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 선생님, 바다 보러 가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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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일상생활

삼봉 선생님, 바다 보러 가실래요?

by 브린니 2020. 7. 19.

삼봉해수욕장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창기리

 

 

 

가끔 사람들은 “바다 보러 갈까?” 하고 말을 툭 꺼내곤 합니다. 전혀 바다를 보러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물론 주말 어느 날 오후에 비는 시간이 생겨서 어디 갈까 고민하다 이런 말들을 나누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바다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만 할 뿐 바다 보러 가자고 입 밖으로 말을 내뱉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바다는 언제나 조금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요.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그렇지만 바다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바다까지 가기엔 마음의 거리가 좀 느껴집니다. 어쩌면 바다는 좀 멀리 떨어져 있어야 제 맛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당장 바다를 보러 갈 수 없는데도 바다나 보러 갈까, 하면서 바다를 떠올리는 것이겠지요. 바다를 떠올리기만 해도 왠지 마음이 힐링된다고나 할까요.

 

상상만 하던 바다를 정말 눈으로 보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상상해오던 바다와 같을까요? 아니면 전혀 다른 바다를 만나게 될까요?

 

누보로망의 선두주자인 프랑스의 소설가 알랭 로브그리예는 <누보로망을 위하여>란 책에서 자신이 상상한 바다와 현실에서 만난 바다는 매우 다르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상상한 바다가 실제 바다와 더 가깝고 현실의 바다는 ‘바다’에 못 미친다고 투덜거렸습니다.

 

누보로망은 작가의 머릿속에 카메라가 한 대(혹은 여러 대) 돌아가고 있기에 사물을 아주 정확하고 세밀하게 그려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작가가 상상한 바다는 바다라는 개념에 아주 충실한 바다 그 자체에 닿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만나는 바다는 어딘가 한 가지씩 부족할 수 있습니다. A바다는 해변이 아름답지만 파도가 별로 없거나, B바다는 파도가 높고 포말이 부서지는 장면이 멋지지만 해변의 모래가 거칠고 돌짝밭이 대부분이라면 썩 만족스럽지 않겠죠.

 

하지만 상상의 카메라가 아무리 멋져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람 부는 해변을 상상할 수 있지만 그 바람을 맞을 수는 없습니다. 바다의 냄새를 상상할 수 있지만 맡을 수는 없습니다. 파도의 끝자락을 발로 막을 수도 손으로 물을 떠올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다로 달려갑니다. 그리워하던 바다를 눈으로 확인하고 피부로 맞대보면서 상상할 때는  느낄 수 없었던 다른 감각을 즐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기분과 감정으로,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사람과 바다를 보러 갈까요? 갑자기, 느닷없이, 문득, 바다를 보러가고 싶다는 충동에 이끌려 무작정 바다를 보러 차를 몰고 나서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꼼꼼히 준비를 하고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바다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울적해서, 스트레스 받아서, 슬퍼서 등의 이유로 떠나기도 하고, 기쁘고 즐거운 일이 생겨서, 혹은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 각오를 다지기 위해 떠나기로 합니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아름다운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 떠나기도 하고, 결혼기념일이거나 생일을 축하하려고 바다로 향하기도 합니다.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하기도 하지만 혼자 조용히 바다를 보러 가기도 합니다. 혼자서만 바라보는 바다는 어떨까요?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 모르지만 바다를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그냥 바다면 그만이기에 어느 바다인지 장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설가 알랭 로브그리예처럼 투덜거리지 않으려면 바다도 보기 좋고, 해변도 그럴싸하고, 주변 환경도 좋으면 금상첨화겠지요. 가볍게 다녀오려면 너무 멀지 않으면 더 좋고요. 하지만 바다가 너무 가까워도 좀 그래요. 어디 갔다 왔다고 생색내려면 가는 길도 좀 길어야……

 

삼봉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오후에 출발해서 저녁노을을 보고 돌아오기에 적당한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한 번 갔었는데 기억이 좋았고, 거기 전기자동차 충전소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바다에 들어가 수영을 하지 않을 바에야 어디나 상관없습니다. “바다를 보러” 가는 것이니까요.

