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병민 콩쿠르 참가곡 <내 영혼이 벅차오르는구나>
본문 바로가기
슬기로운 일상생활

길병민 콩쿠르 참가곡 <내 영혼이 벅차오르는구나>

by 브린니 2020. 9. 5.

국가대표 베이스-바리톤 길병민은 다수의 국제 대회 베이스 우승자로 알려져 있지만, <팬텀싱어3>에서 크로스오버 곡들을 부르고 갈라콘서트에서 가요와 랩을 하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때문에 오히려 일반 시청자들은 그가 베이스 연주자로서 진지한 성악곡을 부를 때의 진면목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는 세계 3 콩쿠르 하나인 프랑스 뚤루즈 콩쿠르에서 최연소 베이스 연주자로서 우승한 경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베이스 연주자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연주를 한번쯤 감상해 필요가 있겠습니다. 길병민은 2015 서울대 재학 3학년 때부터 베이스 연습을 시작했고, 이듬해부터 국제 대회에서 우승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감상하고자 하는 2016 서울 국제 콩쿠르 경연곡 < 영혼이 벅차오르는구나Mentre gonfiarsi l'anima> 베이스 파트를 공부하는 연주자가 연습하고 정복해야 매우 정통하고 유명한 곡이라 하겠습니다.

 

곡은 주세페 베르디G. Verdi 오페라 <아틸라Attila> 나오는데, 아틸라는 로마 제국을 침략한 훈족의 왕입니다. “아틸라가 온다 하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멈추었다고 만큼 유럽인들에게는 두렵고 무서운 존재였다고 합니다.

 

베르디의 오페라는 남성 베이스와 바리톤이 극을 주도할 만큼 남성 성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데, 특히 아틸라는 베이스 파트로서 묵직하고 위엄있는 목소리의 매력이 중요합니다. < 영혼이 벅차오르는구나Mentre gonfiarsi l'anima> 아틸라의 노래로 로마 정복을 눈앞에 두고 야망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마음을 표현한 곡입니다.

 

특히 곡은 침대에서 잠을 자던 아틸라가 꿈속에서 노인을 만나 로마를 침공하면 벌을 받게 거라는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어 침대 아래 바닥에서 잠을 자던 신하 울디노에게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어서 극적인 재미가 있습니다. 가사는 이렇습니다.

 

Uldino! Uldin!

울디노! 울딘!

Non hai veduto?

자넨 보지 못했나?

Tu non udisti?

들리지 않는가?

 

Eppur feroce Qui s'aggirava.

아직도 그가 흉포하게 내 주위를 떠돌고 있어.

Ei mi parlò... sua voce Parea vento in caverna!

그가 내게 말하네... 그의 목소리가 동굴 속에 부는 바람 같아.

 

Mio fido, ascolta!

내 충성스런 신하여, 들어보게!

 

Mentre gonfiarsi l'anima Pare dinanzi a Roma,

내 영혼이 로마를 앞에 두고 자부심으로 벅차오를 때

Imman m'apparve un veglio Che m'afferrò la chioma...

웬 거대한 노인이 나타나서 내 머리카락을 움켜쥐니...

Il senso ebb'io travolto, La man gelò sul brando;

나는 감각이 멍해지고 내 손은 칼을 잡은 채 얼어붙었네.

Ei mi sorrise in volto, E tal mi fe' commando:

그는 내 얼굴을 보고 웃음 짓더니 명령하였네.

 

“Di flagellar l'incarco Contro I mortali hai sol.

“너는 인류에 반한 죄로 징벌을 받을 것이다.

Tarretra! Or chiuso è il varco; Questo de'numi è il suol!”

퇴각하라! 길은 이제 막혔다. 여기는 신들의 영토다!”

In me tai detti suonano Cupi, fatali ancor,

이 말들은 내게 근심스럽고 심지어 운명적으로까지 들렸네.

E l'alma in petto ad Attila S'agghiaccia pel terror.

그리고 이 아틸라의 가슴 속 영혼이 공포로 마비되었지.

 

Or son liberi I miei sensi! Ho rossor del mio spavento.

이제야 내 정신이 드는구나! 두려워하다니, 부끄럽다.

