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 진짜 교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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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장편소설 연재] 진짜 교회 (34)

by 브린니 2020. 10. 4.

진짜 교회 34

 

 

느헤미야 형제는 성가대장을 맡고 있는 현인규 장로와 마주 앉았다.

 

“장로님, 예배 때마다 성가대가 아름다운 찬양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형제님. 우리가 정말 많이 연습했습니다. 아무튼 좋게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로님, 죄송하지만 김영수 목사님께서 안식년을 보내시는 동안 성가대도 안식년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혹시 지휘자와 반주자, 연주자와 솔리스트들이 사례를 받기 때문입니까? 그 문제라면 김영수 목사님께서도 말씀하셔서 교회에서 더 이상 사례비를 주지 않았습니다.”

 

“네, 잘 압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분들은 사례를 받고 계시지 않나요?”

“아, 그건……. 제가 개인적으로 그분들을 격려하고, 후원하는 차원에서 사비로 드리는 것입니다.”

 

“장로님, 교회 성가대 지휘자나 연주자들에게 지급되는 사례비는 예술가들 후원금과는 다릅니다. 담임 목사님이 금하셨는데도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요.”

“형제님, 교회 봉사하는 분들을 격려하는 것은 거의 관행입니다. 예의라고 보시면 좋지 않을까요? 사실 교회 청소하는 분들에게도 사례를 하고 있는데요.”

 

“교회 청소하는 분들에게 드리는 것은 일종의 구제 아닌가요? 청소를 맡아서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생활이 어려운 분들이니까.”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분들이 청소를 하시지 않으면 성도들이 그냥 돌아가면서 청소를 해도 되지 않나요? 그럼 사례할 필요도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렇지만, 그분들을 구제하는 차원도 있고, 성도들이 결의한 것도 있고 해서.”

 

“말하자면 형편이 어려운 분들께 청소를 맡기고, 구제를 하면 좋겠다는 아주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신 것이군요.”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그럼 이런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분들이 교회 청소를 맡지 않고, 성도들이 돌아가면서 조를 짜서 성전을 청소하고, 그분들을 순수하게 구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들은 그 시간에 다른 일거리를 찾아 수입을 더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네, 형제님 말씀도 좋기는 합니다만…….”

 

“그 문제는 평신도 회의에서 말씀 나누겠습니다. 다시 성가대 문제인데요.”

“형제님, 우리 교회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교회도 다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문제가 되나요?”

 

“아뇨. 지휘자나 솔리스트에게 사례를 하는 것도 문제지만 사례를 하지 않으면 그분들이 봉사를 그만두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 그분들은 신앙이 좋으신 분들이고, 사례를 안 한다고 교회를 떠나실 분들도 아닙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사례를 하지 마세요.”

“아, 아니, 그게…….”

 

“장로님이 말씀하시기 어려우시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니, 형제님. 그렇게 하시면…… 좀…… 곤란한데요.”

 

“우리 교회는 앞으로도 이웃을 섬기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미 충분히 있는 자들에게 굳이 사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성가대와 같이 일종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분들은 그분들 스스로 모범을 보이셔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사회를 위해 재능을 기부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관행이라는 이유로 그분들이 하나님을 위해 재능을 바칠 수 있는 기회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로님, 대화를 나누다 보니까 저는 사례비 지급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장로님께서 성가대를 바라보는 관점에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

 

“장로님은 장로님께서 맡은 성가대가 최고라는 소리를 들어왔고, 앞으로도 그런 명성을 계속 듣고 싶어 하지 않나요?”

“아, 그건…… 뭐. 우리 교회 성가대는 이미 최고라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솔직히 그런 말 들어서 싫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장로님께서는 계속해서 그런 말씀을 듣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굳이 지휘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고, 그 때문에 성가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혹시나 계속 이어오던 명성이 유지되지 못할까 걱정하시는 것 아니십니까?”