 

바다를 보러 가면서 도로 양옆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보는 것은 바다 구경 못지않은 기쁨을 줍니다. 봄엔 벚꽃 터널을 지나고, 여름엔 초록 나무들과 초록 논을 봅니다. 가을에는 낙엽 떨어지는 광경에 마음도 흔들리고, 겨울엔 눈을 뒤집어쓴 산과 들, 눈꽃을 피운 나무들을 만납니다.

 

자동차 안에서 함께한 사람들과 도시에서는 하지 못했던,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소곤소곤, 진지하게, 나눌 수도 있고요. 대화의 내용에 따라 감정이 북받치기도 하고, 감정이 차분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다를 보게 되면 북받친 감정은 가라앉고, 차분한 감정은 다소 들뜨게 되지요. 자, 이제 바다를 볼 시간입니다.

 

삼봉해수욕장 저녁노을

 

어떤가요?

 

삼봉의 바다는 딱! 바다입니다. 파도가 몇 초 간격으로 해변으로 밀려들고, 모래는 파도를 맞고 더 고분고분해집니다. 파도가 옮겨놓은 조개껍데기가 잘게 부서져 긴 띠를 이루며 해변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갈매기들이 가까이 왔다가 멀리 날아갑니다. 해변 가까이, 바다 속에서 바위들이 어른 키보다 높이 솟아 있습니다.

 

3개의 바위 봉우리 때문에 삼봉이라고 불린다지요. 누군가는 정도전이 이곳에 왔었나보다고 말합니다. 그의 호가 삼봉이니까요. 삼봉 정도전이 보았더라도 여기 바다를 무척 좋아했을 겁니다. 삼봉의 바다는 말할 수 없이 예쁘니까요.

 

삼봉 해변 썰물 때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있으면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파도는 계속해서 해변으로 밀려듭니다. 그리고 다시 바다로 물러납니다. 파도는 바다의 호흡인가 봅니다. 숨을 길게 내쉬었다가 다시 깊게 빨아들입니다. 파도치기를 쉬는 바다는 없습니다. 바다는 잠시도 쉬지 않고, 파도를 내보내고 거둬들이면서 바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만큼 바다는 큰 숨을 내쉬면서 바다 속에 수많은 생명체들을 품고 있습니다. 고래가 아무리 큰 숨을 내뿜는다고 한들 하지만 바다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폭풍우 칠 때 바다를 보십시오. 정말 산만 한 파도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떨어집니다. 아, 태풍이 몰려 올 때의 바다는 말할 수 없이 큰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해변의 묘지가 있는 삼봉 오른편 바위 언덕

 

해변을 한참 걸어가다 보면 오른편 끝에 바위 언덕이 있습니다. 바위 언덕 꼭대기엔 평평한 땅이 있는데 거기 무덤이 하나 있습니다. 처음 본 사람들은 저 위에 있는 게 묘지가 맞아? 하고 궁금해 합니다. 더불어 혹시 삼봉의 묘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꼭 있습니다. 여긴 3개의 바위 봉우리 때문에 삼봉이라고 부른다니까요. 크크크.

 

아무튼 바위를 기어 올라가 무덤을 확인합니다. 과연 누군가의 묘지가 바다를 바라보고 떡 하니 자리잡고 있습니다. 문무왕릉처럼 바다에 수장한 것은 아니지만 파도치는 바위 위에 묘지라니요. 정말 대단합니다. 한편으로 여기도 사유지인가? 궁금해졌습니다. 여기가 국립공원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곳에도 묘지가 있을 정도로 누군가의 소유라는 게 좀 의아했습니다. 아무튼 무덤으로는 정말 기막힌 장소가 아닙니까? 해변의 묘지라니!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가 생각납니다.* 몇 구절만 옮겨 보면……

 

바다를, 쉼 없이 되살아나는 바다를!

 

나는 이 빛나는 공간에 몸을 내맡기니,

죽은 자들의 집 위로 내 그림자가 지나간다

 

충실한 바다가 여기 내 무덤들 위에 잠잔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폴 발레리의 시 마지막 부분의 싯귀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우리나라 시인의 시에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하고 반전을 이루며 두 번 반복되어 인용됨으로써 화제를 낳기도 했지요.*

 

아무튼 폴 발레리는 묘지를 노래하는 시에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라고 말하면서 죽음보다는 생명에 애착을 보입니다.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지만 현실에서 부대끼는 목숨, 즉 생명에 대해 더 강한 애착을 보이는 것은 비단 시인뿐이겠습니까.

