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라이너 마리아 릴케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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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라이너 마리아 릴케 <고요>

by 브린니 2020. 9. 2.

고요

 

 

너는 들리는가, 사랑하는 이여, 나는 두 손을 쳐든다-

너는 들리는가, 이 술렁이는 소리가······

고독한 사람의 몸짓에는

많은 사물이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을까.

너는 들리는가, 사랑하는 이여, 나는 눈을 감는다.

이것도 소리가 되어 너의 귀에 닿는다.

너는 들리는가, 사랑하는 이여, 나는 다시 두 눈을 뜬다······.

그러나 왠지 너는 여기 없다.

 

보일 듯 말 듯한 나의 움직임이

비단 같은 고요 속에 뚜렷이 떠오르고,

지극히 약한 자극도 지워지지 않고

먼 곳에 드리운 장막에 찍혀 나온다.

나의 숨결에 따라

별이 뜨고, 별이 진다.

나의 입술에 마시란 듯이 향기가 밀려온다.

나는 먼 곳에 있는 천사들의

손목을 분별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랑하는 너만은

보이지 않는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체코, 독일 1875-1926)

 

 

【산책】

너에게 나의 몸짓은 보이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는 나의 사랑에 응답하지 않는다.

 

아무리 사랑해도 너는 보이지 않는다.

너는 너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손끝하나 허락하지 않는구나.

 

너는 왜 너를 사랑하는 사람을 보지 않고 다른 곳을 보고 있니?

왜 너는 사랑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처럼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거니?

 

고독한 사람의 몸짓에는

많은 사물이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을까.

 

아무리 세상의 다른 모든 것이 나를 바라본다 해도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들이 나를 인정한다 해도

 

네가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펄럭이고 있는가.

바람만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고, 다시 돌아와 나를 때리는데……

 

아무것도 더는 바랄 수 없는,

더 이상 외치고, 발악할 수 없는,

사랑의 말도, 몸짓도 그치고……

 

너는 비단 같은 고요 속에서 숨어 있다.

 

사랑을 외면한 채.

 

너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 이에게 너의 사랑을 주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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