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지만 괜찮아> 김수현과 서예지가 보여준 ‘가족’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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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일상생활

<사이코지만 괜찮아> 김수현과 서예지가 보여준 ‘가족’의 역설

by 브린니 2020. 7. 30.

기괴하고 아름다운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여러 가지 다양한 매력을 요란하지 않게 잔잔히 풍겨냅니다.

 

우선 김수현과 서예지의 멋지고 아름다운 외모는 그저 보고만 있어도 재미있는데다가 과하지 않으면서 맛깔진 연기력이 시청자로 하여금 자연스레 빠져들게 합니다. 김수현의 형으로 나오는 오정세의 자폐 연기 또한 애틋하고 코믹해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입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가족사진을 찍은 김수현, 서예지, 오정세

 

그러나 그보다 더 이 드라마를 기억하게 하는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주인공들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내러티브의 힘입니다.

 

김수현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자폐증이 있는 형을 돌보아야 하는 사명을 띤 것처럼 어머니로부터 보호자의 역할을 강요받았고, 서예지는 추리소설 작가인 어머니가 살인을 저질러 아버지가 어머니를 괴물이라고 부르며 죽이고 그 딸인 서예지마저 괴물이라고 낙인을 찍은 가족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트라우마는 드라마 초반부터 무겁게 삶을 짓누르고 존재를 규정하고 그 안에 갇혀 살 수밖에 없게 하는 힘으로 드러났습니다. 두 사람에게 ‘가족’이란 벗어날 수 없는 감옥과 같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짐에 따라 김수현은 억눌린 자아를 서예지를 통해 찾아가게 되고, 서예지는 마구 돌출하는 인격장애와 어머니에 대한 공포를 김수현을 통해 다스려가는 과정으로 드라마가 전개되었습니다.

 

드라마는 이제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또 다른 전개를 펼치고 있습니다. 서예지의 어머니가 죽인 사람이 바로 김수현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김수현의 형인 오정세가 목격했고, 그 기억을 되살려 말함으로써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드라마는 이 부분의 소제목을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김수현의 입장에서는 어머니를 죽인 원수의 딸이 서예지인 것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가문은 서로 원수지간이었고, 두 젊은이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 결국 둘 다 죽었습니다. 이처럼 가문, 가족의 문제가 김수현과 서예지에게도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합니다.

 

김수현과 서예지 사이에는 형인 오정세가 있었고, 김수현이 첫 번째로 사랑해야 하는 사람은 늘 가족인 오정세였습니다. 지금까지 자폐 형을 보호하는데 모든 인생을 바치도록 강요되었던 김수현에게 그 틀을 깨고 서예지를 사랑하는 데는 엄청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형의 수준에 맞추어 둘리 만화에서 고길동이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까지 이야기했고, 진짜 가족이란 피를 나누었다고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임을 이해하고 오정세도 서예지를 받아들였습니다.

 

이 과정 또한 ‘가족’은 혈연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라는 틀을 깨고 ‘가족’의 의미를 확장시키는 과정이었기에 고통이 따랐습니다. 김수현은 서예지에게 도저히 안 되겠다는 이별의 메시지를 주어 서로 상처를 주고받기도 했고, 형인 오정세에게 제발 형 노릇 좀 하라며 치고받고 싸우기도 했습니다.

 

서예지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돌아서는 김수현

 

그 분투의 과정 속에서 가족은 혈연으로 이어진 것이라는 딱딱한 껍질을 깨고 나와 서로가 서로를 마주 바라보며 행복하게 가족으로 인정하는 사이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 앞에 또 하나의 장벽이 나타났습니다. ‘가족의 원수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앞서 가족은 혈연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선입견에 이어 이 역시 매우 고전적인 주제입니다.

