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병민 콩쿠르 참가곡 <알레코의 독백,캠프 모두가 잠들었네> <그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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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일상생활

길병민 콩쿠르 참가곡 <알레코의 독백,캠프 모두가 잠들었네> <그 저녁>

by 브린니 2020. 8. 6.

노래는 모두 이야기라고 하지만, 담긴 이야기의 깊이와 넓이에는 차이가 있는 같습니다. 최근 팬텀싱어3 통해 존재감을 널리 알린 베이스-바리톤 길병민의 노래를 들으면서 노래에 이렇게 복잡하고 아름다운 서사가 담길 있구나 싶어 감탄합니다.

 

길병민이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 오디션을 지휘자가 평가하기를 “complicate(복잡하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을 담아 예측 불가능한 표현을 하기에 그의 노래에 관객이 빨려들 수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오페라의 원작 소설을 읽고 시대의 역사 공부도 하면서 캐릭터에 대해서 깊이 공부한다는 그는 곡의 노래에도 복잡한 서사를 담아내기에 언어를 알지 못하는 이들도 묘한 감정에 빠져 한참을 집중하여 듣게 됩니다.

 

노래에 담긴 서사를 따라 다이내믹하게 감정을 표현하며 표정과 손짓과 목소리로 연기하는 그에게 수많은 국제 콩쿠르 대회는 우승의 영광을 안겼습니다.

 

중에서 요즘 유독 <캠프 모두가 잠들었네> < 저녁>이라는 곡의 노래가 마치 곡처럼 서로를 잡아당기며 마음을 끌기에 어떤 노래인지 알아보았습니다.

 

번째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오페라 <알레코>에서 주인공 알레코의 독백으로 1 OPERA CROWN에서 길병민에게 우승 트로피를 안긴 곡입니다.

 

<알레코> 라흐마니노프가 19 모스크바 음악원을 마치기 위해서 작곡한 졸업작품으로 최우수상을 받았을 뿐아니라 차이코프스키로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아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했다고 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푸쉬킨의 시집 <집시> 바탕으로 오페라를 작곡했습니다.

 

줄거리는 19세기 러시아의 귀족인 알레코(Aleko) 형식적이고 답답한 귀족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자유를 찾아 집시들과 함께 방랑생활을 하면서 아름다운 집시 여인 젬피라(Zemfira) 사랑하지만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비극으로 끝난다는 내용입니다.

 

사람 사이에는 아이도 생겼고 겉으로는 행복한 같지만, 정식으로 결혼한 것도 아니었고 신분 차이도 커서 귀족인 알레코가 언제까지나 집시들과 함께 살아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젬피라의 아버지는 알레코에게 이상 집착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간청합니다.

 

젬피라도 알레코와의 사랑이 영원할 없다는 것을 점차 실감하고 알레코를 멀리 하게 됩니다. 한편 집시 중에는 젬피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청년이 있었는데 알레코는 젬피라의 마음도 자신에게서 멀어져 젊은 집시 청년에게로 변심했다고 생각하고 질투에 불타 집시 청년을 살해합니다.

 

집시들은 알레코를 법정에 세우기를 원치 않았기에, 알레코가 자기들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며 집시마을에서 쫓아냅니다.

 

길병민이 노래한 알레코의 독백은 젬피라의 마음이 변했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장면입니다. 집시 캠프의 모든 사람들은 잠들었는데, 혼자서 잠들지 못하고 깨어 괴로워하며 젬피라를 사랑했던 순간들을 추억하고, 젬피라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돌아보며 변해버린 그녀를 원망하는 마음의 고통이 담겨 있습니다.

 

 

모두 잠들어 있는데 (캠프 모두가 잠들었네)

 

사람들은 모두 잠이 들었네

달은 높이 떠 한밤의 아름다움으로 환하게 빛나네

그런데 왜 내 마음은 초라하게 떨고 있나?

무슨 슬픔이 나를 괴롭히고 있나?

아무 걱정도 회한도 없이

이 방랑자의 시간을 난 잘 보내고 있는데

세련된 교양의 족쇄를 벗어던지고

난 있는 그대로 자유로운데

난 믿을 수 없는 맹목적 운명의 힘 같은 건 인정하지 않고 살아왔지

그런데 신이여, 어찌 정념이 내 영혼을 순종하게 만들어버렸는지요

젬피라!

그녀가 날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녀가 얼마나 다정하게 내게 기대어

고적한 침묵 속에서 시간 보내는 걸 좋아했는지!

얼마나 사랑스러운 재잘거림과 숨 막히는 키스로

그녀는 내 우울한 기분을 단숨에 내몰아버리곤 했는지!

난 기억해. 더할 수 없는 기쁨과 열정으로 그녀가 내게 속삭였던 말을

난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 뜻대로 하세요.

난 영원히 당신 거예요. 알레코!

그때 난 모든 걸 잊고 말았지

그녀의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래서 난 미친 듯 키스했지

그녀의 매혹적인 두 눈에

밤보다 더 까만 그녀의 땋은 머리에

그녀의 입술에

그녀는 행복감과 열정에 사로잡혀

내게 기대어 내 눈을 쳐다봤지

그런데 지금은?

