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아르튀르 랭보 <장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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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아르튀르 랭보 <장식장>

by 브린니 2020. 9. 12.

장식장

LE BUFFET

 

 

그것은 조각된 커다란 장식장. 아주 오래된

침침한 떡갈나무가 노인네의 선한 자태를 띠었다.

장식장은 열려 있고, 그 어둠 속으로 붓고 있다.

오래된 포도주의 흐름처럼, 마음 끄는 향기를.

 

꽉 차 있구나, 낡고 낡은 것들의 집산,

냄새 나는 누런 속옷, 여자들이나 어린아이들의

헌옷가지, 색 바랜 레이스 장식,

그리푸스가 그려진 할머니의 세모꼴 숄.

 

- 거기서 찾게 되는 것은, 커다란 메다용,

백발 혹은 금발 머리 다발, 초상화들,

제 향기를 과일 향기에 뒤섞는 마른 꽃들.

 

- 오, 오랜 세월의 장식장이여, 너는 많은 역사를 알고 있으니,

네 이야기를 전하고 싶겠지, 그래서 너는 소리를 내는구나,

커다란 네 검은 문짝이 천천히 열릴 때면.

 

                                                                        1870년 10월

 

                     ―아르튀르 랭보 Arthur Rimbaud (프랑스, 1854–1891)

 

 

【산책】

 

요즘엔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빌트인 수납장에 옷이나 물건들을 쌓는다.

그래서 장인들이 만든 장식장은 자주 볼 수 없다.

 

노인네의 선한 자태를 뿜어내며 떡갈나무 장식장이 오래된 집 한복판에 서 있다.

 

열려 있는 장식장에서는 오래된 포도주와도 같은 마음을 잡아끄는 향기가 배어나온다.

낡은 물건들이 꽉 들어차 있다.

 

냄새 나는 누런 속옷과 여자들이나 어린아이들의 색 바랜 레이스 장식 헌옷가지,

할머니의 세모 모양의 숄.

 

백발과 금발 머리 가발들과 초상화들, 마른 꽃들에서 향기가 흘러나온다.

 

오랜 세월의 기억들을 품고 있는 장식장은 수많은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커다란 문짝이 열 때마다 삐거덕거리며 소리를 낸다.

 

아이들이 이런 오래된 장식장 속에 숨으면 뒤쪽으로 난 문을 열고 겨울나라로 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

 

장식장 안에서 잠이 들어 식구들이 찾고, 이름을 부르지만 밤 깊도록 잠에서 깰 수 없다.

그때 무슨 꿈을 꾸었을까.

 

그날 저녁, 그날 밤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이런 장식장들이 사라지고 볼 수 없다.

 

모든 것이 간편하고 심플해지고 미니멀적인 삶이 유행이다.

이사를 갈 때마다 버리고 가는 것이 너무 많다.

 

추억들도 자꾸 버리게 된다.

추억을 꺼내 들여다보는 것도 시간낭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추억이 없다면 미래에 남은 그 많은 날들을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과거는 늘 미래에 맞닿아 있으니까.

 

 

 

*나니아 연대기-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 C,S루이스의 소설로 영화화 됨.

2차 세계대전 중 전쟁을 피해 먼 친척 집에 맡겨진 네 남매들은 어느 날 그 저택에 있는 마법의 옷장을 통해 환상의 나라 나니아에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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