Chiama I druidi, I duci, I ré.

드루이드 사제들과 장교들과 왕들을 불러라.

Già più rapido del vento, Roma iniqua, volo a te.

이제, 사악한 로마여, 내가 네게 바람보다도 빠르게 날아갈 것이다!

 

Oltre a quel limite T'attendo, o spettro!

오, 혼령이여! 저 경계를 넘어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Vietarlo ad Attila Chi mai potrà?

누가 아틸라에게 이것을 부인할 수 있으랴?

Vedrai se pavido Io là m'arretro,

사람들은 내가 두려움에 차서 거기서 퇴각하거나,

Se alfin me vindice Il mondo avrà.

아니면 마침내 이 세계의 보복자로 알려지는 것을 보게 되리라.

 

꿈을 꾸고 소스라치게 잠에서 깨어난 아틸라는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황급히 신하 울디노를 부릅니다. “울디노! 울딘!” 곡의 소절부터 이러니 청중에게 호기심을 일으키고 몰입하게 만듭니다.

 

길병민은 부분에서 눈을 부릅뜨고 당황한 몸을 흔들며 두려움을 표현합니다. 묵직한 베이스 음색에 왕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용감하게 전장을 누비는 훈족의 아틸라에게도 내면에 이러한 두려움이 있어 무서운 꿈을 아이가 엄마를 부르듯 자신을 보좌하는 신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묘한 동정심을 갖게 됩니다.

특히 꿈속에 만난 노인의 목소리를 표현하면서그의 목소리가 동굴 속에 부는 바람 같아 sua voce Parea vento in caverna!라고 부를 , 마지막에 저음 깊이 내려가는 소리가 매력적입니다.

 

그러곤 여전히 두려움에 얼굴로 충성스런 신하여, 들어보게! Mio fido, ascolta!라고 말하며 꿈의 내용을 들려주려 하는데, 잠시 끔찍한 꿈을 떠올리며 괴로운 고개를 숙이고 눈을 질끈 감습니다.

다시 눈을 뜨면서 자신이 로마 제국 정복을 앞두고 얼마나 가슴이 뛰고 벅차올랐는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거대한 노인이 나타나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는 것입니다. 이때 기겁하여 놀라는 표현이 완벽합니다.

아틸라는 온몸이 얼어붙어 있는데, 노인은 웃음까지 지은 후에 명령합니다. 신의 명령을 표현하면서 길병민은너는 인류에 반한 죄로 징벌을 받을 것이다 Di flagellar l'incarco Contro I mortali hai sol 위엄있게 한쪽 팔을 올려 심판하듯이, “퇴각하라!Tarretra! 팔을 벌려 물러나라는 듯이, 그리고여기는 신들의 영토다!Questo de'numi è il suol! 가장 낮은 음정으로 엄중하고 무거운 신의 선포를 보여주며 베이스의 매력을 한껏 과시합니다.

말을 들은 자신의 심정이 어떤지 이야기할 , 가슴에 손을 얹고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고뇌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몸의 흔들림을 보여주며 가슴 영혼이 공포로 마비되었다고 여러 반복해 노래하며 고통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 두려움을 주는 전설적인 훈족의 왕입니다. 고통스런 마음을 한껏 표현한 후에 문득 정신을 차립니다. 이제야 정신이 드는구나! 두려워하다니, 부끄럽다.Or son liberi I miei sensi! Ho rossor del mio spavento.라고 말하며, 다시 위엄있는 태도로 드루이드 사제들과 장교들과 왕들을 불러라. Chiama I druidi, I duci, I ré. 라고 명령합니다.

 

이때 손을 펼친 모습은 마치 꿈속에서 노인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꿈속 노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대표하는 신적인 존재이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바로 아틸라가 신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모습이 대조적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제 로마를 향해 진격할 거라고 선포합니다. 이때 로마를 사악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눈길을 끕니다. 이제, 사악한 로마여, 내가 네게 바람보다도 빠르게 날아갈 것이다! Già più rapido del vento, Roma iniqua, volo a te.로마는 기독교적 배경하에서 이교도인 이방인이며 야만인인 훈족이야말로 사악하다고 텐데, 훈족의 아틸라는 로마를 사악하다고 하니 말입니다.

