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정북동 토성
충북 청주시 청원구 정북동 351-1
문암생태공원에서 차로 15분가량 달려 정북동 토성에 도착했습니다. 오는 길에 기차 건널목을 보았습니다. 도심에서는 기차가 달리는 모습이나 기찻길을 보기 어려우니까요. 왠지 운치가 있어 잠깐 서서 기차를 기다렸습니다. 기차는 좀처럼 오지 않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어릴 적 기찻길에서 철로에 돌멩이 놀이 쌓기를 하다 기차 경적소리에 놀라 뛰어 달아나던 기억이 되살아나서 웃음이 났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들어가니 좁은 주차장에 차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습니다. 역시 가볼 만한 곳이라고 알려진 곳은 언제나 사람들이 많습니다. 차들 역시 많고요.
주차장을 빠져 나와 5분가량 돌아서 토성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차를 세웠습니다. 사실 토성 가는 길은 좁은 농로뿐이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지시하는 대로 들어가면서도 논 사이로 난 길로 가도 되나 싶었거든요. 역시 논길을 들어가면 곤란해지는 건 뻔한 일이었습니다. 차를 좀 더 주차하기 수월한 곳에 대고 나니 마음도 편해졌습니다.
다시 논길을 걸어 토성을 향했습니다. 논에서는 벼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가을 햇볕에 바짝 내려쬐어야만 곡식이 잘 익겠지요. 사람들은 언제부터 벼를 익혀 먹으면 배가 부르고 먹고살 수 있다고 알게 되었을까요. 벼가 쌀이 되고, 쌀이 밥이 되는 신비!
그런데 논길을 함께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젊은 연인들이었습니다. 생태공원에서는 가족 단위로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여기선 젊은 커플들이 더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실 논밖에 없고, 토성이라고 해봐야 작은 언덕 몇 정도인데 굳이 볼 것도 없는 여기에 젊은 연인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토성 앞으로 오니 많은 사람들이 일몰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세워두고 서 있습니다. 이곳은 저녁노을로 유명한 곳입니다. 토성 뒤로 넘어가는 저녁 해가 그리는 붉은 노을이 아주 멋지다고 소문났지요.
아하, 젊은 연인들도 이곳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인생샷을 찍기 위해 몰려든 것입니다. SNS에 멋진 사진을 올리면 환호하는 댓글이 달리는 걸 즐기는 것일 테지요.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연인과 함께 멋진 인생샷을 연출하기 위해 정북동 토성을 많이들 찾나 봅니다.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좀 남았습니다. 먼저 토성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토성의 길이는 총 675.5m이고, 성벽의 높이는 약 2.7m∼4.5m 사이라고 합니다. 청주시 북쪽 미호천(美湖川) 연안에 펼쳐진 평야의 중심에 위치한 평지 토성으로 정확한 축조 연대를 알 수 없으나 대개는 후삼국 시대로 추측하지만 성의 위치와 주변 여건이 성곽으로서의 초기 양상을 보여주고 있어, 삼국시대의 전·중기에 축성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하지만 토성은 선사시대 때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돌화살촉과 돌창, 돌칼 등이 이곳에서 나왔고, 성 외곽에 해자垓字가 있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 때부터 성과 비슷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해자垓字란 성 주변으로 둘러 파서 만든 도랑으로 적을 방어하고, 배수하는 기능을 했습니다.
토성의 첫 번째 해자는 성 바깥쪽에 만들어졌고, 두 번째 해자는 첫 번째 해자를 보수하면서 성 안쪽과 바깥쪽에 모두 만들어졌습니다. 후에는 성의 방어 기능이 필요 없게 되어 이를 메우고 도로를 냈다고 합니다.
토성은 남북이 약간 긴 사각형이며 성안의 중심부에는 동서로 가로 질러 농로가 있었습니다. 농로의 북쪽으로 20여 호의 민가가 있었고, 남쪽은 경작지입니다.
문터 가운데 동·서·북의 것은 지금도 통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배수 문제는 서쪽이 약간 높은 지세에 따라 서문으로 물의 유입을 막고, 성안의 물을 동쪽으로 흘려보내 해자(垓字)로 유입되도록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성벽의 길이는 동벽 185.5m, 서벽 165m, 남벽 155m, 북벽 170m으로 전체 675.5m입니다. 정북동 토성은 유구의 상태가 가장 완전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토성의 구조나 출토 유물 등으로 미루어 한국 초기의 토성 연구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토성은 성이라고 하기엔 별로 크지 않은 4개의 야트막한 언덕처럼 보입니다. 여기에 고대 사람들이 살았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언덕에 오릅니다. 그만큼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곳입니다. 토성 성벽 위엔 소나무 몇 그루가 심겨 있습니다. 휑한 언덕에 단지 몇 그루만 있기에 더욱 운치가 있습니다.
토성의 중앙엔 드넓은 풀밭이 펼쳐져 있습니다. 여기에 사람들이 평화롭게 앉거나 눕거나 또 마음껏 걸어다닐 수 있습니다. 기타를 치는 사람도 있고, 둘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제 해는 서쪽 성벽 뒤에서 서서히 저물고 있습니다.
이제 해가 점점 모습을 감추고 붉은 해의 꼬리가 성벽 주위를 물들이고 있습니다.
토성 동벽에 오른 사람들이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점프도 하고, 서로 팔을 벌려 하트를 그리기도 합니다. 홀로 노을을 바라보고 선 여인도 있습니다. 붉은 노을 속에서 사람들은 검은 형태로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동벽 아래 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의 카메라 셔터가 연신 터집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토성에 오는구나. 해가 지는 시간은 길어야 15분 정도 이 사이에 멋진 사진 한 컷을 찍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린 것입니다. 어떤 것이든 뭔가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젊은 연인들이 누군가와 전화를 하며 “오늘 나 인생샷 하나 건졌어!” 하고 외칩니다. 인생의 빛나는 한때를 담은 사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보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겠지요.
붉은 저녁노을이 어둠으로 변해가는 걸 보면서 토성 밖으로 걸어나옵니다. 벼가 들녘이 더 풍성해 보입니다. 곧 추석이 다가오고, 벼들은 익어 고개를 숙이겠지요. 그리고 추수가 시작되고, 들녘이 텅 비는 시간이 찾아오겠지요. 그리고 눈이 와서 땅을 덮겠지요. 겨울에 이곳을 찾아 빈 들판과 겨울 저녁놀을 꼭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4계절이 있어 좋은 이유가 이런 것 아니겠어요.
곧 밤이 올 것입니다. 짙은 어둠 속에서 평온한 밤, 그리고 잠. 잠 속에서 꾸는 행복한 사랑의 꿈!
*유구遺構
인간의 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파괴되지 않고서는 움직일 수 없는 잔존물입니다. 유구는 대지 위에 구축한 것이기 때문에 유물과 같이 연구실로 옮겨서 분석할 수 없는 단점이 있으나 과거 인간들의 활동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입니다. 즉 유구를 통해 과거의 건축양식, 의례생활, 사회조직 및 경제행위 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유구는 주거지, 수전지, 무덤, 저장고 등의 단순한 유구와 건축물, 사원 등의 복잡한 유구로 구분됩니다 유구는 발굴시 쉽게 색이 변하거나 변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발굴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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