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 폴리아노 <고래가 보고 싶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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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줄리 폴리아노 <고래가 보고 싶거든>

by 브린니 2020. 12. 19.

너무 귀한 선물을 받을 때는 순간 달팽이처럼 움츠러듭니다. 어쩔 몰라 덜컥 겁이 납니다. 나를 잘못 보고 이런 내게 주었나? 나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나?

 

그러면서도 우리는 선물처럼 귀한 무언가를,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그것을 그리움이라고 부르지요. 그리움은 현실과는 다른 무엇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현실로 충분하다면 우리는 무언가를 기다릴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여기 기다림과 그리움을 이야기하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고래가 보고 싶거든>이라는 책입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인 줄리 폴리나오의 글에 칼데콧 수상 작가 에린 E. 스테드가 그림을 그려 만든 작품입니다.

 

아이가 고래를 보고 싶어합니다. 고래를 보려면 아이에게는 창문과 바다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다리다가 문득 고래인가 싶은 것이 사실은 고래가 아니라 새였다는 것을 깨달으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간을 버티기 힘들어 편안한 의자에 앉아 담요를 덮고 싶어도 참아야 합니다. 깜빡 잠이 들면 되니까요.

 

기다리는 시간이 무료해 향기로운 예쁜 장미에게 정신을 빼앗겨서도 됩니다. 눈길을 사로잡는 해적선에도 정신이 팔려서는 안됩니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펠리컨이나 벌레들, 구름과 태양에게 마음을 주어도 됩니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집중해서 계속 기다리는 동안 아이가 아래로 아주 커다란 고래가 지나갑니다.

 

고래는 아이의 마음을 아는 바위 같은 코를 아이의 앞에 들이밉니다. 아이는 고래를 알아볼까요?

 

하루하루 반복되는 시간을 살아가면서 문득 마음은 현실의 삶을 진짜로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떤 그리운 것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소망하며 지낸다는 생각이 때가 많습니다.

 

아주 오랫 옛날 그리스에서 플라톤이라는 철학자가 그래서 우리의 이상향은 이데아라고 말했는지도 모릅니다. 가까운 중국에서는 장자라는 사람이 잠을 자다 나비가 꿈을 꾸었는데, 무엇이 현실인지 헷갈렸답니다. 내가 나비가 꿈을 건지, 원래 내가 나비인데 사람이 꿈을 꾸는 건지.

 

사고나 질병으로 심장이 멎었다가 기적처럼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죽은 이후에 분명하게 의식이 살아있었다고 합니다. 서울대 의대 정현채 교수는 죽음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고 강연을 하면서 인간이란, 몸이라는 물질에서 의식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존재하는 의식이 잠시 육체 안에 들어와 몸을 체험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속에서 마음이, 의식이 꿈꾸고 지향하는 것은 어쩌면 육체의 한계로는 상상할 없는 어떤 것인지 모릅니다.

 

그리움과 기다림의 궁극적 목표는 철학, 종교, 사회 분야에서 각각 다릅니다. 사회운동가나 혁명가들은 개혁된 사회의 아름다움을 그리워할지도 모릅니다.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은 조국의 독립을 그리워했지요. 종교인들은 극락이나 천국을 그리워합니다.

 

그리워하는 대상은 달라도 마음속 사무침은 어느 것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현실의 향기로운 꽃과 안락, 두려움과 불안, 마음을 빼앗기는 유희 무엇으로도 대체할 없는,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꿈이 있기에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살아갈 있는지도 모릅니다.

 

꿈이 어느 검푸른 아래에서 헤엄치던 거대한 고래처럼 코끝을 위로 내밀어주면 좋겠습니다. 그날까지 잠시도 한눈을 팔아서는 되겠지요. 그래야 고래를 만날 있으니까요.

 

감당할 없는 선물처럼 어느 , 고래를 만나면 인사를 하겠습니다. 그리웠다고, 보고싶었다고.

 

* 이 글은 귀한 선물로 마음에 위로를 주신 고운 분들께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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