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시] 빙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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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창작 시] 빙하가 없다

by 브린니 2021. 1. 3.

빙하가 없다

 

 

모든 시대에서 그랬지만

시인들에겐 자신의 시대가 가장 춥고 눅눅하고 병들었다

모른 척 정남향에 모여 햇볕 쪼이면 나을 텐데

비겁을 모르는 영웅들은

시대의 우울을 노래하다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검은 태양이 날마다 반복했다

뜨고 지고 뜨고 지고

배고프지 않지만 허기지고 헛헛했다

빠진 게 있었다

사랑? 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쉬운 결말 같았다

돈? 이라면 치명적이지만 좀 치졸했다

우리 삶에는 무엇이 없는가

삶 빼고는 다 있는 풍요

이건 사는 게 아니야, 자주 말할 수밖에.

도처에 죽음보다 못한 생이 널렸다

여자들은 발악하고

남자들은 자기 세상을 잃고 억울해했다

매일 싸구려 바나나를 먹으며

원숭이 시절로 돌아간 인간의 비참을 전했다

모든 시대에서 그랬지만 시인들은 만족하지 못했다

자기 생도 그랬지만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도 없었다

인생은 행복이 목적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행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무언가 빠진 것이 있었다

가늘고 긴 쇠꼬챙이―

―인간은 존엄하다

신이 창조하지 않았다면 이 말은 무색하다

신은 왜 존엄한 쓰레기를 계속해서 방출하는가

지구는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며 녹아내리고 있다

시인들은 소소하고 달달한 빙하에 서서히 중독된다

단단하고 단호한 얼음바위를 찾는 공룡들 사이에서

그저 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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