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요사 부손 <고려의 배가 그냥 지나쳐 가는……> 외 1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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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요사 부손 <고려의 배가 그냥 지나쳐 가는……> 외 10편

by 브린니 2020. 9. 30.

요사 부손 하이쿠 11편 감상

 

*요사 부손与謝蕪村 (일본, 1716~1784)

 

*하이쿠 [haiku, 俳句(배구)]

하이쿠는 일본의 정형시로 대개 5·7·5음절로 이루어져 있다. 매우 짧은 시구詩句 속에 자연의 미美를 담은 시들이 많다. 짧은 시구처럼 찰나의 아름다움을 주로 표현한다.

 

 

고려의 배가

그냥 지나쳐 가는

봄 안개로세

 

짙은 안개 속에서 이국의 배(고려:우리나라)가 다가오더니 지나쳐 간다.

봄 안개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돋운다.

인간의 비원과 애수가 짙게 배어든 작품이다.

 

 

모란은 지고

부딪쳐 겹쳐지네

꽃잎 두세 장

 

우아한 일본 정원에 핀 모란이 떨어지며 서로 부딪치면서 겹쳐진다.

아름다운 찰나의 미美가 빛을 낸다.

꽃 잎 두세 장이 마당에 곱게 누워 있다.

 

 

남생이 새끼여

청회색 숫돌도 모르는

맑은 산의 물

 

* 남생이 : 민물거북Reeves' turtle

 

남생이

 

거북은 아무런 스스럼없이, 세상 걱정 없이 맑은 물속을 헤엄쳐서 간다.

세상의 물욕과 기타 다른 근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유유자적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시.

 

 

시원함이여

종에서 떠나가는

종소리여라

 

종을 칠 때 사용하는 당목撞木이 종을 때리면 종소리가 바로 울리지 않고 잠시 틈을 두고 울려퍼진다.

당목이 종을 치는 순간 약간 늦게 종소리가 울리는 모습을 종소리가 종으로부터 떠난다고 표현하고 있다.

 

 

국화의 이슬

물 대신 받아서

긴 벼루 목숨

 

옛날에는 붓과 먹과 벼루로 글씨를 썼다. 그리고 물을 붓는다.

먹이 갈리면서 물을 검게 물들이고 붓이 검은 물을 찍어 글씨를 쓴다.

국화에 묻은 이슬을 털어 물 대신 벼루에 담고 먹을 걸아 시를 쓴다.

국화 이슬을 머금은 벼루의 목숨이 더 길어질까?

 

 

둥근 쟁반의

메밀잣밤나무 열매

옛 소리런가

 

매밀잣밤

 

겐주암에 하이쿠 시인 바쇼가 방문했을 때 나고야의 가토 교다이가 부손 앞에 둥근 쟁반에 담은 메밀잣나무 열매를 내놓았다.

부손은 그 옛날 바쇼가 노래했던 메밀잣밤나무 열매를 생각하며 이 시를 썼다. 둥근 쟁반 위를 구르는 메밀잣밤나무 열매의 청량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물새들이여

배에서 나물 씻는

여인이 있네

 

경치가 좋은 물가에 앉아 물을 바라보고 있는 시인의 눈에 물 위를 유유히 헤엄치는 오리가 보인다.

가까이에는 배 한 척이 있고, 배 안에서 나물을 씻는 여인의 모습이 눈에 띤다.

평온한 물가와 물가에 사는 여인의 일상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도끼질하다

향기에 놀랐다네

겨울나무 숲

 

나무를 할 때는 바싹 마르고 죽은 듯한 나무를 벤다.

그런데 막상 도끼를 박아 넣어보니 신선한 향기가 나고 생명이 박동하는 느낌이 난다.

물기 없이 죽은 것은 같은 나무에서 강한 나무 냄새가 풍긴다.

겨울 한복판에서 생명의 기운을 느끼고 놀라고 흥분하는 시인의 마음을 표현한 시다.

 

 

모기의 소리

인동꽃 이파리가

질 때마다

 

* 인동덩굴 : 쌍떡잎식물 꼭두서니목 인동과의 반상록 덩굴식물.

 

인동

 

한여름의 저물 무렵 인동꽃 이파리가 떨어진다.

이파리 그늘에 숨어 있던 모기떼가 신음소리를 내며 날아오른다.

인동의 작은 꽃잎과 모기의 거의 보이지 않는 몸매?가 대비를 이루고,

잎이 떨어지는 거의 고요에 가까운 소리와 모기의 거의 들리지 않는 울음소리?가 대비를 이루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시다.

 

 

봄의 물줄기

산이 없는 곳에서

흘러가노라

 

시인은 산언덕에 앉아서 들판을 내려다본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데 경사가 없는 곳인데도 물이 흘러간다.

물은 바다를 향해 천천히 완만하게 흘러간다.

봄의 평야에 평화로우면서 동시에 생동감 있는 봄기운이 감돌고 있다.

 

 

제정신이 아닌

풀잎을 집은 마음

나비일레라

 

나비가 날아와서 사뿐히 풀잎 위에 내려 앉는다.

나비의 날갯짓, 그리고 고요히 날개를 접고 앉은 모습을 보며 마치 내 혼이 빠져나간 듯이 느껴진다.

나비가 날개를 접은 모습이 내가 손으로 나비의 날개를 집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제정신이 아니라는 표현은 꿈인지 생시인시 알 수 없는 혼이 나간 듯한 황홀경의 느낌을 느낀다.

나른하고 몽환적인 정조를 잘 그려낸 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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