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지만 괜찮아> 김수현 서예지, 진짜 얼굴을 찾아가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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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일상생활

<사이코지만 괜찮아> 김수현 서예지, 진짜 얼굴을 찾아가는 여행

by 브린니 2020. 8. 17.

 

 

 

트라우마를 지닌 채 살아간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을 동반합니다. 더욱이 그 트라우마가 과거에 한 번 경험한 것에 그치지 않고, 지금도 반복되며 괴롭히고 있다면 정말 힘든 싸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주인공들은 모두 트라우마를 지닌 채 반복되는 악몽, 혹은 악몽 같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면을 쓴 소년과 저주받은 성에 사는 깡통 공주

오정세는 자폐증세를 보이는 38세 어른이지만 청소년 시절 어머니가 바로 눈앞에서 살해되는 것을 목격한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 살인범이 목격한 것을 입 밖에 내면 죽여버리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뒤부터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입니다. 무서워서 감히 살인범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가슴에 달린 나비 브로치만 보았을 뿐입니다. 나비가 많이 날아다니는 봄엔 나비에 쫓기는 악몽에 시달리며 집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도망쳐야 합니다. 나비에 쫓기는 것은 거의 1년에 한번씩 되풀이되는 연례행사로 오정세와 동생 김수현에게는 거의 천형天刑과 같습니다.

 

김수현은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너는 내가 형을 지키는 사람으로 낳았다”는 말을 듣습니다. 김수현은 자신의 정체성을 형을 지키는 사람으로 살아가지만 진짜 자신으로 살고 싶다는 무의식적 욕망을 내면 깊숙이 숨기고 있습니다.

 

서예지는 어머니로부터 과잉보호를 받고 자랍니다. 사랑을 가장한 어머니의 과잉보호는 정도를 넘어서 딸을 자신과 같은 괴물로 만들고자 합니다.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고, 약한 자들은 도태된다고 가르치며 성에 갇힌 공주로 만들어 버립니다. 서예지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로 자라납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머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며 거의 매일 밤 악몽 속에 어머니가 나타나 너는 내 딸이다, 너는 나와 똑같다, 누군가 네 곁에 있으면 다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되풀이 듣습니다.

 

나비에 쫓기며 끊임없이 달아나는 형제와 괴물 같은 엄마의 사슬에서 벗어나고자 달아나는 저주받은 성의 공주는 어느 날 우연치 않은 일로 엮이게 되고 어느 덧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로 발전합니다.

 

사실 그들은 거의 20년 전부터 인생이 얽혀 있었습니다. 형 오정세가 물에 빠지자 김수현은 순간 형이 죽어버렸으면 하는 마음에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하다가 결국 형을 구해줍니다. 대신 자신이 물에 빠지고 맙니다. 그러나 자폐증세가 있는 형은 자기 혼자만 도망칩니다. 그걸 보고 있던 서예지가 김수현을 물에서 구해줍니다. 그 다음부터 김수현은 서예지를 좋아해서 매일같이 따라다닙니다. 그러나 서예지가 나비들을 반으로 갈라서 죽이는 모습을 보고 놀라서 도망치고 맙니다.

 

곧이어 형제의 어머니가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 살인범이 바로 가슴에 나비 브로치를 한 서예지의 어머니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단 한 사람 서예지의 아버지만 그 사실을 알고 아내를 2층 계단에서 밀쳐 죽이고 맙니다. 하지만 그녀의 시체는 사라지고 20년이 흘러갑니다.

 

우여곡절 끝에 김수현과 서예지는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오정세까지 세 사람은 한 가족이 되기로 언약합니다.

 

김수현, 서예지 ― 서로 기댈 수 있는 사랑을!

그러나 무의식에 억압되었던 것은 반드시 귀환하고 맙니다. 오정세는 정신과 상담 중 자신을 괴롭히던 나비에서 벗어나기 위해 살인범에 대한 기억을 꺼내게 됩니다. 나비 브로치를 한 여자가 살인범이라고 밝히는데 김수현은 그 범인이 서예지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서예지의 가족사진에서 본 것과 같은 나비 브로치였기 때문입니다.

