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우스와 세이렌 ― 그리스신화 읽기 4
본문 바로가기
독서 리뷰

오디세우스와 세이렌 ― 그리스신화 읽기 4

by 브린니 2020. 8. 31.

꿀처럼 달콤한 죽음으로의 초대

 

키르케를 만난 오디세우스는 헤르메스의 도움으로 키르케가 주는 즙을 먹고도 중독되지 않았다.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에게 동침을 제의하고, 오디세우스는 돼지로 변한 동료들을 되돌려달라는 조건부로 키르케의 침상에 오른다.

 

오디세우스는 키르케와 1년 동안 부부처럼 살면서 고향 이타케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잊어버린다. 전우들이 재촉하자 오디세우스는 키르케에게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오디세우스가 떠나게 되자 키르케는 항해 중 만나게 되는 위험들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세이렌이 사는 해협을 건너갈 때는 오디세우스는 몸을 돛대에 묶고 세이렌의 노래를 들어도 좋지만 전우들은 밀랍으로 귀를 막아 세이렌의 노래를 듣지 못하게 한 채 노를 저어 해협을 벗어나야 한다고 일렀다. 키르케가 알려준 방법대로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키르케와 향락을 즐기면서 시간을 낭비한다. 고향에서 아내와 아들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다른 여자와 즐기느라 가정을 잊어버린 것이다. 전우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했을 때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키르케와 관계를 끝낸다.

 

그리스신화에는 성에 대한 윤리의식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스 시대가 아직 일부일처제가 정립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어쨌든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보이는 엄격한 율법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신화는 종교가 되지 않고, 이야기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신화는 신들에 관한 이야기일 뿐 경전이 아니다.

 

그리스 신들은 성적 윤리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 그들은 성을 무한히 즐기지만 윤리로 가로 막지는 않는다. 다만 질투하고 복수할 뿐이다. 배우자가 다른 상대와 불륜을 저지를 경우 분노하면서 이를 응징한다. 이 응징은 죄에 대한 벌이라기보다는 질투나 분노 등 감정의 폭발로 인한 보복에 불과하다.

 

그리스 시대의 성문화는 어떤 윤리의식에 의해 지배되기 보다는 양적인 면에서 관리 되었다고 한다. 성을 즐기되 양적으로 너무 지나치지 않으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것이 납치에 의한 강간이든, 불륜이든, 동성애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저 너무 많이 즐기는 것은 좀 곤란하다는 정도였다. 어쩌면 타인이 나보다 더 즐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일 수도 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12권에는 키르케가 떠나는 오디세우스에게 세이렌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대는 먼저 세이렌 자매에게 가게 될 것인데

그들은 자기들에게 다가오는 인간들은 누구나 다 호리지요.

누구든지 영문도 모르고 가까이 다가갔다가 세이렌 자매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그의 아내와 어린 자식들은 더 이상 집에 돌아온

그의 옆에 서지 못할 것이며 그의 귀향을 반기지 못할 거예요.

세이렌 자매가 풀밭에 앉아 낭랑한 노랫소리로 그를 호릴 것인즉

그들 주위에는 온통 썩어 가는 남자들의 뼈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고 뼈 둘레에서는 살갗이 오그라들고 있지요.

그대는 얼른 그 옆을 지나가되 꿀처럼 달콤한 밀랍蜜蠟을 이겨서

전우들의 귀에다 발라 주세요. 다른 사람은 아무도 듣지 못하도록

말예요. 그러나 그대 자신은 원한다면 듣도록 하세요.

그러나 그대는 돛대를 고정하는 나무통에 똑바로 선 채 그들로 하여금

날랜 배 안에다 그대의 손발을 묶게 하되 돛대 자체에 밧줄의 끄트머리들이

매이게 하세요. 그러면 그대는 즐기면서 세이렌 자매의 목소리를 듣게 될

거예요. 그리고 그대가 풀어 달라고 전우들에게 애원하거나 명령하면

그들이 더 많은 밧줄로 그대를 묶게 하세요.

 

키르케는 꿀처럼 달콤한 밀랍을 이겨서 전우들의 귀에 발라 주되 다른 사람은 아무도 듣지 못하도록 하고, 오디세우스는 원한다면 세이렌의 목소리 혹은 노래를 듣도록 하라고 충고한다.

 

키르케의 말은 매우 에로틱하게 들린다. 우선 전우들의 귀에 발라주는 밀랍은 꿀처럼 달콤한 밀랍이다. 꿀처럼 달콤하다는 말은 미각에 관련된 수식어다. 그런데 귀에 바르는 밀랍에 이 수식어를 쓴다는 것은 세이렌의 말 혹은 노래가 꿀처럼 달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꿀처럼 달콤하다는 것은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의 밀어密語와도 같다.

 

세이렌의 말이나 노래는 연인이 속삭이는 사랑의 밀어처럼 귀를 자극한다. 그래서 세이렌의 말이나 노래를 들은 남자들은 홀려서 세이렌에게 다가가려 한다. 배를 버리고 물로 뛰어 들어 헤엄쳐서 가거나 배를 몰고 세이렌에게 돌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에게만은 세이렌의 목소리나 노래를 듣고 싶으면 맘껏 들으라고 권한다. 다만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에게 접근하는 것은 막아야 하기에 몸을 돛대에 묶으라고 한다. 오직 듣기만 하되 세이렌과 조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키르케가 말한 대로 오디세우스 세이렌이 사는 해협을 건너가게 된다.

