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지만 괜찮아> 김수현 서예지가 건너는 출렁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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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일상생활

<사이코지만 괜찮아> 김수현 서예지가 건너는 출렁다리

by 브린니 2020. 8. 1.

출렁다리 위에서 인생을 느끼다

 

 

원주소금산출렁다리

강원 원주시 지정면 소금산길 14

 

 

 

주말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란 드라마를 봅니다. 아침 뉴스를 빼놓곤 일주일 동안 거의 텔레비전을 켜지 않다가 주말에 드라마 한 편을 보는데 요즘엔 이 드라마에 마음이 가네요. 김수현과 서예지가 그리는 인생의 아픔과 그 아픔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극복해내는 이야기가 보는 이들의 마음에 있는 가시를 조금씩 빼내주고 있다고나 할까요. 누구나 쉽게 꺼내지 못하는 아픈 이야기가 하나씩들 있으니까요.

 

사이코지만 괜찮아 드라마 포스터

 

그래서 김수현이 서예지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기로 마음먹으면서 처음으로 가는 곳, 바로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김수현은 일찍 부모를 잃고, 자폐증이 있는 형과 함께 살면서 자기 삶은 없고, 형을 보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서예지를 만나 자기 자신을 위해 ‘한 번 놀아보자’는 마인드로 바뀝니다. 놀아보자고 처음 찾아온 이곳 출렁다리 위에서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요.

 

Elaine의 Gonna Tell A lie을 들으며 비가 오락가락하는 주말 오후 원주 소금산을 향해 달려갑니다. 비오는 날씨에 듣기 좋은 곡입니다. 읊조리듯 부르는 Jazzy한 보컬이 멋집니다. 창밖에서 비는 흩날립니다. 마음도 싱숭생숭해지고 왠지 설렙니다. 오랜만에 산꼭대기에서 세상을 내려다 볼 생각을 하니 말입니다.

 

소금산 앞 주차장에 도착하니 4시 50분, 어슬렁대면서 매표소를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노점상하시는 분이 출렁다리 가느냐고 물어보십니다. 그렇다고 대답하니까 늦었으니 빨리 뛰어가서 표를 사야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매표시간이 오후 5시에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매표소는 저만치 보이는 다리를 건너서 소금산 입구에 있습니다. 일단 출발하고 보는 성격 탓에 매번 꼼꼼히 준비를 잘 하지 않는 누군가 덕분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늘 저녁 시간에 노을을 보는 식의 짧은 여행을 즐기는 탓이기도 합니다. 죽어라 뛰어가서 매표 종료를 알리는 멘트를 들으며 출렁다리 입장권을 구매했습니다.

 

입장권은 성인 3,000원인데 2,000원을 지역상품권으로 돌려줍니다. 내가 내 돈을 돌려받는 것인데도 공짜표를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업됩니다. 일종의 조삼모사인데 입장객은 공짜 느낌이 들어 좋고, 지역 상인들에게 도움도 되고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습니다.

 

출렁다리 매표소

 

출렁다리 입장권 손목띠밴드와 지역상품권

그런데 또 다시 달려야 합니다. 5시 30분 이전에 출렁다리 입구에 도착해야 하니까요. 출렁다리까지 산비탈을 따라 놓인 나무 데크를 578계단이나 올라야 하거든요. 비가 오다말다 하는 날씨라 후덥지근한데 계단을 오르려니 땀이 온몸을 적십니다. 올라다가 중간중간 물을 마시면서 쉬었다 걷다 합니다.

 

출렁다리로 가는 길 578계단
나무로 만든, 소금산을 오르는 길

데크 계단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초록의 기운을 흠뻑 받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도 즐거운 마음으로 힘들지 않게 계단을 오릅니다. 몇 계단이 남았는지 세면서 오르는 네 살 난 아들과 엄마도 만났습니다. 아이가 매우 끈기 있게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는 모습이 정말 늠름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릴 때부터 한 계단씩 오르는 걸 익힌 아이는 커서도 인생의 높은 산을 묵묵히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산을 오르면서 만나는 풍경들 - 통나무 산적

드디어 출렁다리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개찰구에서 입장권 팔찌를 태그하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여기가 소금산 출렁다리입니다. 여기서 김수현과 서예지가 재밌게 셀카를 찍는데요, 잘 웃지 않는 김수현을 보고 웃으라고 서예지가 재촉을 하죠. 아마도 웃는 게 인생을 즐기는 첫 시작이 아닐까요. 사실 그동안 김수현은 남을 위해 가짜 웃음을 많이 짓고 살았거든요. 처음으로 자기를 위해 웃기 시작한 거죠.

