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 진짜 교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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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장편소설 연재] 진짜 교회 (33)

by 브린니 2020. 9. 27.

진짜 교회 33

 

 

여성 사랑을 받아들고, 사랑을 낳고, 사랑을 먹이고, 기르고, 사랑을 나누고 베푸는 사랑의 주체

 

 

공동 주방이 새롭게 아름답게 꾸며졌다. 교회 식당에 작은 주방 7개와 차를 마시며 모임을 갖을 수 있는 카페 3곳이 열렸다. 교회 주방을 이용하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나 주방을 공동으로 나눠 쓰면서 식사를 즐기고 커피와 차와 음료와 다과를 즐길 수 있었다.

 

느헤미야 형제와 김이레 목사는 자주 만나서 교회의 시스템을 바꾸는 일을 함께 했다. 우선 식당 봉사부터 없앴다. 주일 식사는 없애고 지역 식당을 이용하도록 했다. 여성도들을 과중한 봉사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왔다.

 

느헤미야 형제는 남·여전도회 회장과 임원들을 초대해 다과와 차를 들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식당 봉사를 하지 않으니까 편하기는 한데 우리가 할 일이 없어진 것 같아 좀 심심하고 그러네요.”

5여전도회 김옥희 회장이 말했다.

 

“여성도님들도 좀 쉬셔야죠. 너무 많은 봉사를 하느라 지쳤을 텐데요.”

느헤미야 형제가 대답했다.

 

“쉬는 건 좋지만 그러나 신앙이 나태해질까봐서요.”

4여전회 회장이 말했다.

 

“우리는 그저 열심히 봉사를 해야 뭔가 좀 뿌듯하고 그렇거든요.”

3여전도회 총무도 대꾸했다.

 

“그동안 우리 교회가 너무 가부장적이고, 권력적이고, 권위적이었습니다. 마치 목사, 장로 등은 다스리는 계급이고, 집사는 일하고, 평신도는 배우고, 헌신해야 되는 것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느헤미야 형제가 대답했다.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은 다스리는 직분이라고 배웠는데요. 성경에도 그렇게 쓰였고요.”

2남전회 회장 이정수 안수집사가 말했다.

 

“네, 맞습니다. 그런데 그 다스린다는 것도 정치나 권력처럼 다스리는 게 아니라 성도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뜻이지요.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길을 따를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합니다. 종교개혁 이후엔 더욱 더 그렇고요. 이젠 평신도 만인제사장 시대입니다. 누가 누굴 다스리는 건 주님의 뜻에 합당할 수가 없습니다.”

느헤미야 형제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그럼 우리는 이제부터 뭘 해야 하나요? 식당 봉사도 안하고 안내도 하지 않는다면서요.”

2여전회 회장이 물었다.

 

“그동안 우리 교회는 여성도님들을 배려하지 못했습니다. 식당 봉사나 안내 봉사를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일 아닐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여성도님들을 교회에서 주체로 여기기보다는 ‘돕는 배필’ 정도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남성들이 주도하고 여성들은 뒤에서 보조하는 식입니다. 뒤에서 돕는 일이 하찮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모든 게 남성위주로 움직인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이 세상과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가정도 남성중심, 사회나 직장도 모두 남성중심입니다. 이제 사회에서도 약자에 대한 배려가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여성도 그렇습니다. 약자 아닌 약자가 된 상황입니다. 여성은 약자가 아닌데도 차별 때문에 약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교회에서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여성들을 배려한다고 식당 봉사와 같은 것에서 벗어나게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여성을 교회의 주체로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성들은 예수님 시대에서부터 공동체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여성은 사랑을 받아들이고, 사랑을 낳고, 사랑을 먹이고 기르고, 사랑을 베풀고, 나누는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여성은 사랑의 주체입니다. 여성이 없다면 이 세계는 싸움판, 난장판이 될 것입니다. 여성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주체이면서 이 세계의 주체입니다.

 

세상은 여자와 남자가 반반씩 살고 있습니다. 굳이 평등을 주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남자가 먼저 창조되었고, 여자가 나중에 남자의 갈빗대에서 창조되었다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창조의 방식이지 우열을 가리는 잣대가 아닙니다.

