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셰이머스 히니 <사산아를 위한 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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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셰이머스 히니 <사산아를 위한 비가>

by 브린니 2020. 9. 15.

사산아를 위한 비가

 

 

I

네 어머니 걸음은 가볍구나 텅 빈 통발처럼

잊는 중이지 알게 되었던 그 친밀한 팔꿈치 찌름과 당김

 

양팔이 몸통에 묶인 네 씨앗 -살과 뼈- 우유 덩이가

내처 해댔던 그짓 말이다. 그 축출된 세계가

 

수축한다 그 역사, 그 상처 둘레로.

세상의 마지막 날이 닥쳤다 붕괴한 네 영역이

 

우리의 대기 속에서 스스로 소등했을 때,

네 어머니는 배 속 가벼움으로 무거웠고.

 

 

여섯 달 동안 너는 계속 지도제작자였다,

내 친구를 남편에서 아버지 쪽으로 지도 그려주는.

 

그는 짐작했다 네 꾸준한 쌓임 뒤 하나의 지구를.

그랬는데 북극성 떨어졌다, 운석으로, 땅바닥에.

 

 

외로운 여행 때마다 난 생각한다 그 모든 것을,

죽음의 탄생을, 매장 대신 발굴을,

 

자그만 옷가지들의 화환을, 기념물 유모차를,

그리고 허깨비 사지를 만져보려 손 뻗던 부모를.

 

나는 차를 몬다 원격 제어로 이 꾸밈없는 길에서

가랑비 뿌리는 하늘, 원을 그리는 한 마리 당까마귀 아래,

 

산 벌판 몇 개를 지나, 넘칠 만큼 구름 가득 차,

하얀 파도 겨울 호수 제 집으로 달려가고.

 

                              ―셰이머스 히니Seamus Heaney(북아일랜드, 1939-2013) *1995년 노벨문학상 수상

 

 

【산책】

아들을 낳은 것을 자기 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아니, 단 하나뿐인 잘 한일이라고 말하는 남자가 있다.

 

그런데, 그렇게 장한 일을 이루지 못한 부모도 있다.

죽은 채 태어난 아이.

 

그 아이의 탄생을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

어머니 뱃속에서 한때 살아 있었던, 그리고 밖으로 나온 아이.

 

죽음을 조금 일찍 본 것일까.

아니면 조금 늦게 태어난 것일까.

 

죽음이 오기 전에 조금 먼저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죽은 아이의 생일은 무슨 날일까.

 

생일이며 장례일.

무엇을 기념하며 무엇을 기뻐하며 또 무엇을 슬퍼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아이의 죽음인가. 탄생인가.

 

짧았던 아이의 생.

생이라고 말하기도 전에 너무 빨리 닥친 죽음.

 

부모보다 더 빨리 죽음을 맞이한 성질 급한 아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6개월, 너는 무엇을 보았을까.

양수 속은 어둠인가, 푸른 물인가.

 

초음파로 찍은 너의 머리와 얼굴.

배꼽에 길게 달린 탯줄.

 

작은 몸과 발과 손.

너도 사람이었다.

 

지금은 없지만 아주 작은 사람.

 

아, 보고 싶구나. 그 사람.

 

미처 사람이 되지 못한 사람 이전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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