 

소금산 출렁다리 입구 표지판
<사이코지만 괜찮아> 김수현과 서예지 소금산출렁다리 셀카

맨 먼저 보이는 것은 출렁다리 전망대입니다. 가까이 갈수록 심장이 쫄깃해집니다. 전망대에 서보니 하늘에 붕 떠있는 느낌입니다. 간이 움찔움찔 합니다. 발을 옮겨놓기가 무섭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전망대를 더 앞쪽으로 길게 뻗도록 설계했다면 더 짜릿한 느낌이 들었을 텐데 싶어 아쉽기도 했습니다. 한 1미터만 더 앞으로 갔더라면 정말 하늘에서 떨어질 듯한 느낌을 느꼈을 텐데요.

 

소금산출렁다리 전망대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풍경

이제 다리 위로 올라가 볼까요. 출렁다리의 길이는 200미터 정도랍니다. 멀리 반대편이 보이고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발을 내딛는데 예상과 달리 전혀 무섭거나 떨리지 않습니다. 안전해도 너무 안전하다고나 할까요. 다리가 흔들리는 짜릿한 느낌을 원했던 사람들에겐 좀 싱거울 수 있겠다 싶었어요.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시원한 전망이 산과 강물, 작은 집들과 몇몇 시설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물론 아찔한 느낌이라곤 전혀 없고요. 편안하게 다리 위를 걷습니다.

 

출렁다리

다리는 산꼭대기에 걸쳐 있는데 왜 이렇게 편안한 것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 드라마의 주인공 김수현이 여기서 무엇을 느꼈을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 역시 외나무 줄타기처럼 위태롭지요. 줄타기를 할 때 마치 여기서 떨어지면 모든 게 끝장일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되죠. 한발만 잘못 디디면, 하면서 발끝에 온 신경을 모읍니다. 또 누군가 줄을 흔들어 떨어지게 할 것 같은, 음모론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하지요. 하지만 조금 지나다 보면 거대해 보이던 인생의 파도도 잔잔해질 때가 있고요.

 

출렁다리의 반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사람들

출렁다리 역시 그런 것 같습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볼 땐 산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어서 까딱 잘못하면 한순간 떨어질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발을 내딛고 걸어가다 보면 그만큼 안전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김수현과 서예지는 어릴 때 트라우마를 겪고, 다 커서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늘 그와 유사한 상황이 닥치면 피하고 맙니다. 김수현은 트라우마가 없는 척, 괜찮은 척하지만 마음이 점점 굳어져 자기의 상처가 없는 줄로 알고 살아갑니다. 서예지는 트라우마에 갇힌 자기 자신이 싫어서 일부러 센 척 강한 척 세상을 이기는 척하지만 텅 빈 깡통처럼 소리만 요란할 뿐 힘없고 밟으면 금방 찌부러질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 출렁다리를 건너는 김수현과 서예지

김수현은 높고 탁 트인 곳에 와보고 싶었다고 말하는데 서예지는 무서워서 다리를 건너지 못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놀자”라고 외치며 발길을 옮깁니다. 서예지는 노래를 부르며 무서움을 떨칩니다. “내가 만약 외로울 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윤복희가 불렀던 <여러분>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주고 사랑하면 어떤 위험한 다리도 건너갈 수 있다는 얘기일까요. 그러고 보니 사이먼과 가펑클Simon And Garfunkel의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라는 노래도 떠오릅니다

 

다리를 건너 반대편으로 내려옵니다. 반대편에서 바라보는 출렁다리도 멋집니다. 누가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산과 산을 다리로 건넌다. 사람이 상상하는 것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능력은 가히 신의 경지에 범접했다고나 할까요. 바다에도 산에도 섬에도 다리를 놓아 세상과 세상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다리를 놓다’는 말의 뜻처럼 세상과 사람을 이어주는 메신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 듯합니다.

 

 

반대편에서 본 출렁다리

다시 537계단을 내려가야 합니다. 나이 드신 분들은 계단을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 조심을 해야 하지만 왠지 이 계단은 어렵지 않고 편안하고 즐겁게 내려갈 수 있을 듯합니다. 산꼭대기에서 세상을 내려다보아서 그럴까요. 왠지 두려워 보이는 인생의 강도 쉽게 건널 수 있을 것은 느낌에서일까요. 내려가는 길은 쉽고 여유롭습니다.

 

출렁다리 내려오는 길

산비탈에 핀 들꽃이 유난히 눈이 들어옵니다. 산비탈에 핀 꽃은 위태로워 보일 수도 있지만 산그늘의 보호를 받으며 노란 자태를 숨긴 듯, 뽐내고 있습니다.

