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이 무섭고 아름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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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일상생활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이 무섭고 아름다운 이유

by 브린니 2020. 9. 22.

마리크 감독의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 원제는 <Another Year>입니다. 직역하면 < 다른 >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할 영화의 내용이 느껴집니다.

 

물론 포스터의 문구처럼 타인에게 ‘망설이거나 모른 척하거나 다가서거나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삶을 담아낸다는 의미에서세상의 모든 계절이라고 포괄적이고 서정적인 제목을 다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포스터의 이미지처럼 나무에서 사계절이 달라지듯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들이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난 후의 감상 중에 가장 인상적인 관객평을 꼽자면전무후무한 최고의 공포영화라는 평을 들고 싶습니다.

 

잔잔한 영화가 그리도 공포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네 일상 속에 들어있는 해결할 없는 고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무성해지며, 가을이면 열매와 낙엽으로 화려해지고, 겨울이면 눈꽃으로 아름다워지는 사계절의 변화 속에는 Another Year, 다른 해가 존재합니다. 우리는 year 모두 지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먼저 영화의 시작은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년 여성의 진료에서 시작됩니다. 여성은 술을 많이 마시며 가정에 무책임한 남편과 집을 나가 어디에서 사는지도 모르는 , 약간의 위안은 되나 삶의 소망이 되지 못하는 아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여성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허드렛일에 시달리며 어떠한 즐거움도 없이 살아갑니다.

 

심리상담을 제안받지만 나아지고자 하는 열의가 없습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다른 인생Another life’입니다. 하지만 다른 인생은 주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 중년 여성의 상담을 맡았던 심리상담사는 제리입니다. 그리고 제리의 남편은 지질학자인 톰입니다. 제리와 톰은 소위 우리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노년의 부부입니다. 그들은 명예롭고 안정된 직업과 집과 자연을 벗삼을 있는 작은 농장, 듬직하고 바른 변호사 청년 아들이 있습니다.

 

제리는 심리상담사라는 직업이 천상 어울릴 것처럼 보입니다. 불안한 독신녀 메리의 술주정을 들어주며 안아주고 집에서 재우기도 합니다. 이런 일은 사람을 지치게 법도 한데, 그들의 집은 이런 외로운 이들이 제발로 찾아오는 따스함이 있나 봅니다. 남편 톰의 친구인 독신남 켄도 이들을 찾아와 술주정을 하면서 외롭다고 울어댑니다.

 

그들을 품어주고 안아주는 톰과 제리의 모습을 보면 바다처럼 푸근해 보이고 성숙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런 헌신과 배려에는 분명한 선이 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지나간 삶의 후회와 외로움에 절어 자기 자신에게만 몰입된 나머지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하지 못하는 독신녀 메리가 감히 톰과 제리의 아들에게 자꾸 접근하는 것입니다. 메리는 여전히 사랑을 꿈꾸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여성으로서 외모에 공을 들이고 멋진 남성에게 이끌리는 태도를 보입니다.

 

그런 그녀가 꿈꾸는 사랑의 결실은 아마도 톰과 제리의 가정 같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녀가 톰과 제리의 아들에게 자꾸만 다가가는 것은 자신이 가장 이상적으로 느끼는 따뜻한 인간관계로 들어가고 싶다는 소망입니다. 다만 젊은 청년이 나이 자신을 선택해 준다면 가능하겠지만, 그것은 꿈꾸는 독신녀의 소망일 뿐이지요.

 

메리의 마음을 알게 톰과 제리는 매우 단호하게 당신은메리 이모라고 지칭합니다. 제리는 메리에 대해서 실망했고 화가 났고 다시는 집으로 초대하지 않습니다. 메리의 술주정과 추태를 받아줄 있었던 마음은 자신의 가정에 감히 침범하려 하는 순간 완전히 사라지고 화가 그녀를 단절해 버립니다. 사실 제리에게 메리는 전혀 없어도 되는 존재였던 것이지요.

 

이것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마이크 감독이 선을 행하는 사람의 진짜 속내를 드러내어위선 보여준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톰과 제리의 평화롭고 아름다워보이기만 하는 겉모습 안에도 어두움이 있는 것일까요? ‘위선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를 적용할 만큼 그들의 내면에도 밝음과 어두움이 존재하는 이중성이 있다는 뜻일까요? 그렇다면 그들에게도 씨를 뿌려 수확을 하는 사계절의 해year 이외에 다른 해year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름에서부터 비밀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영화 중간에 인물들이 농담처럼 이야기하듯이 그들의 이름은 앙숙인 고양이와 쥐의톰과 제리 설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먹고 먹히며 골탕 먹이고 또다시 쫓는 톰과 제리의 만화를 우리를 어릴 때부터 보아 왔습니다.

 

가장 행복해 보이고 사랑으로 가득해 보이는 그들의 속에 보여지지 않는 관계의 이야기가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잡아먹어서 안달인 톰과 제리가 사실은 서로 없어서는 필요한 관계인 것처럼 만화에서 보이듯이 서로를 힘들게 하면서도 서로가 없어서는 살아갈 없는 그런 존재이기에 안에는 빛과 어두움이 함께 합니다.

 

게다가 일부일처제 하에서가정이라는 공동체 자체가 지니는 배타성이 어쩔 없이위선이라는 양태로 나타납니다. 인간은 지성과 본능을 동시에 지니듯이가정역시 그것의 고결한 가치와 함께 본능적 보호 방식이 존재합니다.