“뭐, 그런 생각도 좀 있지요. 그럴 리야 없지만 늘 받던 사례를 받지 않으면 아무래도…….”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그분들의 신앙을 믿어야 합니다. 설령 그래서 지휘자나 다른 분들이 교회를 떠난다고 해도 거기에 대해서 장로님이 책임지시거나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문제는 장로님께서 김영수 목사님이 몇 달 전부터 부탁하신 것을 이행하시지 않고 계속 사례를 주신다면 그것은 거의 뒷돈이나 뇌물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네? 무슨 그런 말씀을…….”

 

“계속 성가를 잘 불러달라고 뒷돈을 주는 것 아닙니까? 장로님은 10년 넘게 성가대를 맡아오셨고, 또 지금의 성가대를 세팅하신 분입니다. 장로님이 맡으신 뒤로부터 우리 교회 성가대는 최고라는 명성을 듣기 시작했고, 오늘날까지 그 어떤 교회도 따라올 수 없다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그런 것에 조금이라도 해를 끼칠까봐 걱정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런 걱정을 하는 것이 뭐가 잘못 되었나요? 당연한 걱정 아닐까요?”

 

“왜 교회의 성가대를 장로님께서 걱정하시죠?”

“제가 맡고 있고, 제 교회 성가대를 제가 걱정하는 것이 뭐가 문제입니까?”

 

“그럼 이렇게 말해봅시다. 주님의 성가대를 왜 장로님께서 걱정하십니까?”

“네?”

 

“교회는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주님의 성가대에 왜 장로님께서 사례비를 지불하십니까? 교회가 더 이상 지급하지 않기로 한 것을 장로님께서 대신 주고 계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하실 일을 장로님이 대신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분들이 하늘나라에 가서 받아야 할 상급을 왜 장로님이 대신 주셔서 그분들이 상급을 받지 못하도록 막으시는 거죠?”

“아, 아니, 형제님, 정말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제 말씀이 지나친지 아닌지 하나님께 기도하고 여쭤보십시오. 그리고 올해 1년은 성가대 안식년으로 보냈으면 합니다.”

“그건 정말 곤란합니다. 이미 올해 성가대 스케줄이 나왔고, 또 몇 군데 공연을 나가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장로님, 제가 드리는 말씀을 아직도 이해 못하십니까? 제가 왜 성가대가 안식년을 갖기를 희망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시겠습니까?”

“네, 정말 저는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가대가 뭐가 어쨌다고 개혁 대상이 되어야 합니까?”

 

“개혁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개혁의 주체가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개혁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나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가대가 하나님을 온전히 찬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고 교회 성가대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우선이지 다른 데 나가서 공연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형제님, 우리 성가대가 어디가 부족해서 하나님을 온전히 찬양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성가대원들 사이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은요?”

“네? 아, 그건…… 잘 마무리가 됐고…….”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것은 어떻습니까? 가장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3부 예배 성가대를 어떤 지휘자가 맡을 것인가를 두고 늘 갈등이 있다는 것은요?”

“뭐, 그거야. 어떤 조직이나 그 정도의 힘겨루기야 다들 조금씩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교회가 어떤 조직인가요? 어떤 성가대가 좋은 시간에 배치되고자 싸우는 것이 주님의 뜻에 맞는 것입니까?”

“그 정도야 늘 있는 일입니다. 우리 교회만 그런 것도 아니고.”

 

“장로님. 계속 그런 식으로 생각하시니까 제가 안식년을 갖자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교회입니다. 성가대 역시 작은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자리다툼을 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죄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큰 죄라도 되나요?”

 

“교단 총회장 선거에서 서로 이기려고 돈을 뿌리고 있지 않습니까? 자리싸움은 심각한 죄입니다.”

“그거야 그분들이 워낙 알려진 분들이고, 또 지도자급이니까 문제가 될 수도 있겠죠. 우리는 그저 좀 잘하려는 의식이 강하다보니 서로 그런 식으로 부딪히는 것뿐입니다. 그렇다고 엄청 싸우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뭐, 연말에 약간 갈등이 있지만 잘 조정되고 있습니다. 2, 3, 4부만 순번제로 돌리고 나머지 성가대들은 제자리를 잘 지키고 있습니다.”

