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김소월 <개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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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김소월 <개여울>

by 브린니 2020. 9. 3.

개여울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 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김소월

 

 

【산책】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시는 첫 구절에서 이미 모든 것을 말하는 경우가 있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이렇게 치명적인 첫 구절을 본 적이 있는가.

 

요즘 말로 바꾸면

“도대체 넌 왜 그러니?”

“넌 뭐 땜에 그러는 거니?”

이쯤 될 수 있겠다.

 

이런 일상적인 말도 시가 될 수 있다?

 

아니다.

 

오직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이렇게 써야만 시가 된다.

 

사랑하는 당신, 당신은 왜 내 마음을 이토록 아프게 하십니까?

 

왜 나를 죽도록 아프게 하십니까?

 

결코 당신은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나를, (어쩌면 당신도 사랑하는 나를) 이토록 죽을 만큼 아프게 만드는 일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시면 안 됩니다.

 

당신은 무슨 까닭에 나를 이토록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 속에 밀어 넣으십니까?

 

그래서 나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생각한다.

 

당신은 왜 떠났을까?

 

지금 떠나지만 아주 떠나는 것은 아니야.

 

이 말은 거짓말일까. 다시 오겠다는 말일까. 그저 아무 말이나 던진 것일까.

이별의 말로 꽤 그럴싸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약속도 약속이라고 하고 간 것일까.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이렇게 얕은 개울에는 빠져 죽을 수도 없는데……

 

옛날을 떠올리며 아무것도 비추지도 못하는 여울목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이렇게 주저앉아서 당신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고 묶고 조이고 다지고……

 

왜 사랑을 하고, 왜 떠나는 것일까?

 

사랑은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시작했던 것 아니었던가.

 

사람은 떠나도 사랑은 남는 것일까.

 

떠나도 잊지 말라는 당부는 사람의 목을 매는 새끼줄인가.

 

왜 사람을 두 번 죽이는가.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마지막 구절은 다시 첫 구절로 이어진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위의 구절을 굳이 다시 번역하자면

니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이 개자식아!

 

 

 

 

김소월의 님은 왜 봄에 떠나는 것일까?

 

진달래꽃이 필 때,

풀포기가 돋아나고 봄바람에 잔물이 헤적일 때,

 

 

아이유 <개여울>

www.youtube.com/watch?v=kj71jzO5U8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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