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메디오스 바로 <레메디오스 바로, 연금술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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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레메디오스 바로 <레메디오스 바로, 연금술의 미학>

by 브린니 2020. 9. 2.

레메디오스 바로는 초현실주의 여성 미술가(Remedios Varo 1908~1963)입니다. 스페인에서 태어나 활동하던 스페인 내란을 겪고 파리로 건너가 초현실주의 그룹과 교류하다가 2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멕시코로 망명하여 활발하게 활동하던 돌연 심장발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레메디오스 바로

 

그녀의 신비로운 미술 작품은 우아하면서도 과감하게 우주와 자연, 인간의 비밀을 말하여주는 듯합니다. 먼저 그녀의 여성주의적 시각이 나타난 삼면화 연작을 살펴보고 싶습니다. 작품들은 그녀가 사망하기 2~3 전에 그린 것으로 그녀의 완숙한 사상체계를 엿볼 있습니다.

 

먼저 삼면화1-<탑을 향해>(1960)라는 작품은 소녀들이 벌집 같은 집에서 나와 일터로 향합니다. 마치 최면술에 걸린 것처럼 멍한 표정으로 가는데, 소녀만이 최면술에 저항하듯이 반짝 눈으로 정면을 바라봅니다.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너도 우리에게 최면을 거는 사람이잖아. 미안하지만 나는 걸려라는 말을 하듯이 도발적인 눈빛이 인상적입니다.

 

 

번째 삼면화2-<지구의 덮개를 수놓으며>(1961)라는 작품을 보면, 소녀들이 탑에 갇혀 감시를 받으면서 지구의 덮개를 수놓고 있음을 있습니다. 덮개로 인해 세상에는 바다와 배가 생기고, 건물들이 생기며, 나무와 동물들이 생겨나는 것을 있습니다.

 

 

피땀을 들여 세상을 낳고 기르고 유지시키는 여성성의 특성을 표현하되 그것이 위에서 명령되어진 억압 구조 속에 놓여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은 아름답기까지 하여 눈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림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아까 삼면화1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항하는 눈빛을 보내던 소녀는 감시자 몰래 소녀 자신이 연인과 함께 있는 모습을 수놓습니다. 덮개는 지구상에서 현실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녀가 몰래 수놓은 연인의 모습

 

번째 삼면화3-<도망>(1961) 삼면화2에서 소녀가 몰래 놓았던 수가 현실이 되어 연인과 함께 도망을 치는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소녀와는 달리 연인은 붉은 계통의 이글이글한 옷을 입고 사막을 건너 동굴로 이끌어갑니다. 연인을 바라보는 소녀의 눈망울은 호기심과 의문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인지 없으나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소녀의 용기가 보입니다.

 

지금까지 여성의 역사를 장악해온 질서를 벗어나면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모래바람이 가득한 사막과 어두운 동굴이 기다리겠지만, 소녀는 그곳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기에 경계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레메디오스 바로의 그림이 아름다운 것은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가득차 있으면서도 여성적 아름다움을 함께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성이 모험적인 세계로 나아감에 있어 남성을 짓밟거나 남성을 배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새로운 길로 나아갈 사랑을 품고 나아갑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각은 현실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현실을 짓는 것은 현실이 아닌 어딘가입니다. 소녀가 수를 놓던 위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레메디오스의 그림에는 신적인 요소가 가득합니다. 삼면화를 그렸던 시기에 그린 하나의 작품 <신의 부르심>(1961) 보면 명확히 드러납니다.

 

 

그림의 어두운 배경과는 달리 신의 부르심을 받은 여인의 몸에는 빛이 가득합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우주로 날아올라 신적인 계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걸어가는 양쪽으로 마치 바위와도 같이 벽에 눌러붙은 사람들이 눈을 감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녀의 길을 알지 못하며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우주의 의도와 연결되어 있어 뚜벅뚜벅 부르심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녀의 목에는 연금술의 막자 사발을 걸고 있습니다. 연금술이란 그대로 금을 만드는 화학적 방법입니다. 낯선 단어를 종교 신비주의에서 많이 사용합니다.

 

성경에도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기23:10) 쓰여있듯이 연금술이라는 낱말은 정신과 영혼의 정련이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됩니다. 분석심리학자 C. G. 융은 그의 저서에서 연금술에 대해 대단히 방대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으며 인간은 무의식 안에서 스스로 자기를 정련하는 연금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레메디오스 바로와 함께 활동했던 멕시코 초현실주의 예술가 그룹은 금주가이며 채식주의자들인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흔히 현대 예술가들의 삶은 일반적인 도덕 윤리의 선을 넘어서는 과감한 일탈과 저항으로 어둡고 침울하며 병적이고 퇴폐적인 그늘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레메디오스 바로는 신적 부르심에 반응하는 정신과 영혼의 연금술적 삶을 살아감으로 우아함을 잃지 않은 같습니다.

 

레메디오스 바로는 작품에 대해서 스스로 설명하면서, 목에 연금술의 막자 사발을 것은, 물질을 섞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초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스페인 내란과 세계2차대전이라는 전쟁의 극한 상황을 견뎌온 , 남성 질서 속에서 억압되어 살아가는 여성의 삶에 대한 민감한 저항의식 속에서 그녀는 더욱더 강하게 현실을 초월하고자 하는 의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우아하고 신비로우면서도 저항의식을 품고 있는 그림과 달리 그녀가 편의 글은 매우 풍자적이고 장난스러운 뉘앙스를 풍깁니다. 당시 초현실주의자들이 하듯이 그녀 역시 사회의 상식을 블랙 유머로 감추는 동시에 상상력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여러 가지 게임을 즐겼는데, 중의 하나가 바로레시피시리즈입니다.

 

마치 마녀의 레시피처럼 그녀의 재료에는 식물의 뿌리, 붉은 벽돌, 빨래집게, 심이 들어간 코르셋, 가짜 수염, 송아지 등이 들어갑니다.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기존 사회 질서에 반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중세 마녀사냥에 희생되어간 여성들에 빗대어마녀 칭하였는데 레메디오스 바로 역시 대열에 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던가 봅니다.

 

 

정신분석에 대한 식견을 가지고 자신의 꿈을 기록하며 무의식의 기술인 다다이즘의 경향을 따르기도 하고, 과학에의 맹신에 대한 비판으로 과거 인류의 진화사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우스꽝스러운 논리를 펴는 유사논문을 쓰기도 합니다.

 

레메디오스 바로가 인류의 조상이라고 만든 호모 로당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초현실주의 예술가로서의 레메디오스 바로의 정체성을 말해주기는 하지만, 그림 이외의 이런 작업들은 그녀의 그림이 보여주는 만큼의 고도로 세련된 예술성을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일련의 예술 사조적 경향성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나 스캔들과 같을 뿐입니다.

 

그녀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는 맺는 대지의 여성성을 품은 화가로서 땅과 풀의 옷을 입고, 우주의 의도와 계시의 빛을 받아 자연을 지휘하듯 있는 모습을 그린 <태양의 음악> 감상함으로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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