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병민 콩쿠르 참가곡 <돈 후안의 세레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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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일상생활

길병민 콩쿠르 참가곡 <돈 후안의 세레나데>

by 브린니 2020. 8. 9.

어느 갑자기 영국에서 날아와 팬텀싱어3 통해 따뜻한 흉성의 저음으로 아름답고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며 대중의 눈도장을 찍은 길병민은 국제 콩쿠르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일로도 유명합니다.

 

그의 콩쿠르 참가곡 유난히 눈길을 끄는 작품은 차이코프스키의 < 후안 세레나데>입니다. 바른 인성과 따뜻한 매너, 지적인 언어 사용 등으로 신사적인 엘리트의 면모를 보여온 그가 호색한이며 바람둥이로 알려진 후안 세레나데를 멋들어지게 부르는 모습은 색다른 매력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돈 후안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길병민

 

2019 16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 준결승 참가곡으로 부른 곡은 차이코프스키가 톨스토이의 시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노래라고 합니다.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100 곡의 로망스 중에서도 곡이 가장 인기가 있고 유명하여 많은 성악가들에 의해 연주되었습니다.

 

주앙( 후안) 14세기 무렵 스페인에서 살았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바람둥이로 일생 동안 세상을 떠돌면서 여인들을 유혹하고 버리기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후안은 수많은 작가와 음악가들에게 모티브를 주었고 여러 관점에서 재창조되었습니다.

 

길병민은 노래하기 전에 원작소설을 읽고 캐릭터를 연구하며 감정을 대입하여 풍부하게 표현하기로 유명한 성악가입니다. 과연 그가 많은 후안의 모습 중에서 어떤 면에 감정을 대입했는지 궁금합니다.

 

먼저 후안의 이야기를 처음 희곡으로 사람은 17세기의 티르소 몰리나(Tirso de Molina) 알려져 있습니다. 1630년에 발표한 그의 < 후안> 여인을 농락하고 정복한 뒤에 버리는 방탕한 사람으로 그려졌으며, 후안에 의해 죽은 사람이 신적인 존재로 나타나 그에게 벌을 내리는 인과응보의 결말을 맞이합니다.

 

몰리나의 뒤를 이어 1665년에 극작가 몰리에르가 < 후안> 발표하는데, 그는 후안을 대단히 지적인 인물로 묘사했고, 난봉꾼으로서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기보다는 때문에 신의 벌을 받는 종교적인 서사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슬로베니아의 철학자이며 음악에 깊은 조예를 보여준 믈라덴 돌라르는 그의 저서 <오페라의 번째 죽음>에서우리는 후안이 탁월한 기독교적 영웅임을 이해해야만 한다 말했습니다. 후안은원리상의 죄인으로그와 같은 우화적 형상의 출현은 기독교적인 정신적 원리의 역사적 강행의 산물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 중세 기독교가 절대적으로 선하고 엄격한 신적 원리를 강조함으로써 도리어 그것과 반대되는 죄인으로서 후안의 존재감이 명확하고 강력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후안의 존재가 중세 기독교의 위세에 짓눌려 있던 사람들에게 일말의 일탈을 느끼게 해주는 캐릭터로서 짜릿한 시원함을 안겨주었던 것입니다.

 

동시에 표면적으로는 기독교적 원리를 따르는 같지만, 실제로 궁정 귀족사회는 허식과 색욕으로 가득했을 아니라 영주는 자기 영지의 처녀들에 대한 초야권까지 행사할 정도로 방탕했음에 대해서 풍자하기 위한 도구로도 후안의 이름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 후안> 이야기의 교훈은방탕한 자는 벌을 받는다라는 명제였습니다.

 

겉다르고 속다른 명제에 균열을 사람은 모차르트입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 조반니 Don Giovanni>( 후안의 이탈리아식 표기, 1787) 로렌초 폰테와의 공동작업으로 < 후안> 관한 기존의 서사를 비틀어 놓았습니다. 로렌초 폰테는 베네치아의 수도사 출신인데 세속적 쾌락에 탐닉하여 추방된 뒤에 작가로서 활동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후안의 방탕하고 화려한 여성 행각을 간접 체험하면서 흥미를 느끼지만 도덕적으로 찜찜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때 후안에게 살해당한 기사장의 혼령이 등장하여 그를 징벌할 도덕적인 안정감을 갖게 됩니다. 가지 요소가 함께 들어있어야 관객들은 재미와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오페라 < 조반니> 과정을 따르지 않습니다. 오페라 속의 조반니는 구애에 성공하지 못하고 거듭 실패하여 명의 여자도 정복하지 못합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도리어 조바심이 나고 답답해질 지경입니다. 게다가 징벌에 대한 태도 또한 시니컬합니다. 죄에 대해서회개하라 목소리에 코웃음을 치면서 용서를 구하지 않으며 지옥으로 뚜벅뚜벅 걸어 내려갑니다.