 

문제는 남성은 부족한 존재이며 반드시 돕는 배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남성의 입장에서 볼 때 돕는 배필일 뿐 여성의 존재 자체는 남자나 다를 바 없습니다. 만약 여자가 주체로서 의미를 갖지 못한다면 선악과를 먹었을 때 여자에겐 죄를 묻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죄에 대한 책임이 똑같이 있고, 벌을 받아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그야말로 동등한 주체이며 서로 돕는 자들입니다.”

느헤미야 형제가 강조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가 뭘 하면 되냐니까요?”

2여전도회장이 물었다.

 

“우선 잘 쉬는 것부터 하시죠.”

느헤미야 형제가 대답했다.

 

“우리는 쉬면 병나는데……”

3여전도회 총무가 대꾸했다.

 

“네. 병나면 더 쉬셔야죠.”

느헤미야 형제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덧붙였다.

 

“익숙한 것에서 떠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몸도 마음도 예전부터 늘 해왔던 것을 원하지요. 그래서 변화라는 것이 잘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일단 정지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죄를 늘 짓는 사람이 변하기 위해서는 죄를 짓지 않고 오랜 시간 멈추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죄짓는 짓을 한 게 아니잖아요?”

3여전도회 회계가 발끈했다.

 

“네, 권사님. 그게 아니라 예를 들면 그런 것이지요. 우리가 만약 좋은 일을 계속했다면 이제는 좀 쉬면서 그 일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우리는 많은 희생을 하고, 봉사를 하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좀 더 차분히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너무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부작용도 나타나거든요. 예를 들어 마르다처럼 너무 분주하다보면 떼를 쓰는 경우도 있고요.

 

더 심하게는 우리가 희생의 제물을 많이 바쳤는데 주님께서 그것을 좋게 보시지 않고 다 필요없다고 말씀하신다면 큰일 아니겠어요. 저는 여러분의 희생과 봉사가 좀 더 좋은 결과를 낳았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이를 인애나 자비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제사와 예배에 치중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데 너무 과중한 희생을 하는 것보다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을 더 좋아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안다, 그러니 이제 그 사랑으로 네 이웃들을 사랑하고 섬겨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도 그렇고, 예수님이 오셨을 때도 그렇게 부탁하셨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형제가 이웃사랑을 새삼 강조하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그래서 이제 뭘 하냐고요.”

4여전도회장이 물었다.

 

“하하하하. 권사님. 제발. 그냥 우선 쉬세요. 하하하하.”

느헤미야 형제가 쉬는 걸 다시 부탁했다.

 

“우선, 쉬시고, 그다음에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자, 주방이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가족이나 동아리나 소그룹으로 작은 파티를 하고 싶은 분들에게 주방이 개방되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나 믿는 분이나 아니거나 상관없이 누구나 음식을 해먹고 차와 다과를 들면서 친교 모임을 할 수 있습니다. 일단은 여전도회에서 우리 교회 주방이 많은 분들에게 기쁨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필요할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주위에 어려운 분들을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하는 일도 가능하겠죠. 각 여전도회에서 돌아가면서 사람들을 초대해서 먹이고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하던 거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바뀌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한 거죠?”

2여전도회장이 물었다.

 

“네. 이제 우리가 하나님만 쳐다보면 눈에서 이웃을 돌아보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고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 보다가 눈이 멀 수도 있습니다. 종교란 가끔 맹목적인 데가 있습니다. 그저 우리가 습관적인 종교행위에 매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하늘만 보지 말고 우리가 사는 땅을 보자는 것입니다. 거기엔 주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 사람들을 돌보기 원하십니다. 사랑하고, 보살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형제가 대답했다.

 

“아하, 그러니까 이제 우리가 밥하는 게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들을 위해서 하는 거지요.”

3여전도회 부회장이 말했다.

 

“네, 맞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제사나 예배와 같은 영적인 일, 그러니까 종교행위에 지나치게 몰두하지 말고, 이웃을 사람하고 섬기는 일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자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형제가 대답했다.

 

“그것 말고는 다른 건 할 게 없나요?”

5여전도회 회장이 물었다.

 

“네, 좋은 질문입니다. 교회에서 여성도들이 봉사 말고도 다른 영역에서 역할을 담당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소그룹으로 말씀을 나눈다던가 하는……”

느헤미야 형제가 말했다.

 

“그건 다들 구역장을 맡고 있으니까……”

3여전도회 회장이 말했다.

