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마쓰오 바쇼 <추석 달이여 연못을……> 외 9편
본문 바로가기
독서 리뷰

[명시 산책] 마쓰오 바쇼 <추석 달이여 연못을……> 외 9편

by 브린니 2020. 9. 27.

마쓰오 바쇼 하이쿠 10편 감상

 

 

*마쓰오 바쇼 松尾芭蕉(まつおばしょう, 일본, 1644~1694)

 

*하이쿠 [haiku, 俳句(배구)]

하이쿠는 일본의 정형시로 대개 5·7·5음절로 이루어져 있다. 매우 짧은 시구詩句 속에 자연의 미美를 담은 시들이 많다.

 

 

 

 

고요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소리

 

이 시를 지은 곳은 릿샤쿠지(立石寺)라는 절이다.

너무나 고요해서 매미가 우는 소리가 바위에 스며드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혹은 이미 바위에 스며든 매미의 소리가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몇 년 전 어느 통신사 광고에서 대숲에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들을 때면 휴대전화를 꺼놓아도 좋다는 카피가 떠오른다.

자연의 소리만이 은은하게 흐르는 고요한 장소에 있다면 인간의 소리를 멈춰도 좋을 것이다.

 

 

풀 베개 신세

개도 겨울비에 젖나

밤의 목소리

 

풀을 베개 삼아 누워 있는 나그네의 신세타령이다. 겨울비가 내리고 비에 몸이 젖은 개가 짖는다. 이를 두고 밤의 목소리라고 표현하고 있다. 집을 떠나 밖에서 노숙을 하며 여행하는 나그네는 밤의 목소리를 들으며 선잠에 드는 것이다.

 

선뜩선뜩한

벽을 밟아가면서

낮잠을 자네

 

선뜩선뜩하다는 것은 가을이 와서 약간 선선한 날씨를 뜻한다. 발을 서늘한 벽에 대고 선잠에 드는 모습을 그린 시이다. 깊이 잠에 들기보다는 벽을 발로 짚어가면서 멍하니 이런 저런 생각에 젖는다고나 할까.

 

 

겨울날이여

말 위에 얼어붙은

그림자

 

말을 타고 가는 사람 위로 겨울 햇빛이 비추지만 워낙 날이 추워 그림자조차 얼어붙은 것 같은 매서운 겨울 날씨에 대한 표현이다. 말 위에 말을 탄 사람의 그림자가 얼어붙는다는 묘사가 예리하다.

 

 

우울한 나를

더 쓸쓸하게 하라

뻐꾸기여

 

우울한 사람의 귀에 뻐꾸기 소리가 들리는데 그 소리가 사람을 더 쓸쓸하게 만든다. 왜 우울한지 알 수 없지만 우울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사람에게 뻐꾸기 소리가 들린다. 뻐꾸기 소리는 사람의 감정과 상관없이 우는 것이지만 그 울음소리를 들은 사람의 감정은 우울에 더해 쓸쓸해지기만 한다.

 

 

거룩하구나

녹음과 신록 위에

빛나는 햇빛

 

여름 한낮 나무들 사이로 뜨겁고 강렬한 태양이 비춘다. 뙤약볕. 눈을 뜰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 햇빛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경건해진다. 이런 햇빛 앞에서는 감히 고개를 들 수 없다. 그래서 시인은 이런 햇빛을 마치 신의 현시顯示를 보는 듯, 거룩하다고 표현한다.

 

논에

모 심고 떠나는

버드나무로다

 

논에 길게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 버드나무가 마치 모를 심는 모습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버드나무 아래에 앉아 논에 모를 심고 있는 농부의 모습을 보면서 쓴 시가 아닐까. 모심기가 끝나가는 논과 모를 심는 농부와 길게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감성이 한 데 어우러진 시다.

 

 

추석 달이여

연못을 맴돌면서

밤을 지새운다

 

연못을 비추는 보름달을 보며 추석 밤을 지새우는 사람이 있다. 연못에도 달이 들어 있다. 하늘의 달과 연못의 달, 두 개의 달을 보며 서성이는 사람. 고독한 것인지 마음에 걱정이 있는 것인지 혹은 달이 너무나 휘영청 밝아서 달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지 달을 보며 밤을 지새우는 것이다.

 

 

오래된 연못에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텀벙’

古池や蛙飛こむ水の音。

 

이 시는 하이쿠를 말할 때 샘플처럼 등장하는 유명한 시다. 오래된 정원의 연못 한가운데 개구리가 뛰어들면서 내는 소리를 ‘텀벙’이라고 있는 그대로 표현한 시다. 별 내용 아닌 것 같은데 왠지 유머러스하면서도 고요한 연못에 개구리가 텀벙 빠지는 모습에서 푸르고 싱그러운 자연의 맛을 느낀다. 마치 개구리 때문에 사방으로 연못 물이 얼굴에 튄 것처럼 느껴지는 투명하고 밝은 시다.

 

 

추석, 청명한 날씨, 훤히 뜬 보름달을 보며 하이쿠 몇 편 읽으면 마음이 너그러워지며 흐뭇하고 넉넉한 가을을 즐길 수 있으리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