 

해변에 서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 있으면 강한 생명에의 충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높은 곳에서 출렁이는 파도를 오래 보고 있으면 뛰어들고 싶은 자살충동을 느낄 수 있다는 말도 있지만요. 하지만 안심하세요. 삼봉 바다는 미친 듯이 출렁이는 파도도 없고, 높은 전망대도 없어서 바다를 내려다 볼 일은 없으니까요.

 

해변의 묘지까지 구경하고 나면 모래사장 위쪽으로 난 해솔길을 걷고 싶어집니다. 바람을 막아주는 해송이 해변을 따라 길게 뻗어 있습니다. 곧게 자란 소나무들 사이로 작은 오솔길이 나 있는데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바다를 구경하면서 동시에 숲을 걸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무들 사이로 깔린 모래와 자갈들을 밟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시간이 바람처럼 빠르게 지나갑니다.

 

삼봉 해변 소나무 숲길

 

멀리 꽃지해수욕장 입구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오면 해는 이미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뒤입니다. 돌아갈 시간입니다. 해변에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고, 어둠을 밝히는 키 큰 등이 켜지고 있습니다. 늦은 저녁을 먹고 도시를 향해 출발해야 합니다.

 

해변을 벗어나 주차장으로 돌아와 전기충전소에서 차를 찾습니다. 삼봉해수욕장 주차장에는 태안의 다른 해수욕장에 없는 전기자동차 충전기가 두 대 있습니다. 충전은 전기자동차 운전자에게 발급되는 회원카드를 체크하거나 회원번호를 입력해야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엔 카드를 가지고 오지 않아 매우 곤란을 겪었습니다. 신용카드만으로도 충전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신용카드 충전이 안 되는 충전소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전기차 운전자들은 회원카드를 반드시 지참하고 여행을 해야겠지요. 휴대전화에 회원번호를 입력해 두거나 회원카드를 찍어서 저장해두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이지요.

 

삼봉해수욕장 주차장 전기자동차 충전소

 

충전소 앞쪽 해수욕장 입구에는 카페가 하나 있는데 이름이 ‘사색의 길’이랍니다. 아마도 해변의 모래사장이나 해솔길을 걸으며 생각에 잠기라는 뜻이겠지요. 카페 사색의 길에서는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앉아 사색의 길에서 떠올린 생각들을 몇 줄 글로 써보는 것도 좋겠지요. 사색에 사색을 더하다?

 

 

카페 사색의 길

 

늦은 저녁으로는 연포탕, 낚지볶음, 갈치조림, 황태해장국, 해물칼국수 등이 어떨까요? 바다와 조금 떨어진 곳에 이런 음식들을 먹을 수 있는 식당들이 있습니다. 바닷가에서 먹는 식사는 무엇을 먹든 두 배로 입맛을 돋우지요.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는 조용히 시트에 기대 음악을 듣습니다. 최근 팬텀싱어3에서 관심을 모은 길병민과 레떼아모르가 부른 'Oceano'가 울려퍼집니다. 웅장하고 클래식한, 품격 높은 블렌딩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두 번쯤 반복해서 들은 뒤에 Scorpions의 'Holiday'와 'Wind of Change'를 듣습니다. 강렬하지만 부드럽고 달콤하기까지 한 사운드는 해변을 거닐며 바닷바람을 맞는 듯한 느낌입니다. 특히 싱어의 휘파람 소리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닮았습니다. 해변의 무덤가에서 얕은 잠에 빠져드는 듯한 기분을 만끽하며 도시를 향해 돌아갑니다.

 

바다를 보고 돌아온 날 밤, 혹은 다음날 아침 인생은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요?

 

 

 

* 알랭 로브그리예 Alain Robbe-Grillet 소설가, 영화감독 (프랑스, 1922-2008)

 

* 폴 발레리 Ambroise Paul Toussaint Jules Valery 시인 (프랑스, 1871-1945)

 

* 남진우, 로트레아몽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 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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