에 자주 비유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향해 하나님이 심은 이들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들의 위선이 어떻게 종말을 맞을지 단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본래 말씀하신 뜻과 의도대로 가르치지 않고 인간의 전통으로 내세우는 교리는 모두 뽑힐 것이라는 심판의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들을그냥 두라 하십니다. 이는아페테 아우투스라는 말로그들을 가게 하다’ ‘포기하다’ ‘버려두라 의미입니다. 밭에 자라난 가라지를그냥 내버려 두라 하신 말씀과 비슷한 뜻입니다.

 

어쩌면 냉정하게 들리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라지의 비유에서 보았듯이 가라지는 뿌리가 깊어서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히게 되는 이치를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차갑게 느껴지지만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의 운명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맹인이면서 맹인을 인도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헬라 속담에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가 가르칠 없는 것과 같다 말이 있습니다.

 

속담을 사용하여 예수님이 설명해주고 계십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영적 맹인과 같아서 가르쳐서는 되는데도 가르치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영적 맹인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생각해 보면 그들은 율법의 뜻과 정신을 깨닫지 못하고 다만 문자적인 해석만으로 자신의 평생을 걸고 살아갑니다. 문자적 해석의 전통을 하나님 말씀처럼 지키기 때문에 그것이 신앙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진짜 살아있는 율법의 뜻이신 예수님이 오셨는데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것이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는 영적 무지입니다. 이렇게 보지 못하면서 가르치다 보니 비극이 일어납니다.

 

본인도 보지 못함으로 구덩이에 빠질 아니라 가르침을 따른 이들도 모두 구덩이에 빠지게 됩니다.

 

구덩이란보뒤논이라는 말로 들짐승을 잡기 위해 들판에 파놓은 함정이라는 뜻인 히브리어파하트 같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구덩이에 빠진다는 것은 함정에 빠지는 것과 같습니다.

 

함정이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왜냐하면 함정이란 거기에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절대로 빠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함정이 있으리라고는 결코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은 곳에서 빠졌을 우리는 "함정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철저하게 말씀을 암송하고 말씀의 일점일획이라도 지키겠다는 열의로 살아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그들의 경건과 가르침을 믿고 절대적으로 따른 백성들은 추호도 의심이 없었던 순간에 바로 구덩이에 빠집니다. 그래서 참으로 더욱 안타깝습니다.

 

믿음과 열정이 바른 길로 향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들은 바른 길로 없었을까요?

 

바로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한 교만 때문입니다. 그것이 전부라고 믿는 ! 자신이 믿는 안에 크신 하나님을 가두는 ! 순간 죄가 되고 맙니다.

 

코로나 3 대유행으로 매일 확진자가 1,000명이 넘어서는 시국에 가슴 아픈 뉴스를 접합니다.

 

성도 500 명이 모여 1 2일을 함께 보낸 교회 집회에서 확진자가 발생해 당국이 초긴장 상태라는 소식입니다.

 

시국에 그래야만 했을까 싶습니다. 함께 1 2일을 보내며 은혜로운 시간을 보내겠다는 그들의 마음은 구덩이에 빠지고 말았을까요?

 

너무 믿음이 강했나 봅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이 심으신 백성이기에 절대로 안전할 거라고 철썩같이 믿었나 봅니다. 믿음이 함정에 빠지는 것을 보니 착잡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은 맹인이 맹인을 인도한다고 하셨습니다.

 

앞서 가르치는 자도 맹인이지만, 뒤에서 따라가는 자도 맹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뒤에서 따라가는 사람이 맹인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따라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교회 지도자만 잘못했다고 말할 없습니다. 교회 지도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맹신과 복종 또한 본인이 맹인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잘못을 따질 없이 말씀 앞에 개인이 모두 스스로 눈을 떠야 합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켜 일은 라틴어로 되어 있던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누구나 읽을 있도록 것입니다.

 

누구나 각자 성경을 읽고 이해해 자기 분별력을 갖게 하여 교황의 권력으로부터 벗어나게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종교개혁의 정신을 다시 생각해보며 성도 개인이 스스로 분별력을 갖는 눈을 떠서 맹인을 따라가는 일이 없어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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