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페르난두 페소아 <여행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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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페르난두 페소아 <여행한다는 것>

by 브린니 2020. 12. 11.

여행한다는 것

 

 

여행한다는 것! 이 나라 저 나라 버리고 다니는 것!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되는 것,

영혼에 뿌리가 없기에

오로지 보기 위해 사는 것!

 

나 자신에게조차 속하지 않는 것!

곧장 나아가는 것, 목적 그리고

그걸 이루겠다는 열망의

부재를 좇는 것!

 

그렇게 여행하는 게 여행이지.

단 여정에 대한 꿈 이상은

아무 가진 것 없이 간다.

나머지는 하늘이고 땅일 뿐.

 

1933. 9. 20

 

―페르난두 페소아 Fernando Pessoa(포르투갈, 1888-1935)

 

 

【산책】

 

많은 사람들이 버킷리스트로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몇 가지 중 하나로

세계일주 여행을 꼽곤 한다.

 

대개는 정신없이 사진만 찍다가 돌아오기 일쑤지만 그래도 보는 것이 남는 것이리라.

또 사진이 남으니까 여행을 돌아보며 추억에 잠길 수도 있다.

 

페소아는 여행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라 말한다.

내가 살던 곳이 아닌 다른 곳에 가면 뭔가 다른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페소아는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된다고 말한다.

누구나 한 번쯤 자신과 전혀 다른 딴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이 되어본다는 것, 이것도 버킷리스트일 수 있다.

누구나 원하는 모델이 있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된다면 누구가 되고 싶은가.

누군가는 말한다.

 

“내가 아니라면 다 좋아.”

 

‘나’라는 존재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일 뿐이다.

 

그런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은 정말 어떤 것일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정말 상상할 수조차 없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들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그러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된다는 것은 결국

영혼에 뿌리가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나 자신에게조차 속하지 않는 것!

부재를 좇는 것!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그 장소의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이다!

 

그런 여행이 가능할까?

아무리 그런 여행이 환상적일 수 있다 해도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일탈하는 여행은 좀 곤란할 듯 하다.

 

아마도 페소아가 말하는 여행이란

예술가들이 풍경이나 사건 혹은 자신들의 상상과 혼연일체가 되는 특별한 경험이 아닐까.

 

평범한 사람들은 먼 나라이든 가까운 곳이든 좋은 풍경과 문화와 예술을 보고 즐기며

사진 많이 찍고, 돌아와서 사진보면서 추억을 되씹으며 얘기꽃을 피운 게 가장 좋을 듯!

 

옛날 사람들은 돈 한 푼 없이 팔도를 돌아다니며 무전여행을 하기도 했다는데……

아무 집에나 들어가 밥 한 술 얻어먹고, 잔칫집을 만나면 술도 한 잔 얻어마시고……

 

아무것 가진 것 없지만

하늘과 땅은 여행자를 품어주었다.

 

주말에는 가까운 곳 어디에라도 가서 가면놀이라도 하고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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