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기욤 아폴리네르 <콜로틸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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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기욤 아폴리네르 <콜로틸드에게>

by 브린니 2020. 9. 28.

콜로틸드에게

 

 

사랑과 경멸 사이

우수가 잠든 정원에

아네모네와 노방초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곳에 우리들의 그림자도 스며든다

밤이 흩어버린 그림자이지만

그림자를 거두는 태양도

언젠가는 그림자와 함께 사라지리라

 

맑은 물의 이 신기한 힘

그것은 머리털을 적시며 흐르나니

가라 네가 찾는 이 아름다운 그림자를

너는 찾아가야만 한다

 

―기욤 아폴리네르 Guillaume Apollinaire (프랑스, 1880-1918)

 

 

【산책】

 

사랑과 경멸 사이

우수가 잠든 정원에

 

정원에 감정이 스며들고 그 감정을 지닌 채 잠들어 있는 정원.

자연 사물에 인간의 감정이 개입할 때

때론 공허하고, 때론 더 가슴에 맺힌다.

 

감정과 감정 사이에 든 감정도 있다.

사랑과 경멸 사이 우수.

 

우수는 우울이 아니다.

우수는 우울의 문에 도달하기 전의 감정이다.

 

우수憂愁는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어린 것을 말한다.

우수는 속을 애태우는 것이며 시름겨워하며 슬픔으로 얼굴빛을 바뀌는 것이다.

결실을 맺지 못한 사랑에 조바심을 내며 애타는 마음으로 시름에 잠기는 것이다.

 

그림자는 자연 사물에도 드리우지만

마음에도 그늘을 만들고 있다.

 

우리가 사랑으로 하나 되지 못하고 어긋날 때

태양이 지는 저녁,

대각선으로 그림자가 길게 지는 것이다.

 

사랑하던 사람을 원망하거나 아예 경멸하며 돌아서야 할 때

그러나 멈춰 서서 우수에 잠겨 고민에 빠진다.

 

정원의 꽃들은 만발하지만

그림자는 꽃들 사이에도 깃든다.

 

사물의 다른 한 편 그림자.

실존하는 모든 것들은 그림자를 지닌다.

 

그림자가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아름다운 그림자란 어떤 모양일까.

 

그림자를 찾아 사물의 뒤편으로 떠나는 여행,

이 여행은 외롭고 고독한 혼자만의 여행일까.

 

아니면 새로운 희망을 찾아 떠나는 기대와 기다림일까.

 

아네모네와 노방초가 돋아나기 시작하는 정원에서

맑은 물이 흐르고 물에 비취는 그림자를 따라

태양의 반대편으로 감정의 여행을 떠나야 한다.

 

어둠이 오면 그림자는 사라지고 사물들은 잠든다.

어쩌면 사랑도 그림자처럼 소멸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밤이 깊으면 우수에 젖은 정원은 고요하게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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