 

이제 아틸라는 마음을 다잡고 진격의 준비를 합니다. 이때 길병민은 아틸라를 표현하면서 연주복의 단추 풀기 신공을 보입니다. 곡의 절정을 향하면서 격정적인 소리를 내기 위한 행동이기도 하겠지만, 남자가 뭔가 해보겠다고 나설 옷의 단추를 풀고 덤비는 것처럼 보여 극적인 재미를 주기도 합니다.

이제 두려움을 떨쳐버린 꿈속의 혼령을 향해 맞서겠다고 말합니다. , 혼령이여! 경계를 넘어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Oltre a quel limite T'attendo, o spettro!자신에게 남은 길은 진격밖에 없으며 후에 져서 퇴각하든지 이겨서 정복하든지 가지 길밖에 없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입니다.

 

이때 한쪽 팔을 세상을 향해 들고 정복자의 위엄을 보이며, 손을 머리 위로 올려 승리를 염원하는 당당한 태도가 위엄있는 정통 베이스 연주자로서의 수련을 완성해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멋지게 로마로 진격하지만, 베르디의 오페라 <아틸라> 아쉽게도 유럽인들의 입맛에 맞는 결론을 냅니다. 아틸라가 로마 성벽 앞에서 교황을 만나는데 교황의 모습은 꿈속에 만난 노인의 모습과 같으며 아틸라는 꿈이 현실이 되자 기겁하여 쓰러져 퇴각하고, 이후 훈족 캠프에서 전략을 짜며 로마의 장군을 초청해 회담을 열어 후일을 도모하지만, 아틸라가 이전에 정복했던 성주의 딸의 계략으로 아틸라는 그만 허무하게 죽게 됩니다.

 

이때 성주의 딸은 지략으로 접근해 아틸라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목적은 아틸라의 가슴에 칼을 꽂기 위함이었고, 결국 아틸라는 아내로 맞으려던 여인의 칼에 심장이 찔려 최후를 맞이합니다.

 

오페라는 이탈리아인들이 가진 종교적 신념 , 자기 나라 영토는 신의 영토이기에 아무리 강한 적이 와도 신이 자신들을 보호해 물리쳐줄 것이며, 특히 이탈리아는 남성뿐 아니라 여인조차도 이렇게 강한 능력과 행동력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을 충족시켜주는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이탈리아에 대한 애국적인 내용 때문에 줄거리가 개연성이 없다든가 아틸라의 영웅적인 모습을 퇴색시켰다는 등의 비판도 많다고 합니다.

 

5세기 전반에 루마니아 지역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는 카스피해에서 서쪽으로는 라인강에 이르기까지 대제국을 건설한 훈족은 로마에게 조공을 받을 정도로 강성했습니다. 로마 정복을 앞두고 교황 레오1세가 아틸라를 방문하여 회담하였고, 아틸라는 로마의 문화 보호 차원에서 로마를 폐허로 만들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베르디의 오페라 <아틸라> 번안한 버전에서는 아틸라가 교황 레오1세를 만난 개종하여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표현함으로써 이탈리아인들의 욕망을 만족시켰다는 점에서 관점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오늘날 여전히 이러한 종교패권주의로 인해 실제로는 나약하고 힘없기 짝이 없으면서도 마치 자신들이 정신적, 영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처럼 거짓 교만과 허영을 떨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연일 TV 뉴스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들로 인해 최악의 전염병 바이러스가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데도 여전히 상대방을 야만적인 술수를 쓰는 적으로 간주하려 막말을 내뱉는 하얀 머리의 종교 지도자를 바라볼 , 오히려 야망과 두려움에 솔직한 아틸라가 영웅적으로 느껴집니다.

 

로마는 훈족의 아틸라를 보고 사악하다 하지만 아틸라는 로마를 향해사악한 로마라고 말하듯이, 과연 지금 문제가 되는 일부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의 행태를 보면 누가 사악한 건지 국민이 것입니다.

 

그럼, 시대 최고 베이스 연주자 길병민의 목소리로 아틸라의 노래를 감상해 보세요.

www.youtube.com/watch?v=QVQuq7GjxyI

 

*가사 번역: 최의권 번역 참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