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윤동주 <아우의 인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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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윤동주 <아우의 인상화>

by 브린니 2020. 9. 28.

아우의 인상화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윤동주

 

 

【산책】

 

아이의 얼굴은 대개 홍조를 띠며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을 때가 많다.

아이들은 숨을 헐떡이며 뛰는 걸 좋아한다.

 

아이들은 게으르지 않고 늘 움직이며 돌아다닌다.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는다. 아이들은 논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아이들의 대통령 뽀로로가 말한다.

 

아이들은 자란다. 어른이 된다.

워즈워드는 <무지개>라는 시에서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썼다.

 

윤동주의 시에서 어린 동생은 자라서 사람이 된다.

어른이 되지 않고,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사람이 되라! 이런 소리를 많이 들었다.

 

사람이 되지 못한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가!

돌아보면 나 역시 사람이 되지 못하고 살아온 날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저 어른일 뿐 사람이 아닌……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라는 소설도 있다.

 

윤동주가 살았던 일제 식민지 시대

사람이 되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사람처럼 살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래서 아우의 대답은 설은 대답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물색없는 대답이다.

 

사람이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당당하게 사람이 되겠노라고 말하다니.

그래서 형은 슬프다.

 

아우를 바라보는 눈이 슬픈 것이다.

형이 슬프니까 동생의 얼굴을 슬픈 얼굴로 그린다.

 

아우는 아무것도 모르기에 슬프지 않다.

커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아우는 그의 바람대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형 윤동주가 죽고 얼마 뒤 조국이 해방되었으니까.

 

지금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

혹은 지금 아이들의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

 

그러나 “22세기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어두운 전망이 들린다.

지구가 죽어 없어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전망.

 

일제 식민지 때나 지금이나 어른이 볼 때 아이들은 슬프다.

그들의 세상이 오지 않고, 멸망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러나 어른들이 다 죽고 난 뒤 해방처럼 새 세상이 올지 누가 알겠는가.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추석 달밤에 아이들을 보라.

아이들의 붉은 이마와 빠알간 뺨을 보라.

 

얼마나 가슴 뭉클하게 슬픈 얼굴들인가.

영혼이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투명하게 밝은 얼굴들.

 

너무 순수하고 아름다워서 영혼이 슬픈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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