 

과거 많은 소설과 영화와 드라마는 이 구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렇고, 수많은 무협영화는 대부분 부모의 원수를 갚는 것이며, 지금도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가족 중 한 사람을 건드리면 성난 주인공이 액션 히어로가 되곤 합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 드라마가 가족주의의 틀 안에 계속 머문다면 김수현과 서예지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가족주의의 틀을 깬다면, 가족에 대한 새로운 비전과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단초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우선 그들이 가진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먼저 가족의 감옥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김수현이 오정세와의 관계에서 지워진 짐을 벗어던지기 위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코피가 터지고 손톱자국이 생기도록 형과 치고받고 싸운 것부터 기존 가족주의의 질서를 깨뜨린 것입니다.

 

형을 때리는 김수현

 

두 사람이 싸우기 직전 오정세는 감히 동생이 형한테 소리치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무리 동생의 희생적인 보호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자폐 형이라고 해도 동생이 감히 형에게 소리칠 수 없다는 가족의 질서를 알고 있었으며, 그 질서를 동생 앞에 당당하게 강요합니다. 김수현이 말했듯 형답게 군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형이라는 사실 하나로 당당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가족’이 가진 질서의 힘인 것입니다.

 

그 힘 앞에서 늘 져야 했던 김수현이 그 힘에 맞서 싸운 것은 기존 가족의 질서를 깨뜨리는 행위였습니다. 그 행위 덕분에 김수현은 코피를 흘리면서도 매우 행복하게 웃었습니다. 비로소 자유를 누렸기 때문입니다.

 

형과 싸우고 행복한 김수현

 

역설적인 것은 이 사건 이후에 형 오정세는 동생이 그 자유를 행복해 한다는 것을 알고 비로소 자신의 형 역할을 찾아간 것입니다. 오정세는 모아둔 돈을 털어 동생에게 밥을 사주고 용돈을 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더 필요하면 형이 또 주겠다고 말합니다.

 

반면 서예지는 산산이 해체된 가족 덕분에 고아가 된 것과 다름이 없어 같이 밥을 먹을 이조차 없습니다. 이에 오정세의 팔을 붙들고 나도 오빠 같은 오빠를 갖고 싶다고 외칩니다.

 

오정세의 팔을 붙드는 서예지

 

오정세는 돌아서는 듯하지만 곧 서예지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작가님'아니라 '고문영'이라는 이름을 불러줍니다. 서예지는 오정세의 돌아서 가는 뒷모습에 실망한 듯 애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름을 불러주자 바로 환한 웃음을 짓습니다. 그 차갑고 외로운 얼굴에 이렇듯 청순하고 사랑스럽고 애틋한 표정이 숨어 있었다는 것이 참 안타까워 다행이라 여겨집니다.

 

오정세의 부름에 환한 미소를 짓는 서예지

 

잘못된 가족주의의 굴레에서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가는 가족의 모습을 봅니다. 새롭게 형성된 가족의 질서는 혈연 중심의 폐쇄성을 깨고 서예지를 받아들입니다. 비로소 가족이 된 세 사람은 행복한 나날을 만들어 갑니다.

 

이제 새로운 가족으로서 단결된 세 사람은 '가족의 원수'라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을 만나 또 어떻게 새로운 해결책을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 어머니도 이 땅에 없고, 가혹하게 죽인 살인자 어머니도 이 땅에 없는데, 그 자녀인 두 젊은이가, 없는 두 어머니 때문에 서로를 포기하게 될지 궁금합니다. 그 사이에서 형 오정세는 또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요?

 

두 어머니는 죽고 없지만, 두 청춘 남녀는 버젓이 살아 서로를 바라보고 깊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죽은 두 어머니의 힘은 살아 있는 두 사람의 삶에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강요된 희생이라는 ‘가족주의’의 굴레를 깨고 나온 세 사람이 이루어낸 아름다운 ‘새 가족’은, ‘원수지간은 용납될 수 없다’는 기존 가족주의의 굴레를 또 어떻게 깨고 나올까요?

 

만약 그들이 그 틀을 깨고 나온다면 새롭게 꿈꿀 수 있는 가족의 패러다임이란 무엇일까요? 자못 흥미로운 볼거리를 기대하며 주말을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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