 

가정 안에서 양육되고 지켜지는 소중한 가치들은 사회로 뻗어나가 성숙한 흐름을 만들어가는 발전적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동물적 본능은 타인에 의해 상처받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며 가정을 위해서는 기꺼이 타인을 희생시키는 배타성을 지닙니다. 모습을 톰과 제리의 모습에서 여실히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가정조차 매우 사랑이 넘치는 같으나 동시에 매우 잔인한 면모 또한 보여줍니다.

 

이는 톰의 형의 아내가 죽어 장례를 치르러 때도 나타납니다. 형은 가정에 무책임하고 술만 마시는 무기력한 삶을 살았고, 아내가 힘들게 일하여 가정을 꾸려나갔는데, 모습을 싫어하는 아들은 비뚤어져 집을 나가 반항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형의 아내는 어느 아침 죽은 채로 발견되고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돌아온 아들은 아버지에게 가정에 무책임했다고 화를 내고 따집니다.

 

이때 톰은 형을 두둔하며 조카에게 그런 너는 했냐며 소리를 칩니다. 그러자 제리가 톰을 말리며 이상 조카에게 관여하지 말라고 선을 긋습니다. 그리고 상처한 형이 마음을 추스릴 때까지 자신들의 집에 있자고 데리고 옵니다.

 

톰과 제리는 그저 조용히 앉아 담배만 피우는 형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보살펴 수는 있지만, 거칠고 분란을 일으키는 조카는 내버려 둡니다. 거기까지가 그들의 가정을 위험하지 않게 하면서 자신들의 선함을 유지할 있는 경계입니다.

 

여전히 삶은 이어집니다. 톰과 제리는 농장에서 채소를 돌보고 돌아와 따뜻한 음식을 해먹는 나날을 이어갑니다.

 

어느 메리가 그들을 찾습니다. 동안 혼자 외롭게 지낸 메리는 화려했던 옷차림을 벗어던지고 초라하고 늙어보이는 차림새 그대로 추운 겨울날 덜덜 떨며 외로워 죽을 지경이라고 찾아온 것입니다. 잘못했으니, 다시는 감히 행복한 가정의 일원이 되겠다고 넘보지 않을 테니, 제발 따뜻한 가정의 식탁 끝에라도 앉아 행복을 구경하게라도 해달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만큼만 허락을 받습니다. 아들과 여자친구가 행복하고 발랄한 표정으로 와서 식구가 즐거운 수다를 떨며 행복한 식사를 합니다. 식탁에서 행복을 구경만 수밖에 없는 사람, 술꾼 형과 독신녀 메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갑니다.

 

형의 죽은 아내는 마치 영화의 장면에서 나왔던 불면증의 중년 아내의 모습과 같은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다 그녀도 형의 아내처럼 수면제를 많이 먹고 아침에 시체로 발견될지도 모르지요.

 

다른 삶을 꿈꾼 여성이 그렇게 죽어갔고, 남편은 식탁 끝에서 말없이 이상적인 다른 모습을 바라보며 ‘Another Year’ 살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이 되면 잎이 무성하고 가을이 되면 과실을 맺으며 겨울이 되면 눈꽃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삶을 꿈꿀 것입니다. 그리고 삶을 살아내기 위해 앙숙 톰과 제리는 어려운 관계를 계속 이어갑니다.

 

어려운 관계가 너무 어려워 싫은 사람은 관계를 끊고 혼자된 , 혼자된 제리가 낫겠다고 돌아섭니다. 어떤 이들은 삶을 이루어낼 용기도 힘도 열의도 없이 술만 마시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옆에서 누군가가 죽어나갑니다.

 

우리는 모두 낙원을 잃은 존재입니다. 사계절의 빛이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이 충만하게 밝다면 그곳이 천국이겠지요.

 

하지만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추구할 있는 것은 고작 정도입니다. 톰과 제리처럼 앙숙과 살아가는 어려움을 견디면서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때로 스스로를 위선적이라고 느끼더라도 울타리를 지킬 있도록 선을 확고하게 그어가면서, 마음을 위로해줄 작은 농장이라도 하나 마련하고 햇살 아래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시며행복하다, 행복하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정도 말입니다.

 

그런 관계 안에 갇히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비혼주의자들도 아주 많습니다. 원해서 독신이 되었든, 원하지 않는데도 독신이 되었든, 일단 독신으로 살아간다면 또한 견뎌야 빛과 어둠의 무게를 확고하게 양손에 쥐고 흔들려서는 것입니다.

 

영화가 공포스러운 이유는 메리가 과거의 선택에 대해서 끊임없이 후회하면서 자신의 현재 삶을 제대로 꾸려나가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톰의 독신 친구처럼 자신을 관리하지 못하고 늙어버린 지금은 하고 싶은 못하고 산다며 슬퍼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무기력하게 술만 마시며 주변인을 힘들게 톰의 형처럼 살아서도 것입니다.

 

우리 삶의 사실적 고통들을 드러내는 영화를 보면서 현실이 공포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희망 없이 현실을 끌어안게도 됩니다. 시쳇말로인생 있어싶은 생각이 듭니다. 별거 없는 인생이기에 초라해 하지도 말고 슬퍼하지도 말고, 오늘 하루 주어진 시간을 가장 행복하게 사용할 있는 방법을 찾아봅니다.

 

그러고 보니 햇살이 정말 아름다운 가을날입니다. 행복할 없지만, 행복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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