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 사랑에 관한 특별한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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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 사랑에 관한 특별한 사색

by 브린니 2020. 9. 27.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은 주인공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 네미 샤틀레를 추모하면서 사랑에 관한 사색을 하는 내용을 쓴 소설이다.  네미 샤틀레는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선생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는 사랑과 음악, 책읽기와 글쓰기와 같은 행위가 거의 동일선상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에는 일정한 줄거리가 없다. 있다면, 한 남자가 네미 샤틀레라는 피아니스트를 사랑했으나 지금은 영원히 헤어진 상태(죽음)인데 자신의 사랑에 관해 추억하며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은 사색을 빠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스런? 사색의 결과가 바로 이 소설이다.

 

<은밀한 생>은 소설이라고 하기엔 줄거리 전개가 거의 없고, 줄거리에 해당하는 내용을 몇 구절의 짤막한 문장들로 암시할 뿐이다.

 

우리는 피아노 홀 뒤쪽 방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나는 네미의 머릿속 내부로 침해들어가, 믿음 그 자체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싶었다.

 

나는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나는 그녀의 비밀과 인접한 곳에서 살았다.

 

"우린 잘못을 저지르고 있어요" 하고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대부분은 사랑에 관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996년 파스칼  키냐르는 집필 중 심한 출혈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가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삶으로 귀환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직후 지금까지와는 다른 어떤 것, 총체적인 모든 것(사상, 소설, 삶, 지식)이 포함된 단 하나의 육체와 같은 책을 쓰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은밀한 생>은 전통적 장르 개념의 파괴 혹은 독특한 장르의 개척으로 알려졌다. 소설도 자서전도 철학 에세이도 심리 분석도 명상록도 이야기도 아니면서 동시에 그 모두이다. 심지어 한 편의 긴 시로 읽고 키냐를 위대한 산문 시인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은밀한 생>은 스탕달의 <연애론> 이후 사랑에 대한 가장 독창적인 담론이며, 사랑에 대한 담론을 통해 작가는 산란지로 모천 회귀하는 연어 인간처럼 근원을 향한 탐색을 추구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옮긴이 해설에서).    

 

모든 글쓰기는 과거를 서술하는 행위일 수밖에 없다. 미래에 대한 상상을 글로 쓰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는 과거의 경험이나 끝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 역시 이미 종료된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시간에 관계되는 행위이고, 그것도 거의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재생이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독서 역시 이미 끝난 이야기를 쓴 책을 읽는 것이므로 과거를 읽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은밀한 생>의 첫구절을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강물은 끊임없이 바다로 휩쓸려 들어간다. 나의 삶은 침묵으로 흘러든다. 연기가 하늘로 빨려들 듯 모든 나이는 과거로 흡수된다.

 

사랑 역시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끝난 행위이다.

 

우리의 삶은 그것을 태어나게 한 행위에 매혹된다. 삶의 근원에 홀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존재하기 이전을 상상하게 되고, 태어나고 나서의 첫 느낌을 되살리고 싶어한다. 어머니의 자궁, 어머니의 젖가슴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Amour는 젖가슴을 찾는다는 고어에서 나온 말이다.

 

파스칼 키냐르는 사랑에 관한 다양한 생각들을 여러 가지 테마를 통해 펼쳐 보이고 있다. 특히 프랑스어와 라틴어, 그리스어의 어원을 찾아 사랑에 관련된 언어들을 설명한다. 그의 독특한 생각들은 아름다운 문장 속에서 빛을 내며 사랑을 찾아 헤매는 젊은이들, 혹은 아직도 사랑에 목말라하는 모든 연인들을 사랑의 언어로 물들이고 있다.

 

더욱이 나이든 남자의 사랑에 관한 사색을 전개하고 있기에 젊은 독자들뿐만 아니라 중년의 독자들의 마음도 사로잡고 있다.

 

사랑에 관한 파스칼 키냐르의 특별한 사색들을 펼쳐놓은 책 <은밀한 생>을 통해 사랑에 관한 여러 가지 맛을 느껴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시선 속에서이다.

 

우리는 자주 우리 자신이 원인을 기다리고 있는 결과들이라는 인상을 준다.

 

아직은 전혀 알지 못하는 한 여인의 팔에 우연히 팔꿈치가 스칠 대, 영혼은 왜 떨리는 것일까?

