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병민 리사이틀 <꽃 때 A Time to Blossom> 셋리 해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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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일상생활

길병민 리사이틀 <꽃 때 A Time to Blossom> 셋리 해설 2부

by 브린니 2020. 9. 29.

1부에 이어 인터미션 후의 2부 순서 해설을 이어갑니다. 먼저 프로그램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PROGRAM

 

F.P.Tosti

A sera (저녁)

Malia (매혹)

Tristezza (슬픔)

Non tamo piu (너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으리)

 

L'ultimo bacio (마지막 입맞춤)

Se tu non torni (당신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Love Me (나를 사랑해주오)

Because of You (당신 때문에)

 

Intermission

 

P.I.Tchaikovsky

Sred Shumnovo Bala (무도회의 법석 속에서)

Net, Tol'ka Tot, Kto Znal (오직 그리움을 아는 자 만이)

Serenada Don Juana (돈주앙의 세레나데)

 

S.Rachmaninoff

Ne Poj, Krasavitsa, Pri Mne (노래하지 마오, 아름다운 연인이여)

Son (꿈)

Aleko's Cavatina (From Opera "Aleko") (알레코의 노래)

 

박종화  호수

윤학준  마중

노영심  꽃 때

조혜영  못잊어

 

2부는 먼저 차이코프스키의 가곡 세 곡으로 시작됩니다. 차이코프스키는 1840년에 광산기술자 감독관인 아버지 아래에서 태어나 우랄 지방의 광산촌을 전전한 덕분에 유년기를 자연 속에서 소박한 시골 생활로 보냅니다. 이 경험이 러시아적인 서정성이 생겨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차이코프스키 개인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 못하여 말이 적고 사색적이며 우울한 정서를 지녔는데, 그의 이런 감성이 인류의 보편적인 비애와 죽음에 대한 절망감과 매치되어 오히려 대중에게 친근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 연주될 곡은 <무도회의 법석 속에서 Sred Shumnovo Bala>로 톨스토이의 시에 곡을 붙인 것입니다. 시종일관 무도회 분위기의 왈츠풍 3박자 곡으로 작곡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들썩한 분위기가 아니라 쓸쓸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무도회에서 마음에 드는 한 여인을 바라보기만 했던 남자가 무도회가 끝난 외롭고 고독한 밤에 다시 그 여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생각해 보는 노래입니다. 잠시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이 떠올라 기분이 밝아지기도 하지만, 다시 단조로 바뀌면서 외로운 곡조가 유지됩니다.

 

Sred shumnovo bala, sluchaino,

떠들썩한 무도회에서, 문득

V trevoge mirskoi suety,

세속의 소란 속에서,

Tebya ya uvidel, no taina

살며시 당신을 보았네

Tvoi pokryvala cherty.

가려진 당신의 모습을

 

Lish ochi pechalno glyadeli,

그대의 눈은 슬프게 응시하였지만

A golos tak divno zvuchal,

그대 목소리만은 아름답게 울렸지

Kak zvon otdalyonnoi svireli,

멀리서 들리는 갈대의 울음처럼

Kak morya igrayushchyi val.

바다의 장난스런 파도 소리처럼

 

Mne stan tvoi ponravilsa tonkyi

그대의 가는 허리와

I ves tvoi zadumchivyi vid,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 내 마음에 들었지

A smekh tvoy, i grustnyi, i zvonkyi,

그대의 웃음, 그토록 슬프고 맑던 웃음이

S tekh por v moyom serdtse zvuchit.

그때부터 언제나 울려퍼진다!

 

V chasy odinokie nochi

고독한 밤에

Lyublyu ya, ustalyi, prilech;

피곤한 나는 즐겨 드러눕고

Ya vizhu pechalnye ochi,

난 그대의 수심 가득한 눈을 보고

Ya slyshu vesyoluyu rech,

그대의 명랑한 소리를 들으며

 

I grustno ya, grustno tak zasypayu,

슬프게, 슬프게, 이렇게 난 잠이 드네

I v gryozakh nevedomykh splyu…

신비한 꿈을 꾸면서…

Lyublyu li tebya, ya ne znayu,

당신을 사랑하는 것일까, 알 수가 없어

No kazhetsa mne, chto lyublyu!

그러나 난 생각한다, 사랑한다고!