 

“장로님, 계속 그렇게 다른 말씀을 하시면 성가대장을 바꿀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형제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성가대장은 거의 바뀌지 않는 자리입니다. 선임 장로님께서도 20년 가까이 맡아 오시다 저에게 물려주셨고요.”

 

“성가대장은 주님 뜻을 받들어 목사님께서 임명하시는 자리이지 누가 누구에게 물려주는 자리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음악을 전공하신 장로님들께서 맡아 오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법도 없지 않습니까?”

“그건 형제님이 잘 모르셔서 하는 말씀입니다. 음악에 대해 잘 모르는 분이 성가대를 맡으면 성가대원들이 말을 잘 듣지 않아요. 음악을 모르면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거든요.”

 

“장로님, 장로님 말씀을 계속 듣다보니 정말 성가대는 매우 큰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문제라니요. 성가대만큼 우리 교회의 자랑거리도 없습니다.”

 

“장로님,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성가대가 주님만 찬양합니까, 아니면 성도들에게 은혜 끼치는 것이 더 큰 목적입니까?”

“당연히 하나님을 찬양하고,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것이지요. 그건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이론적으로 그렇지요.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어느 것에 더 비중을 두고 찬양하고 있습니까?”

“그건 이론적으로도 그렇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우리 성가대는 둘 중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솔직해져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가대의 찬양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좀 더 솔직하게 우리는 연습할 때나 실제 찬양할 때 사람들이 듣기에 좋게 하려고 얼마나 애씁니까?”

“그게 왜 나쁘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성도들이 듣고 은혜를 받으면 좋은 것 아닙니까? 그럼 준비도 철저하게 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불러서 성도들에게 은혜도 못 끼치고,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리지 못하면 좋겠습니까?”

 

“장로님, 지금 우리 교회들의 문제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명목 하에 인간의 이름을 더 높이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목회자는 자신의 설교가 남들에게 인정받는 데 더 초점이 있고, 성가대는 찬양을 잘 했다는 소리를 듣는 데 더 관심이 있지 않습니까?”

“아니, 그게 왜 잘못되었다는 건지, 원. 목사님 설교가 은혜를 끼쳤는지 모니터링하고, 성가대 찬양이 은혜로웠는지 알아보는 게 뭐가 문제죠?”

 

“장로님, 도저히 말씀이 잘 안 통하네요. 우선 지휘자나 대원들에게 사례하는 것을 그만두십시오. 그리고 성가대 안식년을 갖고,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찬양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아니, 형제님. 내년이면 몰라도 올해는 스케줄이 꽉 짜여 있다니까요?”

 

“그럼, 내년에는 정말 안식년을 가지실 건가요?”

“그건 그때 봐서…… 아니, 정말 왜 안식년을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목회자야 그동안 정말 교회를 위해 헌신하셨으니까 1년 정도 쉬셔야죠. 그런데 성가대는 자기 재능을 발휘하는 것이라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굳이 쉬지 않아도 됩니다.”

 

“장로님, 성가대를 보실 때마다 흐뭇하시죠?”

“그럼요. 왜 그렇지 않겠어요.”

 

“장로님, 그것이 바로 자기 공로를 기뻐하는 태도입니다.”

“아닌 말로 제가 지금의 성가대를 만들기 위해 정말 애를 많이 썼습니다.”

 

“장로님, 장로님의 그런 태도가 교회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걸 모르십니까?”

“형제님, 저는 정말 순수하게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 성가대를 오늘까지 잘 만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교회를 어렵게 만들다니요? 정말 섭섭합니다.”

 

“그걸 모르시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안식년을 1년 갖고, 그게 왜 문제인지 알아보십시오. 아니면 당회를 열어 성가대장을 바꾸겠습니다.”

“아니, 성가대 안식년이 어디 있습니까? 왜 없는 법을 만드십니까?”

 

“그럼 성가대를 아예 없애겠습니다.”

