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팡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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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파스칼 <팡세>

by 브린니 2020. 12. 16.

블레즈 파스칼(1623~1662)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기까지 그의 고뇌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파스칼은 수학자이며 물리학자이며 발명가이며 철학자이고 신학자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타이틀을 가지기에 턱없이 적은 나이 39세에 요절했으니 얼마나 천재였는지 만합니다.

 

16세에 정리한 그의 수학식은 당대 최고의 수학자였던 데카르트조차 믿을 없는 실력이라고 평했고, 18세에 세무감독관으로 일하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계산기를 발명했으며, 심한 두통을 잊기 위해 수학 연구를 하는 가히 일반인으로서는 범접할 없는 천재의 모습을 있습니다.

 

그런 파스칼이 자기 단상을 드문드문 적은 것을 사후 7년이 지나 출판한 책이 <팡세>입니다. ‘팡세 그대로생각이라는 뜻입니다.

책에 담긴 파스칼의 생각은 앞서 말한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로 요약할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게 뒤에 마디를 덧붙여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않는다라고 말입니다.

 

이렇듯 <팡세> 기독교 변증론으로 통하기도 합니다. 보통 인간으로서는 범접할 없는 정도의 천재성을 가진 파스칼이 스스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에 불과하다는 한계성을 느꼈다는 것이며, 한계성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향하게 됩니다.

 

파스칼은자신의 한계를 모르는 이성은 성숙한 이성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천재적 두뇌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가 깨달은 것은 결국 이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파스칼이 경험한 신비한 체험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파스칼의 조카가 심한 눈의 질병으로 당시 최고의 외과의사도 치료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예수의 면류관이라고 전해지는 성스러운 유물에 닿자 순식간에아버린 것입니다.

 

모습을 직접 파스칼은 충격을 받았고, 당시 파리의 유명한 의사들과 교회도 인정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때로부터 파스칼은 인간 이성의 한계를 목도하였고, 이상의 힘을 지닌 그리스도의 권능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파스칼은 신학적 지식이 풍부하지 않았기에 자신의 단상을 지식인의 언어로 썼을 뿐인데, 그것이 오히려 일반인에게는와닿았고 친숙한 기독교 변증론으로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한계를 알고 내적 요구에 의해서 신앙 원리를 깨달아 알게 사람은, 기존 종교체제의 도그마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파스칼이 살았던 시대는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여러 개혁적 운동들이 일어남과 동시에 로마 교황 체제의 가톨릭에서도 예수회 운동이 일어나던 시대였습니다.

 

중세를 거쳐온 가톨릭 신앙의 문제점들이 첨예하게 드러난 상황에서 여러 방면으로 신앙개혁이 일어나던 시점에 파스칼이 선택한 것은 얀센주의였습니다. ‘장세니즘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네덜란드의 가톨릭 신학자 코르넬리스 얀세니우스가 주장한 것으로 인간의 비참과 한계를 강조하고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파스칼은 장세니스트로서 예수회와 논쟁을 벌이면서 인간 이성의 한계를 강조하여 인간은 비참한 상태에 놓여있으며, 그것을 모르고 신을 찾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인간 실존에 대한 인식이 후대 실존주의자들의 맥락과 같아서 키르케고르와 함께 파스칼이 다시 다루어지는 이유가 됩니다.

 

파스칼의 냉정한 이성은 인간의 악함과 남루와 비겁과 비참을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직시했습니다. 이런 실존 상태에서 구원해 유일한 길은 기독교적 메시아 구원론밖에 없었습니다.

 

파스칼 사후 350 년이 흐른 지금은 파스칼의 유일한 해결책이 과연 최후의 해답이냐에 대해서 여러 의견이 있을 있습니다.

 

파스칼의 믿음처럼 서양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신비 체험을 통해서든 이성의 한계 체험을 통해서든 기독교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믿어왔으나 세계1,2차대전을 통해서 회의와 환멸을 느끼고 동양으로 눈길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사상을 기반에 서양 지식인들이 20세기 초엽 전쟁을 겪으면서 동양 사상과 종교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서 이제까지 믿어왔던 대한 개념을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지금 시대의 사상사에 있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파스칼의 <팡세> 읽을 그가 내린 정답으로서의 기독교가 매우 폭이 좁게 느껴질 있습니다. 그러나 사상의 발전기에 그가 있는 자리로 이해한다면 <팡세> 의미는 좁아지지 않습니다.

 

파스칼은 종교개혁의 흐름 속에서 나름의 길을 찾았습니다. 물론  길이 완전한 해답이 되지는 못합니다. 그는 심한 금욕주의 계열에 섰고, 스스로 자신의 몸을 고행 속에 내던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중세 암흑기를 거쳐 이런저런 종교개혁 운동의 범람 속에서 천재가 자신의 체험을 통해 맘과 몸을 바쳐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 몸부림을 흔적이라고 말입니다.

 

몸부림의 흔적은 <팡세>라는 책으로 남았고, 인간의 이성의 힘을 철썩같이 믿고 있는 지식인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명저로 기억할 있습니다.

 

고통과 비참의 경험이 조금만 있다면 책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파스칼의 고뇌에 충분히 공감할 있으며, 그래서 조금은 겸손해질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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