 

감상은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의 연주로 들어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rke76lTueQ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는 여인의 모습 때문에 신비한 꿈까지 꾸게 된 것을 느낀 남자는 자신이 여인을 사랑하는 걸까, 질문해 보다가 결국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점차 한 여인을 향한 사랑이 깊어진 남자는 그리움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두 번째 곡 <오직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 Net, tol'ko tot, kto znal>에서 그 괴로운 마음이 잘 표현됩니다. 연모의 감정이 불타올라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로 사랑의 불꽃이 심장을 녹여 견디지 못합니다.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가 1869년 오페라 가수인 아르토에게 깊이 애정을 느끼고 결혼을 결심하지만 고백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해 버린 시기에 쓰여졌습니다. 절망에 가까운 비애를 경험한 후에도 그녀와 우정 관계는 지속시켰지만 실연의 고통과 그리움은 절절하게 남아 있습니다.

 

괴테의 시에 곡조를 붙인 이 곡은 타오르는 열정을 그리움 안으로 내재시킴으로써 터져나오지 못하는 가슴 아픔과 어지러움이 더 부각되도록 표현되었습니다. 아마도 내성적이고 사랑에 적극적이지 못했던 차이코프스키의 성격 때문인 것 같습니다.

 

Net, tol'ko tot, kto znal svidan'ja, zhazhdu,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 내 괴로움을 아네

pojmjot, kak ja stradal i kak ja strazhdu.

나 홀로 모든 기쁨에서 떠나

Gljazhu ja vdal'... net sil, tusknejet oko…

하늘 저편만 그리며 보네

Akh, kto menja ljubil i znal — daleko!

아! 나를 사랑하는 이, 저 먼 곳에 있네

Akh, tol'ko tot, kto znal svidan'ja zhazhdu,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 내 괴로움을 아네

pojmjot, kak ja stradal i kak ja strazhdu.

어지러워, 내 가슴 불타는 듯

pojmjot, kak ja stradal i kak ja strazhdu.

어지러워, 내 가슴 불타는 듯

Vsja grud' gorit…

어지러워, 불타네, 내 가슴속이

Kto znal svidan'ja zhazhdu,

아!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 내 괴로움을 아네

pojmjot, kak ja stradal i kak ja strazhdu.

나 홀로 모든 기쁨에서 떠나왔네

 

이 곡은 베이스바리톤 마르셀 정의 연주로 들어봅니다. 발음이 정확하게 들리는 연주라서 원어를 보면서 듣기 쉽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aYlx6NfM-Y

차이코프스키가 머뭇거리는 사이 사랑하는 여인은 그렇게 떠나버렸지만, 그의 곡들을 선곡해 연주하는 길병민은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바로 다음 이어지는 세 번째 곡이 <돈 주앙의 세레나데Serenada Don Juana>이기 때문입니다. 이 곡 역시 톨스토이의 시에 차이코프스키가 곡을 붙였습니다.

 

돈 주앙(돈 후안)은 14세기 무렵 스페인에서 살았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바람둥이로 일생 동안 세상을 떠돌면서 여인들을 유혹하고 버리기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그 전설적 인물을 소재로 많은 시인, 작가, 작곡가들이 예술작품을 만들었는데, 중세에는 방탕한 행동에 대해 벌을 받게 되는 도덕적인 결말로 만들었고, 근대로 올수록 진정한 사랑을 찾아 방랑하는 음유시인의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이 곡 역시 이 세상 어느 여인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여인을 위한 세레나데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여인을 흠모하는 노래가 세빌리아에서 그라나다까지 울려 퍼질 거라는 노랫말은 가장 흠모할 만한 이상적인 여성을 찾아 방랑길을 떠난 돈 주앙의 서사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자신의 피와 노래를 바치며, 그 여인을 모욕하는 사람이 있다면 목숨을 바쳐 싸우겠다는 남성적 의지가 강하게 드러난 곡이어서 매력을 더하고 있습니다.

 

알푸하라의 황금빛 땅에 어둠이 내려 앉네

나의 기타가 그대를 부르면 나와주오, 내 사랑이여!

누구든 감히 다른 사람을 당신과 비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사랑을 불태우며 누구든

그게 누구든 모두 다 내가 죽기로 맞서 싸울 것이오

달빛 속에 지평선이 빛나네요

오, 니세타여 나와주오. 니세타여 나와주오.

어서 발코니로 나와주오!