그런데 지금은?

젬피라는 날 버렸어

젬피라는 변했어!

젬피라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버리고 말았어!

 

 

노래는 담담하고 조용한 밤의 분위기로 시작됩니다. 길병민은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에 혼자 초라하게 떨며 괴로워하는 감정으로 손을 가슴에 갖다대며 쓸쓸히 고개를 떨굽니다.

 

그러나 자신이 얼마나 당당하게 교양의 족쇄를 벗어버리고 자유를 찾아 떠났는지 돌아보면서 신분의 사슬이라는 운명의 따윈 비웃었던 강하고 담대한 태도로 어깨를 펴고 노래합니다.

 

하지만 당당함은 사랑의 정념에 무릎을 꿇습니다. 이때 그는 신이여! 라고 탄식하면서 자신의 고통의 원인이면서 자신을 더없이 행복하게 했던 사랑의 추억을 떠올리며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젬피라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했는지, 사랑스러운 재잘거림과 숨막히는 키스로 자신의 우울이 단숨에 날아가버리던 마법과도 같은 행복의 순간들을 기억합니다. 나는 영원히 당신 것이라는 젬피라의 속삭임의 순간을 노래할 , 그는 황홀한 기쁨의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그때 모든 잊고 미친 키스했다며 그녀의 매혹적인 눈과 검은 머리와 입술을 추억합니다.

 

 

 

하지만 순간의 행복은 지금의 고통과 대비되어 격렬한 감정을 일으키고 다시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그런데 지금은?”이라고 격정적으로 내뱉은 , 잠시 다시 한번 차갑고 냉정하게그런데 지금은?”이라고 나직하게 중얼거립니다.

 

 

그러곤 조용히젬피라는 버렸어라고 중얼거리듯 이야기하다가 분노와 절망의 감정이 솟구쳐 다시 절망적으로젬피라는 변했어라며 마음으로 절규합니다. 마지막 소절인젬피라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버리고 말았어!”라는 부분은 냉정한 현실 인식과 절망의 격분이 뒤섞여 너무 아픈데도 소리치지 않고 무너질 같은데도 강함을 잃지 않습니다.

 

 

 

절망은 질투와 분노에 뒤섞여 살인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지겠지요.

 

 

곡의 노래에 담긴 사랑의 희열과 황홀했던 추억, 당당했으나 초라해져버린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 영원하리라 믿었던 이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 그로 인한 절망과 고통, 그러나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남자의 의지가 역동적으로 순간순간 다양한 표정과 목소리로 표현되며 다채롭고 복잡하게 이야기를 구성합니다.

 

그래서 곡의 노래를 듣고 있자면 편의 소설이, 편의 영화가 주는 감동이 느껴집니다. 감상은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www.youtube.com/watch?v=qqkHQiyPMJc

 

최근 그의 리사이틀 공연에서 연주한 영상도 함께 감상할 수 있습니다.

www.youtube.com/watch?v=xJZH_DQDex0

 

번째 노래는 2019 미리암 헬린 국제 성악콩쿨 준결승 참가곡으로 핀란드의 작곡가 이료 킬피넨의 가곡 < 저녁illalla>입니다.

 

이료 킬피넨(Yrjö Kilpinen) 핀란드에서는 시벨리우스 이후에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작곡가로 헬싱키에서 태어나 비엔나로 이주하여 베를린에서 공부했으며, 스칸디나비아와 중부 유럽을 광범위하게 여행하면서 700 곡의 가곡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멜로디의 < 저녁> 북유럽 특유의 차고 쓸쓸한 바람이 부는 광활한 들판에 가득 히스꽃을 상상하게 되는 곡입니다.

 

 

그 저녁

 

그 저녁 난 히스꽃 한묶음 따며 꽃밭 따라 걷고 있었어요

밤은 아름다웠고 공기는 고요했죠

꽃들은 모두 향기로웠고 뻐꾸기들 늦도록 울었죠

무엇이 내 마음을 어둡게 만들었을까요?

흘러가버린 젊은날의 추억

나는 손에 들고 있는 꽃들을 내려다봤어요

그녀의 향긋하고 무성한 머리칼 생각났죠

나는 아름다운 히스꽃 땅에 던졌죠

그곳에 나의 기쁨을 묻어버리듯이

 

 

히스꽃의 꽃말은고독입니다. 추운 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강인함을 가진 꽃은 특히 묘지에 많이 심는다고 합니다.

 

히스꽃을 떠올리면 언제나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 생각납니다. 황량한 폭풍의 언덕에는 언제나 히스꽃이 만발합니다. 매서운 폭풍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숲속이나 들판이나 묘지나 어디서나 강인하게 자라는 히스꽃이 주인공 히스클리프의 격정적인 사랑을 표현합니다.