 

김수현은 자신이 형의 보호자가 아니라 자기에게도 자기만의 인생이 있음을 알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순간 어머니의 죽음의 비밀을 알게 되고, 심지어 그 범인이 사랑하는 여자 서예지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다시금 무력하게 무너지고 맙니다. 하지만 예전에도 그랬듯이 나비로부터 형을 지키고, 서예지를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지키겠다고 다짐합니다.

 

김수현은 모든 비밀을 다시금 묻으려는 것입니다. 즉 무의식을 다시 억압하는 것입니다. 김수현은 자신의 정체성, 즉 누군가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더 굳건하게 만듭니다. 자신만 입 다물고 있으면 모든 것이 다 평온하다, 그렇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일 뿐입니다.

 

김수현과 서예지, 오정세가 가족사진을 찍은 다음날 오정세가 그리던 병원의 벽화에 나비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큰 나비 위에 작은 나비가 올라가 있는 흰색 나비 브로치, 그것을 본 세 사람은 멘붕에 빠집니다. 오정세는 엄마를 죽인 아줌마 나비 브로치라고 소리치며 벌벌 떱니다. 서예지는 그 나비 브로치가 어머니가 직접 만든 이 세상에 하나뿐인 브로치라는 것을 알아봅니다. 진실을 알고 있는 김수현은 형과 서예지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고 멍하니 서 있습니다.

 

숨겨왔던 트라우마가 한꺼번에 현실에 튀어나와 버린 것입니다. 사실 무의식의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것이기에 무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현실 앞에 툭 튀어나오고 나니 현실 괴물로 나타난 것입니다.

 

오정세는 나비로부터 달아나는데 20년을 보냈고, 김수현은 그런 형을 지키기 위해 20년을, 서예지는 나비 브로치를 한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20년을 고통 받았는데 이제 그 나비가 세 사람 앞에 버젓이 나 여기 있소, 하면서 마치 너희들은 결코 나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소리치는 것입니다.

 

김수현은 형에게는 범인이 서예지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리지 않습니다. 다만 진실을 알아버린 서예지에게 달려가 위로합니다. 서예지는 진실을 다 알아버렸기에 더 이상 지금 이대로 살 수 없을 것이라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서예지는 그 동안 겪었던 트라우마 위에 죄책감까지 덧씌우게 되었습니다. 서예지는 쉽게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의식은 숨어 있을 때 더 무서운 법입니다. 이제 나비는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곧 범인은 세 사람 앞에 얼굴을 들이밀 것입니다. 이제 도망치지 말고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20년 동안 얼굴을 바꾸고 살아왔던 서예지 어머니가 드디어 얼굴을 드러냅니다. 요양 병원 수간호사로서 남편이 20년 동안 고통당하다가 죽는 모습을 본 서예지의 어머니는 딸 곁에 있는 김수현과 오정세를 떼어내 버리기 위해 20년 만에 나타납니다.

 

김수현은 서예지와 오정세를 지키기 위해 달려갑니다. 그러나 도리어 자신이 위험에 처하게 되고 서예지도 구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립니다. 그때 잠들어 있던 형 오정세가 깨어나 서예지 어머니를 처치하고 두 사람을 위기에서 구해냅니다.

 

흥미롭게도 지켜야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지키지 못하고 아무런 힘이 없고 남이 돌봐줘야 하는 대상이었던 오정세가 다른 사람들을 구해낸 것입니다.

 

사람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타자를 돕기도 하지만 타자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사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김수현, 서예지 ― 서로가 서로의 어깨에 기대며 새로운 인생을!

세 사람은 가장 완벽하고 안전한 도형인 삼각형을 이루며 한 가족으로서 여행을 떠납니다. 진짜 얼굴을 찾아서 떠났던 그동안의 여행을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인생을 꿈꾸면서 즐겁고 평화롭고 행복한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진짜 얼굴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드라마 역시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습니다.

 

서예지, 김수현, 오정세 ― 진짜 얼굴을 찾은 세사람의 동행!

그렇다면 이러한 행복한 결말에 이르기까지 그 세 사람이 어떤 인생 여정을 걸어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드라마처럼 행복한 결말로 이어지지 않는 인생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왜 드라마 주인공들은 해피엔딩인데 내 삶은 이 모양 이 꼴일까, 원망하고 분노하는 인생들에게 해피엔딩을 이야기해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이 해피엔딩을 맞은 이유들을 살펴봅시다.