“뭐라고요?”

 

“저는 우리 교회 성가대가 안식년을 갖고, 쉼을 통해 주님 안에서 깊은 안식을 누리면서 정말 주님만을 찬양하며 영광 돌리기를 원할 뿐입니다.”

“아니, 지금보다 어떻게 더 잘합니까?”

 

“잘하고 못하고가 아닙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찬양과 경배를 드렸으면 할 뿐입니다.”

“아무튼 저는 그대로 계속 해나가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주님께서 우리 성가대의 찬양 때문에 얼마나 영광 받으셨는지 형제님이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 성가대는 미국 카네기 홀에서도 공연했습니다. 그때 얼마나 많은 미국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는지 안 보셨으니 모르시는 게 당연하죠. 성가대는 정말 더 격려하고, 키워야 합니다. 개혁할 대상이 아닙니다. 형제님도 저의 충정을 좀 알아주십시오.”

 

“제가 우리 교회에 오면서 장로님처럼 대화가 잘 되지 않는 경우도 처음입니다. 당회에서 성가대 문제를 정식으로 건의하겠습니다. 대형교회가 문제이듯 대형 성가대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화려한 음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 경배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다른 것은 모두 겉치레일 뿐입니다.”

“도대체 누가 그것을 판단합니까? 하나님이 우리 성가대의 찬양을 받지 않는다고 어떻게 자신 있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저는 우리 성가대가 소박하게 전심으로 찬양할 때까지 예배 때 성가대가 서는 것을 금지하겠습니다.”

“저도 당회에서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만큼은 형제님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현장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회의실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느헤미야 형제는 기가 막혔다. 도무지 대화가 안 되는 분이었다. 느헤미야 형제가 여기 와서 처음 겪는 좌절이었다. 느헤미야 형제는 화가 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회의실 나가는 현 장로의 등 뒤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앞뒤가 꽉 막혔는지 알 수 없었다. 교수까지 지내신 분이 이렇게 말이 안 통할지 정말 알지 못했다. 느헤미야 형제는 심호흡을 크게 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았다. 머리를 감싸 쥐고 생각에 잠겼다.

 

느헤미야 형제는 몇 분 뒤 무릎을 꿇었다.

 

주여, 현 장로님과 대화하면서 그리고 대화 후까지 화를 낸 것을 용서하십시오. 주께서 십여 년간 현 장로님과 함께하셨으며, 지금도 그분을 사랑하시고, 사역을 돌보심을 믿습니다. 현 장로님에 대해 좋지 않은 마음을 품은 저를 용서하시고, 그분을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가운데 주의 뜻을 보이시고, 주여 우리가 하나 되게 하소서.

 

느헤미야 형제는 당회에 정식으로 성가대 문제를 거론했다. 그러나 많은 당회원들이 현 장로와 같은 생각이었다. 소통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양보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어쨌든 사례비만큼은 지급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후원금도 전달되어서는 안 됩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합니다. 앞으로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그분들을 후원하는 일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성가대는 1년 동안 안식년을 갖고 내년부터 예배를 섬기시기 바랍니다.”

 

회의는 어쩔 수 없이 느헤미야 형제의 선포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뒷말이 무성했다.

 

“도대체 왜 사사건건 모든 걸 바꾸지 못해 안달이십니까?”

“아니, 정말 교회 주인 노릇하는 분이 누군지 모르겠네.”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라니까. 성가대처럼 가장 빛나는 부분을 없애지 못해 저 난린지 원.”

“우리 교회 같이 괜찮은 교회도 없는데 왜 그렇게 못 잡아먹어서…… 정말 개혁할 데 가서 개혁을 해야지.”