 

심지어 오페라의 조반니는 아리아조차 없습니다. 일반적인 오페라와 달리 그에게는 자신의 태도와 의도를 설명할 있는 아리아가 주어지지 않고 겨우 1 30 정도의 짧은샴페인의 노래 주어집니다. 실로 한낱 화려한 몽환의 거품과도 같은 샴페인 같습니다.

 

오페라 속의 조반니는 방탕한 호색한이라기보다는 깊은 비애감을 느끼게 하며 깊은 고독 속에 갇혀 괴로워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음악 또한 달콤하고 아름답지만 쓸쓸한 느낌을 줍니다. 그는 슬픈 노래를 부르는 시인처럼 보입니다.

 

이후 영국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16개의 시편으로 < 후안> 다루었는데, 이전의 후안과는 달리 지극히 매혹적인 외모 덕에 많은 여인들이 그를 흠모하여 유혹하는 내용으로 묘사했습니다. 다만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모습 때문에 비판도 받았지만 엄청난 인기도 누렸다고 합니다.

 

1843년에 시인 니콜라우스 레나우는 다른 시각으로 후안을 표현했습니다. 후안을 이상적인 사랑을 찾아 방황하는 낭만주의자로 생각해 지극히 흠모할 만한 여인을 찾아 모험하지만 끝내 꿈꾸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고독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으로 나타냈습니다. 후안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당시 많은 낭만적 예술가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역시 레나우의 묘사에 이끌려 후안을 낭만적 이상주의자로 표현하는 관현악곡을 작곡하였습니다. 17~18 정도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연주곡으로 최초로 출판한 악보에는 레나우의 시가 실려 있습니다.

 

참으로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이기는 하나

헤아릴 수 없이 광대한 마(魔)의 나라여

열락의 폭풍 속을 지나서

최후의 여인에게 입 맞춘 뒤 바로 죽어도 좋으리라!

 

이제 아름다운 폭풍은 멎고 정적만이 남았다.

모든 희망과 소원은 죽은 듯하다.

아마도 하늘의 섬광이 우리를 비웃고 우리 사랑의 힘을 흩어버리는 듯하다.

세상은 갑자기 황량한 어둠으로 변한다.

 

시에는 이상적인 여성을 찾아 방랑하는 후안의 모습이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후안에 대한 해석은 역사적으로 조금씩 변천되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길병민이 부른 차이코프스키의 < 주앙의 세레나데(СЕРНАДД ДОН-НЖУАНА)> 어떤 후안을 묘사하고 있을까요? 곡은 톨스토이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톨스토이는 러시아 영주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날에는 방탕한 시절을 보냈지만, 말년에는 기독교에 귀의하여 종교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러시아의 기독교라고 있는 정교회의 형식적 신앙에 저항하며 보다 실천적인 기독교 사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에게 후안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마땅히 징벌받아야 죄인이었을까요, 아니면 자신의 젊은 날을 투영하여 회한의 감정과 비애를 느끼게 하는 인물이었을까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 역시 그의 비극적인 삶을 투영하는 슬픔의 감정 때문에 한국인들의 정서에도 강한 인상을 준다는 것을 기억할 , 후안에 대한 중세 기독교적 관점보다는 모차르트 이후에 시인 니콜라우스 레나우로 이어지는 관점, 이상적인 여성을 찾아 방랑하며 고독한 비가를 부르는 슬픈 시인의 모습에 가까울 같습니다.

 

길병민이 부른 주앙의 노래 가사는 이렇습니다.

 

알푸하라의 황금빛 땅에 어둠이 내려 앉네

나의 기타가 그대를 부르면 나와주오, 내 사랑이여!

누구든 감히 다른 사람을 당신과 비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사랑을 불태우며 누구든

그게 누구든 모두 다 내가 죽기로 맞서 싸울 것이오

달빛 속에 지평선이 빛나네요

오, 니세타여 나와주오. 니세타여 나와주오.

어서 발코니로 나와주오!

 

세빌리아에서 그라나다까지

밤의 고요한 어둠 속에서

세레나데 소리가 들릴 것이오

칼이 맞부딪치는 소리도 들릴 것이오

많은 피와 많은 노래가 흐르겠지요

아름다운 숙녀들을 위해

난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위해

내 피와 노래를 바치겠소!

지평선이 달빛에 빛나네요

오, 니세타여 나와주오. 니세타여 나와주오.

어서 발코니로 나와주오!

 

세상 어느 여인과도 비교할 없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위한 세레나데가 세빌리아에서 그라나다까지 울려 퍼질 거라는 노랫말은 가장 흠모할 만한 이상적인 여성을 찾아 방랑길을 떠난 후안의 서사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모차르트의 조반니와는 달리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자신의 피와 노래를 바치며, 여인을 모욕하는 사람이 있다면 목숨을 바쳐 싸우겠다는 남성적 의지가 강하게 드러난 곡이어서 매력을 더하고 있습니다.