 

“네, 구역 모임도 이제 좀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구역예배도 다른 예배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전하고, 헌금하고…… 그런데 이제 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공동 주방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예배 대신 친교를 나누는 것으로요.”

느헤미야 형제가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리고, 수요예배나 금요예배도 시간을 자유롭게 바꾸어서 한꺼번에 대규모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그 날 하루 중 여러 시간에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서 모임을 갖는 것입니다. 그때 여성도님들이 예배를 인도하거나 말씀을 나누는 것입니다.”

 

“예배는 부목사님들이 인도하시잖아요.”

3여전도회 회계가 말했다.

 

“네. 이젠 평신도들이 예배를 인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성도들도 적극적으로 예배에 참여해야 합니다. 교회에는 여성들이 많은데 그분들에게 필요한 말씀을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일방적인 말씀만 선포됩니다. 여성도들이 자신들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놓고, 거기에 적절한 말씀이 부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여성들이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건 여전도회에서 해야 할 일인데요.”

4여전도회 회장이 말했다.

 

“지금 여전도회는 어떻습니까? 모이면 어떤 사업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봄, 가을엔 바자회, 부활절엔 계란 만들기, 성탄절엔 행사 준비 등등. 여전도회에서 정말 여성들의 교제가 있나요?”

느헤미야 형제가 물었다.

 

이번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말씀이 교제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가운데 놓고 먹고 마시면서 교제하는 것입니다. 여전도회는, 아니 모든 여성들의 모임, 아니 모든 성도들의 모임은 말씀을 나누는 교제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예배엔 교제가 없습니다. 교제가 없으면 말씀도 제대로 나눌 수 없습니다. 일방적인 강요나 세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본질에 닿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교리나 강령이 되고, 율법적인 강제가 되고 맙니다.”

느헤미야 형제가 강하게 말했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조용히 듣기만 하던 2남전도회 회장이 말했다.

 

“그동안 우리 교회에서 선포되던 말씀들은 모두 남성들의 주장이 담겨 있는 것들입니다. 대체로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식이었죠. 여성은 잠자코 성경말씀을 따라 살면 된다는 식이었는데 그 말씀이 실상은 우리 삶에 맞는 게 아니라 이미 화석화된 오래전 옛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전통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오늘날엔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고 우리 삶을 아름답게 할 어떤 기능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 말씀이 전통적인 것이라고 해서 오늘날에도 신봉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느헤미야 형제는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우리는 실제 삶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영양가 높은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정말 우리 삶에 필요하고, 그 말씀이 우리 삶을 변화시키고, 생동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어떤 말씀이 우리 삶에 필요한지 그것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저 오래된 옛날 말씀을 반복하고, 그걸 주워 먹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스러기 말씀입니다.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사는 것은 말씀의 노예입니다. 우리는 주체가 되어서 주님께서 공급하시는 영원한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어떻게 말씀을 나누는 게 영원한 말씀을 먹는 거죠?”

1여전도회장 이영숙 권사가 물었다. 1여전도회장은 팔순이었다. 얼굴에 결연한 빛이 감돌았다.

 

“형제님, 저는 팔십 평생을 교회에서 살다시피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어떤 것이 진짜 말씀을 먹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가끔 들었습니다. 똑같은 말씀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정말 예수 믿는 게 뭔가, 하는 생각도 했고요. 자, 이제 죽기 전에 뭘 어찌해야 하는 거죠? 뭘 어떻게 해야 정말 예수 믿는 맛을 느끼며 살 수 있을까요?”

1여전도회장은 달관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 목소리엔 뭔가 맺힌 게 있는 듯했다. 약간은 갈망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다들 그 말에 숙연해졌다.

 

“저도 잘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말씀이 우리 신경과 골수를 쪼개려면 지금처럼 다 아는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외워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찾아야죠. 그저 주어지는 말씀이 아니라 내가 찾아서 먹어야 합니다. 현실에서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주시하고, 그 원인을 찾는 데서 시작해보십시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데 장애를 일으키는 것부터 하나씩 찾아서 거기 합당한 말씀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그 말씀과 삶을 대조하면서 말씀이 주는 진짜 의미를 발견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떤 모양인지 삶에 적용하고 실천해보는 것입니다. 진짜 말씀이 우리 삶에서 살아서 역사하는 게 어떤 것인지 확인해봐야 합니다. 찾고 찾아서 발견하고 실천한 것만이 내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만 진짜 나의 말씀이 됩니다.