 

세빌리아에서 그라나다까지

밤의 고요한 어둠 속에서

세레나데 소리가 들릴 것이오

칼이 맞부딪치는 소리도 들릴 것이오

많은 피와 많은 노래가 흐르겠지요

아름다운 숙녀들을 위해

난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위해

내 피와 노래를 바치겠소!

지평선이 달빛에 빛나네요

오, 니세타여 나와주오. 니세타여 나와주오.

어서 발코니로 나와주오!

 

앞선 두 곡에서는 마음에 드는 여인 앞에 다가서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는 모습이었다면, 이 곡은 용기를 내어 그녀의 방 창문 앞으로 다가가 발코니로 나와달라고 힘차게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자신의 사랑을 방해하는 누구라도 용서치 않고 죽을 각오로 맞서 싸우며 꼭 사랑을 쟁취하겠다는 용기를 냈으니 결과야 어떻든 좋은 결정이요, 선곡입니다.

 

이 곡은 길병민이 2019년 제16회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 준결승에 참가할 때 연주했던 동영상으로 감상합니다. 아래 동영상 링크 url 주소를 클릭하시면 바로 연결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dnqG8u7x54

이렇게 멋진 노래로 사랑을 고백했으니 아마 행복한 결말을 기대해도 좋겠습니다. 세 곡의 연주가 인상적인 스토리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세 곡은 모두 라흐마니노프의 가곡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에 걸쳐 활약한 작곡가로 러시아혁명 이후 미국에 망명하여 활동했습니다. 서정적인 낭만주의를 따르면서 고전적인 형식미와 러시아의 민족 색채를 담아내어 수많은 예술가곡을 작곡했습니다.

 

슈베르트와 슈만을 잇는 독일 가곡의 전통을 따라 문학적 성향을 짙게 보이며, 낭만주의 시들을 러시아어로 번역하여 작곡하였습니다. 주로 단조를 사용하여 서정적이고 우수에 찬 곡들이 많습니다.

 

첫 번째 곡은 길병민이 이미 여러 번 연주하여 잘 알려진 <노래하지 마오, 아름다운 연인이여 Ne poj, krasavica, pri mne>입니다.

 

푸슈킨의 시에 곡조를 붙인 것인데, 라흐마니노프가 자신의 사촌이며 미래의 부인인 나타샤에게 헌정한 노래입니다.

 

아름다운 연인에게 노래를 부르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이유는, 그 노래가 영원히 떠나간 불행한 사랑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라져 고통이 되어버린 희망과 잃어버린 꿈을 떠올리게 하고 불행했던 삶을 떠올리게 하기에 노래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합니다.

 

이 곡은 원래 테너와 소프라노를 위해 작곡한 것으로 러시아 민요와 동양적 색채감의 그리움과 우울한 정서가 녹아 있습니다.

 

Ne poj, krasavica, pri mne

노래하지마오, 아름다운 이여, 내 앞에서
ty pesen Gruzii pecal'noj:

슬픈 그루지아 노래를:
napominajut mne one

그 노래는 또 다른 인생과
druguju zizn' i bereg dal'noj.

저 먼 강가를 생각나게 하는군요.

Uvy, napominajut mne

슬프오, 당신의 그 잔인한 노래는
tvoi zestokie napev yi step', i noc,

그 초원, 그 밤, 그 달빛,
i pri lune certy dalekoj bednoj devy!
멀리 있는 슬픈 여인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는군요!


Ja prizrak milyj, rokovoj,

난 당신을 볼 때 그녀의 그리운
tebja uvidev, zabyvaju;

운명적인 환영을 잊어요
no ty poes',

하지만 당신이 노래하면
i predo mnoj ego ja vnov'voobrazaju.

그 모습은 내게 다시 아른거려요

Ne poj, krasavica, pri mne

노래하지 마오, 아름다운 이여, 내 앞에서
ty pesen Gruzii prcal'noj:

슬픈 그루지아 노래를:
napominajut mne one

그 노래는 또 다른 인생과
druguju zizn' i bereg dal'noj.

저 먼 강가를 생각나게 하는군요.