 

길병민은 <Noblesse>와 인터뷰에서 곡의 표현을 위해 자신의 성격을 객관화해 분류한 맡은 캐릭터에 도움이 만한 것을 꺼내어 쓴다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USB에서 필요한 자료만 선택해 쓰듯이 캐릭터와 어울리는 모습의 일부를 섞어요. 취사선택이죠.”

 

천하의 모범생 같이 보이는 그의 성격 객관화 분류 USB 안에도 후안의 모습에 어울릴 만한 것들이 있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앞서 인용한 <오페라의 번째 죽음>에서 믈라덴 돌라르는 후안에 대해그의 저항할 없는, 이루 표현할 없는 힘이 여자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실제로 그들을 파멸에 이르게 하지만 조반니와 더불어 맛본 행복을 위해서 불행해지기를 원하지 않는 처녀는 어리석은 처녀였다. 그녀는 진정한 여자가 아닐 것이다. 그리고 1 동안만이라도 조반니가 있다면 절반의 재산이나 생애를 내주겠다고 하지 않을 청년이 어디에 있겠는가? 역시 진정 남자가 아닐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세상 모든 여자들이 후안에게 매혹되는 기질이 있다면, 세상 모든 남자들이 후안의 인생을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길병민에게도 꽁꽁 숨겨둔 남성적 성향의 후안적 기질이 있을 것입니다.

 

그는 후안을 표현하기 위해 전주가 시작될 , 한쪽 눈썹을 끌어올리며 턱을 들어올려 강한 남자의 이미지를 끌어냅니다.

 

그리고 곡이 시작되면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저녁의 분위기를 노래합니다. 그리고 기타 연주를 하며 사랑하는 여인을 불러내려는 구애의 말을 시작합니다. 여인은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없는 사람이며, 유일성을 누군가 부정한다면 불타는 사랑으로 죽기까지 맞서 싸우겠다고 다짐하는 강한 눈빛으로 포효합니다.

 

 

경쟁자에게는 강한 수컷으로 포효하지만, 사랑하는 여인에게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직이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며 발코니로 나와 자신의 사랑을 받아달라고 간절하게 외칩니다.

 

 

사랑을 찾는 자신의 방랑은 세빌리아에서 그라나다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며 구애의 세레나데는 밤의 어둠 속에서도 그치지 않을 것이고, 사랑을 막아서는 자를 서슴지 않고 베는 맞부딪치는 소리 또한 밤의 적막을 깨울 거라는 단호한 표정과 노래 또한 압권입니다.

 

 

피흘림을 각오한 남자의 눈에 비친 달빛이 얼마나 고독한지 고개를 들어 곳을 응시하는 그의 표정 또한 다채로운 감상에 묘미를 더합니다.

 

 

마지막으로 팔과 가슴을 크게 열어 다시 한번 사랑하는 여인에게 발코니로 나와 자신을 맞아달라는 외침과 주먹을 불끈 한번의 외침으로 노래를 마칩니다.

 

 

세레나데가 끝난 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활짝 웃습니다. USB 깊숙한 곳에서 꺼낸 표현들이 역할을 마친 뒤에 다시 평소의 환한 웃음으로 돌아오는 모습마저 편의 드라마를 보는 같은길병민 서사 피날레입니다.

 

그가 표현한 후안의 세레나데에 매료되었던 관객들은, 불온하고 위험하며 어두운 방탕아적 기질에서 빠져나와 환하고 안정감이 있는 밝은 세계로 들어와 소년미 넘치는 환한 웃음으로 한숨을 내쉬는 모습에 편안함을 느낍니다.

 

모습의 간극이 너무 큰데도 너무 자연스러워서 웃음마저도 섹시함에서 밝음으로 전환되는 가지 색깔의 그라데이션과도 같은 변화를 보여줍니다.

 

완벽하게 관객들을 매료시킨 길병민의 노래에 대해서, 마치 해설이라도 하는 듯한 믈라덴 돌라르의 말을 인용함으로 글을 마치는 것이 가장 적당할 듯합니다.

 

본래 음악의 에로스적인 성격은 감각성처럼 유혹적이고 덧없으며, 바로 덕분에 절대적이다. 따라서 음악의 본질과 후안의 본질 사이에는 어떤 내속적 연관성이 있다. 음악의 관념은 후안의 관념 속에서 완성을 이룬다.”

 

콩쿠르 참가 영상의 감상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www.youtube.com/watch?v=2dnqG8u7x54

 

최근 국내 리사이틀 투어에서 이 곡을 연주하였으므로 공연 실황도 볼 수 있습니다.

www.youtube.com/watch?v=7wzUSk9Z-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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