 

그저 목사가 예배시간에 떠들어대는 것이 말씀이 아닙니다. 설령 그것이 그 목사에겐 말씀일지 몰라도 내겐 아닐 수 있습니다.

 

내 것을 찾아야 합니다. 내가 말씀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질문하지 않는 조용한 성도였습니다. 잠잠하라고 배웠으니까 그렇게 입 다물고 순종하는 게 좋다고 여기며 살았으니까요. 그러나 지금부터는 질문하고 찾고, 다시 배워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질문하고 찾으면 스스로에게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스승이며 제자입니다. 우리 스스로 하면 안되고 그리스도가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지요?

 

그런데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계신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찾고 찾으면 우리 속에 계시는 그리스도가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찾고 내가 해답을 얻는 것입니다. 내가 찾고 찾으면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시대에 우리가 성령을 체험하는 길입니다. 스스로 스스로에게서 말씀을 찾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느헤미야 형제가 말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1여전도회장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조용히 웃었다.

 

“권사님, 권사님이 말씀 그 자체입니다. 권사님 속에 있는 팔십 평생 함께 살아온 바로 그 말씀을 꺼내서 다른 성도들과 나누십시오. 그 말씀을 살아 있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느헤미야 형제가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제 속에는 죽은 것들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야 비로소 살아 있는 말씀을 찾아야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영숙 권사가 말했다.

 

“좋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그저 식당에서 밥이나 하고, 행사 준비하고 뒤치다꺼리나 하는 분들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교회의 주체이며 말씀의 주체이며 사랑의 주체입니다. 여러분이 살면서 체험하는 모든 것이 양식이 됩니다. 그것을 다른 성도들과 적극적으로 나누십시오.”

느헤미야 형제가 오늘의 모임을 결론짓듯 말했다.

 

“그럼 이제 우리는 뭘 해야 합니까?”

3남전도회장이 물었다.

 

“여성들을 돕는 일을 하면 어떨까요? 가정에서부터 집안일을 돕는 일부터 시작합시다. 설거지, 청소, 음식, 빨래 등 여성들에게만 맡기지 말고 해보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여성들이 했던 봉사를 대신 떠맡고요.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남성들이 진짜 해야 할 것들을 스스로 찾는 것입니다. 일단 저는 남성들이 현재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중독자들을 치료와 갱생에 힘을 쏟는 것입니다. 알코올중독자, 성중독자, 마약중독자 등등.

 

학교 폭력에도 관심을 가져서 아버지협회 등을 조직해서 학생들을 보호하는 일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부모로서 폭력예방활동을 펼치는 것입니다. 주기적으로 학교를 방문해서 실태를 조사하고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것입니다. 왕따를 당하거나 폭력을 입는 학생들은 자기편이 한 사람도 없다는 생각에 숨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숨죽이며 살지 않을 것입니다. 든든한 남자 어른들이 자기를 돕고 있다고 느끼면 반드시 밝은 곳으로 나올 것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분들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합니다.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자를 도우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누구인지 생각하면서 적극적으로 이웃을 돕는 것입니다.

 

직장일, 교회일, 큰일들을 많이 담당해 오신 여러분들은 세상의 다른 어려운 일도 잘 해내실 것입니다. 이제부터 적극적으로 이웃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느헤미야 형제가 말했다.

 

“모이는 교회가 아니라 흩어지는 교회가 이런 것입니까?”

5남전도회 총무가 물었다.

 

“네, 이것도 포함됩니다. 가나안 성도라는 말씀 잘 아실 것입니다. 교회를 ‘안나가’는 성도를 뜻하지요. 그런데 원래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세상으로 나가서 적극적으로 이웃을 돕고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데 교회 안에서 여기가 좋사오니, 하면서 밖으로 ‘안나가’는 성도를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가나안 성도는 교회 안에서 자기네들끼리만 은혜를 먹고 배부른 자들이었습니다. 이제는 전혀 다른 말이 되었지만요. 아무튼 이제는 흩어져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성전에 갇혀 계실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서 세상으로 나가 세상 속에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느헤미야 형제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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