이 곡 역시 길병민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준결승에서 연주하였습니다. 그는 이십대 초반부터 이 곡의 깊은 애수를 잘 표현하여 인정을 받았습니다. 아래 동영상 링크 url 주소를 클릭하시면 바로 연결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c620kNbn2I

이 곡의 주인공 남자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소녀는 누구이며, 저 먼 강가에서 슬픈 사랑으로 끝난 추억은 무엇일까요? 다음 곡을 살펴보면서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라흐마니노프의 가곡 두 번째 곡은 <꿈Son>입니다. 고향을 떠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외로움과 그리운 정서를 표현한 노래입니다. 남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고향을 떠나왔고, 고향의 추억이 꿈 속에 가끔씩 나타납니다. 친구와 가족들을 만나 사랑의 말들을 나누는 꿈은 아쉽게도 짧은 꿈으로 사라집니다.

 

I u menja byl kraj rodnoj;

내게도 고향이 있네

Prekrasen on!

아름다운!

Tam el' kačalas' nado mnoj...

전나무 흔들거리는...

No to byl son!

꿈이었네!

 

Sem'ja druzej živa byla.

친구와 가족들에게

So vsech storon

둘러싸여

Zvučali mne ljubvi slova...

사랑의 말들이 들리네...

No to byl son!

꿈이었네!

 

이 곡은 테너 Martins Smaukstelis의 목소리로 들어봅니다. 안경에 비친 모습으로 영상을 만든 게 흥미롭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8GluBQFcH0

 

간간이 꿈속에 찾아오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외로운 방랑자에게 새로운 스토리가 이어집니다. 세 번째 곡은 <알레코의 노래>입니다.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오페라 <알레코>에 나오는 주인공 알레코의 독백으로 제1회 OPERA CROWN에서 길병민에게 우승 트로피를 안긴 곡입니다.

 

<알레코>는 라흐마니노프가 19세 때 모스크바 음악원을 마치기 위해서 작곡한 졸업작품으로 최우수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차이코프스키로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아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했다고 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푸슈킨의 시집 <집시>를 바탕으로 이 오페라를 작곡했습니다.

 

줄거리는 19세기 러시아의 귀족인 알레코가 형식적이고 답답한 귀족 생활을 버리고 자유를 찾아 집시들과 함께 방랑생활을 하면서 아름다운 집시 여인 젬피라를 사랑하지만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비극으로 끝난다는 내용입니다.

 

두 사람은 정식으로 결혼한 것도 아니었고 신분 차이도 커서 귀족인 알레코가 언제까지나 집시들과 함께 살아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젬피라의 아버지는 알레코에게 더 이상 집착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간청합니다.

 

젬피라도 알레코와의 사랑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알레코를 멀리 하게 됩니다. 한편 집시 중에는 젬피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청년이 있었는데, 알레코는 젬피라의 마음이 자신에게서 멀어져 그 집시 청년에게로 향하는 것을 보고 질투심에 불타 집시 청년을 살해합니다.

 

집시들은 알레코를 법정에 세우기를 원치 않았기에, 알레코가 자기들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며 집시마을에서 쫓아냅니다.

 

길병민이 노래한 <알레코의 노래>는 젬피라의 변심에 대하여 괴로워하는 장면입니다. 집시 캠프의 모든 사람들은 다 잠들었는데, 혼자서 잠들지 못하고 깨어 괴로워하며 젬피라를 사랑했던 순간들을 추억하고, 젬피라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돌아보며 변해버린 그녀를 원망하는 마음의 고통이 담겨 있습니다. 먼저 가사를 읽어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잠이 들었네

달은 높이 떠 한밤의 아름다움으로 환하게 빛나네

그런데 왜 내 마음은 초라하게 떨고 있나?

무슨 슬픔이 나를 괴롭히고 있나?

아무 걱정도 회한도 없이

이 방랑자의 시간을 난 잘 보내고 있는데

세련된 교양의 족쇄를 벗어던지고

난 있는 그대로 자유로운데

난 믿을 수 없는 맹목적 운명의 힘 같은 건 인정하지 않고 살아왔지

그런데 신이여, 어찌 정념이 내 영혼을 순종하게 만들어버렸는지요

젬피라!

그녀가 날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녀가 얼마나 다정하게 내게 기대어

고적한 침묵 속에서 시간 보내는 걸 좋아했는지!

얼마나 사랑스러운 재잘거림과 숨 막히는 키스로

그녀는 내 우울한 기분을 단숨에 내몰아버리곤 했는지!

난 기억해. 더할 수 없는 기쁨과 열정으로 그녀가 내게 속삭였던 말을

난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 뜻대로 하세요.

난 영원히 당신 거예요. 알레코!