 

산기슭에 핀 꽃

존재의 가치란 누가 인정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자신이 있는 곳에 충실하게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습니다. 트라우마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이든, 무슨 이유에서든 자존감이 떨어진 사람이든, 장애가 있든, 외모나 학벌이나 직업 따위와 상관없이 자기가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서 자기 삶을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낼 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내면의 상처나 인간관계의 아픔이 있다면 최대한 풀고 치유하면서 인생을 보다 밝고 긍정적으로 바꾸어 나아가야 하겠지요. 다만 이런 상처나 아픔을 풀어갈 때 지나칠 정도로 몰입하는 것은 문제를 더 키우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문제를 인식하되 그것과 싸워서 이겨내겠다고 다짐하는 것보다 살짝 비켜서서 인생, 뭐 있어, 놀면서 즐기자, 하는 식으로 문제와 정면충돌하기보다는 상처와 아픔을 기쁨과 행복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신분석학자라면 문제를 정면으로 주시하지 않고 회피하고 쉽게 봉합해 버린다고 질타할지도 모르지만 인생의 문제란 수학문제 풀기도, 스포츠 경기도 아닙니다. 반드시 답을 내야하는 시험도, 싸워서 승리의 메달로 따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인생이 더 잘 살았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인생이란 각자 삶이라는 과정을 거쳐 죽음으로 가는 여정입니다. 처음에 태어날 때 알몸으로 태어나듯 죽음을 맞이할 때도 그러할 것입니다. 성공이냐 실패냐가 인생을 결론지을 수 없고, 많은 업적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상처를 잊지 못해 계속 아파하지 않고, 서로 사랑하면서 기쁨과 행복을 주고받으며 살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나은 삶이 있을까요. 가장 실패한 인생은 오히려 사랑하지 못하고 행복을 나눌 수 없는 사람으로 살다가 죽는 것 아닐까요.

 

내면의 상처와 아픔이 큰 사람이 인생에서 어려운 것은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상처와 아픔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기 때문이지요.

 

출렁다리 위에서 생각해봅니다. 너무 높아서 너무 멀어서 너무 위험해서 갈 수 없었던 다른 산의 꼭대기를 다리를 놓으니까 쉽게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에도 많은 난관들이 있지만 가장 먼저, 가장 중요하게 할 게 있습니다. 그것은 다리를 놓겠다고 누군가 처음 생각했듯이 인생의 다리를 놓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올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고 다리 하나를 그려놓는 것입니다.

 

자끄 프레베르는 새를 그리려면 먼저 새장을 놓고 새를 기다려야 한다고 썼습니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 문제를 극복해보겠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문제를 함께 나누는 것이 더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사람 사이의 사랑의 관계는 문제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그 자체로 행복한 것입니다. 설령 문제가 있더라도 사랑은 그 문제를 덮을 것입니다. 어려운 시기가 오면 그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도 있지만 행복했던 기억들 또한 남아 있으니까요. 그 행복한 기억이 상처와 아픔을 견디게 도와줄 것입니다.

 

알베르 카뮈의 작품 <이방인>에 나오는 주인공 뫼르소는 살인죄로 수감되어 사형선고를 기다리면서도 추억이 있다면 지긋지긋한 감방생활도 견딜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기억을 많이 만드는 것이 지난날의 상처와 아픔을 견딜 수 있게 만들 뿐만 아니라 미래에 생길 수많은 어려움도 이겨낼 힘을 충전시켜 줄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많이 놀아야 합니다. 어디든 가고, 언제든 만나고, 밤낮으로 쏘다니고, 사랑의 세레나데를 시도 때도 없이 부르고 춤추면서, 사랑을, 인생을, 지금 이 순간을 즐겨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의 병은 자기 맘대로 놀지 못해서 생기기도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놀 때 상처와 아픔은 바람에 날려갈 것입니다.

 

출렁다리를 내려와서 무엇을 먹을까 하면서 주변을 돌아봅니다. 강변에는 들꽃이 피었고, 야외 식탁도 있습니다. 멋있게 보이지만, 코로나19 때문인지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습니다.

 

강변의 식탁

좀 거리가 있지만 재미난 식당이 있어서 가보기로 했습니다. 고르곤졸라 피자를 애피타이저로 내는 닭갈비집입니다. 피자로 입맛을 돋우고 살코기 닭을 즐기고 계란을 듬뿍 넣은 볶음밥으로 배를 채우는 코스입니다. 계산할 때는 입장권을 사고 돌려받았던 지역화폐를 내니까 할인 받을 수 있어서 좋았고요.

 

바삭하고 고소한 고르곤졸라 피자
깻잎과 김에 날치알과 마요네즈를 넣어 싸먹는 닭갈비

돌아오는 길에서는 길병민의 <Parlami d'amore Mariù>를 듣습니다.

“오늘 내가 당신 곁에 있는데 왜 한숨을 내쉬나요, 걱정하지 말아요, 사랑한다 말해주세요, 마리우…”

 

길병민 Parlami d'amore Mariù

노래 가사가 상처와 아픔이 있지만 서로에게 인생의 트라우마를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되어 주는 김수현과 서예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달콤한 이 노랫말처럼 두 사람의 사랑이 행복한 결말을 맺기를 바라면서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소금산 출렁다리에서 사진을 찍으며 행복한 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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