이런 저런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느헤미야 형제는 다음번 당회 때 이에 대해 다시금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저는 이러저러한 몇 가지 사안을 개혁하고 고쳐나간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것들을 하나씩 고쳐나가다 보면 아 이것도 잘못되었구나 이것도 문제구나 알게 될 것입니다. 작고 구체적인 사안에서부터 잘못된 것들 찾아내고 잘못을 깨닫고 그런 잘못들이 되풀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더 깊이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성가대는 제2의 강단이라는 닉네임이 붙어 있습니다. 누가 붙인 말인지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가 성경적으로 이해하기는 다윗이 장막을 세우고 거기서 하나님을 종일 찬양하고 예배했다는 것뿐입니다. 설교나 말씀 전하는 것 못지 않게 찬양과 기도와 같은 예배와 경배는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신앙의 전부가 되거나 앞자리를 차지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성가대가 1년 동안 주님 안에서 진정으로 안식하기를 원하는 것은 성가대에 서는 것이 무슨 벼슬을 하는 것이나 목사님 못지 않은 일을 하는 중요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성가대는 식당봉사나 청소나 주차장 일과 다를 바 없는 성도들의 섬김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른 것은 질그릇에 속하고 성가대와 같은 것은 금그릇에 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병들게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서열 문화입니다. 또한 다른 분야에서는 인본적인 면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면서 왜 음악 분야는 전문가들이 맡아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까? 음대를 나오지 못하면 성가대 봉사를 하지 못하는 현실은 누가 조장한 것입니까? 우리는 모두 다 주님의 찬양대입니다. 만인제사장이란 우리 모두가 성도로서 주를 위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란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성도란 거룩한 사람이란 뜻으로 제사장이나 다를 바 없는 이름입니다. 더 이상 목회전문가에게 여러분의 신앙을 맡기지 말고, 음악전문가에게 찬양을 맡기고 일반 성도는 그저 남이 부르는 찬양을 듣고 은혜 받으면 그만이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느헤미야 형제가 아무리 소리 높여 외쳐도 성가대 문제는 쉽지 않았다. 성가대 조직이야 말로 목회자 조직 못지않게 깊은 도그마에 빠져 있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 우리가 제일 낫다, 내가 제일 잘 한다. 이것은 세상의 성과주의와 다를 바 없다. 이것이야말로 주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교만이 아닐 수 없다. 신앙생활은 무엇을 잘 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주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드리려고 하는 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주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두고 자기 스스로 만족해하는 것이다. 참된 신앙생활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기뻐하는 데 있다. 그리스도를 기뻐하는 것 그것이 바로 찬양이다.

 

멋지고 화려한 성가대를 보면서 성도들이 은혜를 받을 수도 있다. 그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대형교회의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이며 그것도 아주 대표적인 자랑거리라는 데 있다. 음향시설에만 100억 가까이 재정을 썼다는 교회도 있다. 대형교회의 대형성가대는 작고 낮은 예배를 위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이다.

 

예배가 신앙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우리 나라 교회에서 성가대는 커다란 우상처럼 서 있다. 성가대는 자랑거리이며 선전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이제는 성도들이 듣고 은혜받은 성가대의 찬양이 아니라 성도들이 직접 부르면서 주님을 높이고 성도들이 서로 기쁨을 나누는 찬양으로 바뀌어야 한다.  

 

성가대가 안식에 든 지 며칠 뒤 지휘자 두 분이 교회를 떠났다. 그분들은 사례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교회가 능력 있는 지휘자를 잘못 대하고 있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반주자 한 분, 솔리스트 두 분도 떠났다. 느헤미야 형제는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 성가대 안식년 취지를 설명하려고 했으나 그들 중 누구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느헤미야 형제는 총회에 공문을 보내 이와 같은 상황을 전했다. 총회는 각 교회로 공문을 보내 앞으로 성가대 지휘자나 반주자, 솔리스트와 연주자들에게 사례를 지급하거나 같은 이유로 후원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이런 조치는 여러 교회에서 반발에 부딪혔지만 총회의 방침으로 세워졌다.

 

느헤미야 형제는 성가대가 안식년을 갖는 대신 성도들은 모일 때마다 찬양하는 시간을 더 많이 더 오래 갖도록 권했다. 삶의 시간들이 늘 그리스도를 기뻐하는 마음의 찬양으로 흘러넘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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