그때 난 모든 걸 잊고 말았지

그녀의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래서 난 미친 듯 키스했지

그녀의 매혹적인 두 눈에

밤보다 더 까만 그녀의 땋은 머리에

그녀의 입술에

그녀는 행복감과 열정에 사로잡혀

내게 기대어 내 눈을 쳐다봤지

그런데 지금은?

그런데 지금은?

젬피라는 날 버렸어

젬피라는 변했어!

젬피라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버리고 말았어!

 

이 한 곡의 노래에 사랑의 희열과 황홀했던 추억, 당당했으나 초라해져버린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 영원하리라 믿었던 이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 그로 인한 절망과 고통, 그러나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남자의 의지가 역동적으로 순간순간 다양한 표정과 목소리로 표현되며 다채롭고 복잡하게 이야기를 구성합니다.

 

그래서 이 한 곡의 노래를 듣고 있자면 한 편의 소설을,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아래 동영상 링크 url 주소를 클릭하시면 바로 연결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qkHQiyPMJc

이렇게 라흐마니노프의 세 곡은 고향을 떠나온 이가 아름다운 여인의 노래를 들으며 고향에서의 삶을 떠올리고 괴로워하기도 하고, 꿈에서 고향을 그리워하기도 하다가, 여인과 사랑에 빠져 드디어 사랑의 기쁨을 맛보지만 결국 신분의 차이와 서로 다른 성향을 극복하지 못하고 피를 부르는 비극으로 치닫는 고통과 격정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외국 곡들의 연주가 끝나고 한국 가곡 네 곡의 연주가 이어집니다. 이 곡들은 모두 길병민의 데뷔 앨범 <꽃 때>에 실린 것으로 한국 가곡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본 공연에서 연주할 첫번째 곡은 창작 가곡 <호수>입니다. 이 곡은 서울대학교 작곡과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원을 졸업한 신예 작곡가 박종화의 곡에 시인 이병률이 가사를 붙여 만든 모던하고 세련된 노래입니다.

 

이병률 시인의 원작시 <호수>는 문장의 서술어까지 다 들어 있어서 어떻게 노래로 만들까 궁금했는데, 노랫말로 사용될 수 있도록 짤막하게 개사를 했군요.

 

잔잔한 호수의 표면이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며 흔들리는 모습을 연상케하는 뛰어난 피아노 연주와 함께 단순한 음조로 묵직하게 울리는 길병민의 목소리가 다소 실험적으로 들릴 만큼 예술적입니다. 월드클래스 성악가와 피아니스트가 예술 한 자락 보여준 기분입니다. 공연을 통해서 관객들과 또 어떻게 호흡할지 몹시 궁금합니다.

 

두 번째로 연주되는 곡은 길병민이 자주 연주하여 잘 알려진 윤학준의 마중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qOyuW7rWdE

 

세 번째 곡은 노영심의 <꽃 때>입니다. 앨범의 타이틀 곡이며, 시인 이병률과의 합작품으로 탄생한 새로운 창작가곡입니다. 다가오지 못한 순간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을 길병민 특유의 풍부한 감정과 호소력 넘치는 목소리로 연주하게 됩니다.

 

이 곡을 들은 한 아티스트는 "이 곡, 너무 아프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인생의 깊은 아픔이 담긴 가사와 처연한 선율이 길병민의 깊은 목소리에 어울려 아픔과 관조가 함께하는 고요하고 수준 높은 감성을 보여줍니다.

 

이 곡이 연주될 때 수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릴 것으로 예상되므로 마음이 여린 분들은 손수건 한 개쯤 준비하셔야 할 듯합니다.

 

마지막 곡은 조혜영 작곡가가 김소월의 시에 곡조를 붙인 <못잊어>입니다. 길병민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후에 처음으로 열리는 이 단독 리사이틀은 그에게도 그의 팬들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입니다.

 

그 감흥이 아련하게 표현될 감동의 마지막 순간이 기대됩니다. 이미 길병민의 앨범이 발매되어 이 곡이 클래식 차트에 오를 정도로 묵직한 그리움의 아픔이 잘 전달되었습니다. 공연의 마지막 곡으로 불러질 때 또 수많은 팬들의 가슴을 울릴 것입니다.

 

무대가 끝난 뒤에도 팬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그리움의 여운을 마치 답가처럼 소프라노 이해원의 목소리로 감상하며 글을 마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jJBn13LU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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