 

앞서 살펴본 라프마니노프의 <알레코>에서는 주인공 알레코가 귀족이고, 상대 여인 젬피라가 집시였다면, <폭풍의 언덕>에서는 히스클리프가 주워온 아이이고, 상대 여인 캐서린이 주인집 딸입니다.

 

캐서린은 마치 히스클리프의 영혼과 자신의 영혼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만큼 그를 사랑하지만 신분의 차이를 넘어서지 못하고 이웃 귀족의 아들과 결혼합니다. 히스클리프는 멀리 떠나 후에 부자가 되어 돌아와 복수하듯이 귀족 아들의 누이동생을 유혹해 결혼하지만, 결코 캐서린에 대한 사랑을 놓지 못합니다.

 

캐서린은 아이를 낳다가 죽지만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끝나지 않습니다. 다시는 캐서린을 없다는 고통에 괴로워하다가 캐서린의 묘를 파헤쳐 시신을 끌어안고 울부짖기도 합니다. 사랑했던 연인은 젊은 날의 추억으로 흘러가버렸지만 여전히 들판에 히스꽃은 만발합니다.

 

길병민은 마치 히스꽃을 묶음 밤의 신사처럼 고요하고 부드럽게 노래를 시작합니다. 고요한 공기 속에서 향기를 맡고 새소리를 듣지만, 속에는 아련한 슬픔의 분위기가 감돕니다.

 

 

슬픔은 마음의 어둠으로 깊어지고, 어둠 속을 더듬어 돌아올 없는 젊은 날의 추억에 잠겨 꽃을 내려다봅니다. 손에 꽃은 사라져간 여인의 향긋하고 무성한 머리칼을 떠올리게 , 여인과 함께했던 기쁨은 다시는 돌아올 없는 것입니다.

 

 

슬픔은 절망이 되고 절망은 아름다운 히스꽃을 땅에 던져버리는 행위로 표현됩니다. 기쁨을 묻어버린 신사의 가슴은 서늘하게 비어버립니다. 고요하고 부드럽게 풀어낸 성숙한 슬픔의 노랫자락이 더욱 듣는 이의 마음을 아련하게 합니다.

 

노래는 여러 나라에서 남성, 여성 없이 많은 사람들이 불렀지만, 이처럼 간절하고도 서늘하게 시적으로 감정을 표현한 경우는 드뭅니다.

 

감상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www.youtube.com/watch?v=933S9iloJ1E

 

감정이 원초적으로 분출되면 시가 되지 못합니다. 소설은 울부짖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지만 시는 언제나 서늘한 거리두기를 합니다. 거리가 어떤 이에게는 깊이가 되고 어떤 이에게는 방어막이 되기도 하지만 길병민에게는 우아하고 성숙한 감정의 표현이 됩니다.

 

감정을 격정적으로도 서늘하게도 냉정하게도 황홀하게도 표현하는 힘은 괴테에 의하면감각이 이미 활짝 열려 있어서 민감해진 만큼 어떤 인상을 빨리 받아들이는데서 나옵니다.

 

길병민이 어떤 작품을 만들어내는 있어서 감정의 표현이 다양하고 다채롭다면, 그렇게 하기 위해서 오랜 동안 감각을 활짝 여는 훈련을 해온 것입니다. 감각이 활짝 열려 있는 사람은 어떤 인상을 빨리 받아들여 느낌을 표현하는 방식 또한 빠르고 다양하고 커지게 됩니다.

 

길병민이 팬텀싱어3 나타나 회차를 거듭하는 동안 보여준 다양한 감정 표현이 종종 여러 사람들에게 회자되곤 합니다.

 

남자가 엉엉 우는 모습을 여러 보여 어떤 이들은 순수하다 했지만 어떤 이들은 남자답지 못하다고 했고, 그렇게 때는 언제고 금방 성량 좋은 흉성의 웃음소리를 대포처럼 쏟아내기도 했으며, 어린 참가자의 기특한 노래를 들을 때는 아빠 미소로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고, 경쟁 참가자의 의외의 모습을 때는 동그란 눈을 갑자기 활짝 크게 뜨고 입을 벌리는 , 순간적으로 발산되는 다양한 표정이 카메라에 많이 잡혔습니다.

 

한국 남자들은 사회적으로 여러 방향에서 감정 표현을 조금은 억누르도록 교육받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길병민에게 그렇게 다양한 감정 표현이 일상이 것은 감각을 활짝 열어 노래를 표현하기 위해 애써온 수련의 과정에서 생겨난 민감성 때문인 같습니다.

 

자체가 모든 감정에 활짝 열린 악기로 존재하는 길병민이기에 그의 노래에 인생의 환희와 절망과 배신과 모험과 자유와 사랑과, 심지어 살의가 담긴 분노와 모든 감정에서 한발짝 떨어져 비울 있는 우아한 성숙함까지 족히 담아지는 같습니다.

 

힙합과 아이돌 댄스음악, 트로트로 가득한 대중음악계에 크로스오버라는 신선한 장르로 다가온 길병민과 그의 레떼아모르가 깊고 풍부한 서사를 담은 노래를 많이 불러주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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