 

첫째, 세 사람이 만나기 전 그들은 모두 문제가 있지만 정말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문제가 있어도, 그 문제를 풀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행복이나 기회는 그런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니까요.

 

서예지는 20년 만에 나타난 어머니도 인정하듯이 아주 잘 컸습니다.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동화로 승화시키며 어둠을 밖으로 꺼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20년 만에 진짜 어둠을 맞닥뜨리고 나서도 담대하게 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김수현 역시 형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지만 끝까지 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비록 자기만의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을 무의식 깊이 억압하지만 그것이 갑자기 튀어나오지 않도록 절제하면서 죽을힘을 다해 싸워왔습니다.

 

오정세는 나비에게서 도망치면서도 직업훈련소도 다니고 그림도 그리면서 자기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 사람은 해피엔딩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삶을 이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세 사람 모두 기회가 왔을 때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김수현은 과거에 좋아했지만 무서워서 도망쳤던 서예지를 다시 만나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끝내겠다는 자기의지의 발현입니다. 형을 지키는 사람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밖으로 꺼내고 자신이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막 놀면서 모든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합니다. 그러나 길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하지만 삶의 윤리적 책임으로부터 도망치지는 않습니다.

 

서예지는 김수현을 만나 인간에 대한 감정을 느끼고, 어머니로부터 탈출하는 문을 발견하고 그를 사랑하게 됩니다. 김수현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폐 증세를 보이는 오정세마저 끌어안습니다.

 

오정세 역시 점차 성숙해가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형이며 어른이라는 것을 자각합니다. 정신과 상담을 통해 더 이상 나비에 쫓기지 않고, 나비와 싸우겠다고 다짐합니다. 무의식에 숨어 있는 나비를 꺼내 그림으로 그립니다.

 

셋째, 그들은 모두 타자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타자의 힘을 빌리기도 하고, 타자에게 위로와 격려와 사랑을 베풀기도 합니다.

 

트라우마가 무서운 것은 그것 때문에 온전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은 어렵게 다른 존재들을 받아들입니다. 몇 번이나 관계가 깨어질 위기가 찾아오지만 서로가 서로의 손을 놓지 않습니다. 이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트라우마가 자기 자신을 괴롭힐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괴롭히고 서로의 관계를 파괴하기 때문에 무서운 것인데 이들은 새로 만든 인간관계를 최선을 다해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이미 반 이상 트라우마를 극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세 가지 이유로 김수현, 서예지, 오정세는 트라우마에 벗어나 자신들의 진짜 얼굴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는 동화가 오브제로 자주 등장합니다. 동화는 주인공들이 자신의 본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서예지는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 「좀비 아이」, 「손, 아귀」와 같은 동화를 쓰면서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밖으로 표출하고 있습니다.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

김수현은 「봄날의 개」를 읽으며 자신의 목을 묶고 있는 형에 대한 책임감과 죄책감을 마주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묶고 있는 목줄을 풀고 자유롭게 날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목줄을 풀고 달려가고 싶은 봄날의 개

오정세는 동화를 통해 인간에 대해 배웁니다. 급기야 서예지 때문에 동화 삽화를 그리게 되고 자페 증세를 가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의 감정 표현에 대해서도 배웁니다. 특히 동생 김수현이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행복해 하며 잠든 얼굴을 통해 사랑과 행복이란 감정을 배웁니다.

 

오정세가 그린 동생 김수현의 사랑에 빠진 행복한 얼굴

동화의 줄거리와 삽화가 드라마 중간 중간을 채우며 주인공들의 내면세계를 펼쳐 보이는 동시에 시청자들 눈을 다양한 영상미로 채워주었습니다.

 

동화 같은 세 사람의 드라마가 끝나고 그들은 꿈에 그리던 캠핑카를 타고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이 절정에 오를 때 오정세는 다른 동화 작가와 함께 그림 작업을 하기 위해 떠나겠다고 말합니다. 드디어 동생과 함께 묶여 있던 끈을 풀고 홀로 서는 것입니다. 동시에 동생 김수현도 홀로 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서예지와 또 다른 가족을 만들 수 있게 되겠지요.

 

주말마다 즐겨보던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끝나서 주말이 좀 휑하네요. 하지만 세 사람의 인생이 해피엔딩을 맞아 덩달아 행복해지는 느낌입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윤동주 시인이 「서시」에서 다짐한 것처럼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당당하게 걸어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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