 

사랑의 발생은 어떤 목소리에 대한 복종일 수 있다.

 

배우는 것은 강렬한 쾌락이다. 배우는 것은 태어나는 것에 속한다.

 

배울 때 기쁨을 느끼지 않는 자를 가르쳐는 안 된다.

무언가 다른 것에 열중하는 것, 사랑하는 것, 배우는 것, 그것은 같은 것이다.  

 

사랑은 도둑질에 속하지 사회적 교환에 속하지 않는다.

 

연인들은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서, 시간 자체에 의해 소멸되고 마지막 남은 미개한 원주민처럼 살아가야만 한다.

 

"사랑은 도둑질에 속하지 사회적 교환에 속하지 않는다."

"연인들은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서, 시간 자체에 의해 소멸되고 마지막 남은 미개한 원주민처럼 살아가야만 한다."

이 말은 이 책의 제목인 <은밀한 생>에 가장 어울리는 말이기도 하다.

 

<은밀한 생>이란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살아가는 삶의 한 형태로, 정상적인 흐름에서 단락된 상태로 살아가는 방식을 의미한다. 집단의 동의 없이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살아가는 방식, 결혼이 아닌, 번식의 목적성이 배제된 철저하게 반사회전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은밀하게 살아가는 방식(옮긴이 해설)이기 때문이다.

 

파스칼 키냐르는 언어는 자기중심적이며 침묵이 오히려 이타적이라고 말한다.

 

모든 대화는 위험하다.

우리 자신에 관한 끝없는 말들이 우리를 고독으로 밀어넣었다. 그것은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의 자아에 값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관심, 진정한 비참함, 가련한 몸짓이었다.

 

언어는 자가당착에 빠지기를 좋아한다. 자기모순에 빠지기를 즐길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말이 하고 싶어 안달이 나게 만든다. 언어는 지배력을 추구한다. 언어의 기능은 대화인데, 대화는 오늘날에는 무슨 말을 하든 간에 전쟁이다. 그건 말로 하는 전재이어서 몸으로 하는 결투를 대신한다.

 

우리는 공유하지 않은, 함께 체험하지 않은 시간을 발견했고, 그런 시간을 떠올리는 것이 우리 마음에 상처를 입히곤 한다.

 

이렇게 말(언어)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사랑에는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고,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침묵을 그렇지 않다.

 

침묵만이 유일하게 타인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침묵 속에서 낯선 사람 앞의 낯선 사람이 됨으로써 그들은 친밀해진다.

 

침묵의 손이 촉각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모든 판단이 거부되었기 때문에 촉각은 육체적 기쁨에 일종의 빛, 일종의 명료함을 추가했고, 그리고 명료함에는 음란함이 추가되었다.

 

말이 없는, 언어가 없는 침묵의 대화는 몸으로 하는 사랑을 가능하게 한다. 에로스는 육체의 사랑이다. 몸의 사랑이 아닌 다른 사랑은 에로스에서는 없다. 남여의 사랑, 에로스에는 육체의 사랑이 필수적이다. 어쩌면 육체의 사랑을 에로스라고 부르고 그것이 연인들의 사랑인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말보다는 침묵이 더 사랑(에로스)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파스칼 키냐르가 말하는 사랑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사랑이란 이미 피할 수 없는 뻔뻔스러움이다. 사랑이란 언어에 선행하는 것의 벌거벗음, 언어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며 사회가 망각하고자 하는 벌거벗음이다.

 

사랑은 위선적이고 수다스럽고 선명하지 못한 인간 사회에서는 표현할 길이 없는 동물적인 순수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관한 말은 입술에서 발화되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것은 육체 자체로부터 나온다.

 

훌륭한 음악가는 욱체 안에 있는 가장 오래된 집(옛집, 공명기, 배, 자궁의 동굴)이 소리를 내게 만든다.

 

키냐르는 이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사랑의 측면들을 세밀하게 전개하고 있다. 단순히 줄거리를 읽어나가는 소설 읽기가 아니라 철학적 사색을 통한 무지개처럼 펼쳐지는 사랑의 담론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현대 프랑스 소설은 이렇게 장르를 허물면서 철학과 문학 그리고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총체적 글쓰기가 하나의 특징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그 속에서 파스칼 키냐르는 특출난 서너 명의 작가 중 하나로 칭송받고 있다.

 

그의 책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가다 보면 가을밤의 정취를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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