오디세우스는 전우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먼저 우리더러 놀라운 세이렌 자매의 목소리와

그들의 꽃이 핀 풀밭을 피하라고 명령했소. 그리고 그녀는

오직 나만이 목소리를 들으라고 했소. 그러니 그대들은

내가 돛대를 고정하는 나무통에 똑바로 선 채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못하도록 나를 고통스런 밧줄로 묶되 돛대 자체에 밧줄의 끄트머리들이 매이게

하시오. 그리고 내가 그대들에게 풀어 달라고 애원하거나 명령하거든

그 때는 그대들이 더 많은 밧줄로 나를 꽁꽁 묶으시오.

그리고 오디세우스는 이것을 행동으로 옮긴다.

나는 순서대로 모든 전우들의 귀에다 그것을 발라 주었소.

그리고 그들은 배 안에서 돛대를 고정하는 나무통에 똑바로 서 있는

나의 손발을 동시에 묶고 돛대 자체에 밧줄의 끄트머리들을 매더니

그들 자신은 앉아서 노로 잿빛 물을 쳤소.

사람의 고함 소리가 들릴 만한 거리만큼 떨어졌을 때

우리는 재빨리 내달았소. 그러나 세이렌 자매도 자기들을 향하여 가까이

다가오는 날랜 배를 못볼 리 없는지라 낭랑한 노랫소리를 울리기 시작했소.

 

자, 이리로 오세요, 칭찬을 많이 듣는 오디세우스여, 아카이아 인들의 위대한

영광이여. 이 곳에 배를 세우고, 우리 둘의 목소리를 듣도록 하세요.

우리 입에서 나오는 감미롭게 울리는 목소리를 듣기 전에

검은 배를 타고 이 옆으로 지나간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어요.

천만에, 그 사람은 즐기고 나서 더 많은 것을 알아 가지고 돌아가지요.

우리는 넓은 트로이아에서 아르고스 인들들과 트로이아 인들이

신들의 뜻에 따라 겪었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풍요한 대지 위에서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알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그들이 고운 목소리를 내며 말하자 내 마음은 듣고 싶어 했소.

그래서 나는 전우들에게 눈짓으로 풀어달라고 명령했소.

그러나 그들은 몸을 앞으로 꾸부리며 힘껏 노를 저었소.

그리고 페리메데스와 에우륄로코스가 당장 일어서더니

더 많은 밧줄로 나를 더욱더 꽁꽁 묶었소.

우리가 배를 몰아 그들 옆을 지나가고

세이렌 자매의 목소리와 노랫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자

내 사랑하는 전우들은 지체없이 내가 그들의 귀에다 발라 준

밀랍을 뗐고 나도 밧줄에서 풀어 주었소.

 

과연 오디세우스는 무엇을 들었을까.

 

세이렌은 자신들의 노래를 들은 사람은 즐기고 나서 더 많은 것을 알아 가지고 돌아간다고 말한다. 넓은 트로이아에서 아르고스 인들들과 트로이아 인들이 신들의 뜻에 따라 겪었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풍요한 대지 위에서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이렌의 노래를 들은 사람은 첫째 즐기고, 둘째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키르케 역시 오디세우스에게만 세이렌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즐기라고 했다.

오디세우스는 과연 무엇을 즐기는가.

 

오디세우스가 즐기는 것은 에로틱한 사랑의 밀어인가. 단지 귀로만 즐긴다고 해서 정말 즐기는 것일까.

즐긴다 해도 단지 부분적으로 즐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부가 되려면 몸을 묶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세이렌에 가까이 다가가면 죽음을 맞기에 몸을 묶을 수밖에 없다.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부분적인 즐김은 마치 다이어트 콜라 아니면 디카페인 커피를 연상케 한다. 콜라와 커피를 즐기지만 뭔가 핵심이 빠진 듯한 즐김인 것이다. 말하자면 건강을 위해서, 죽기 싫어서 해로운 것은 쏙 빼고 적당히 즐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오디세우스는 즐기되 죽지 않을 만큼만 즐기는 것이다.

 

세이렌은 예전에 아르고스 원정대의 일원이었던 오르페우스와 노래 대결에서 패한 적이 있다. 오르페우스의 음악은 지옥에서도 감탄을 불러일으킬 정도였으니 세이렌의 노래 역시 이에 필적할 만했기에 대결을 펼친 것이리라.

 

어쩌면 세이렌의 노래 그 자체 혹은 세이렌의 노래를 즐기는 것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화는 그것이 무엇인지 속시원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노래를 즐기고 난 뒤엔 대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아는 세이렌으로부터 지혜를 얻게 된다. 오디세우스는 이미 지혜로운 사람이었는데 날개를 달게 되는 셈이다.

 

세이렌의 노래와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즐기기도 하고, 지혜를 얻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그는 죽는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즐기든 지혜를 얻든, 동시에 죽는다! 

세이렌의 노래에 홀린 남자들은 모두 시체가 되어 꽃이 핀 풀밭에 뼈로 쌓여 있다.

 

이것은 왠지 성서에 나오는 선악과를 떠올리게 한다.

신은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과실을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명령한다. 먹으면 죽는다!

 

뱀은 하와에게 그렇지 않다고 유혹한다. 오히려 신처럼 될 것이라고 한다.

하와에게 선악과는 보기에 좋고, 먹음직스럽고, 지혜롭게 할 만한 열매처럼 보였다.

하와는 그것을 따먹었고, 아담도 먹게 했다.

 

선악과를 먹자 인간들은 눈이 밝아져 선악을 구분하게 되었다. 신도 인간이 선악을 분별하는 면에서 신들 중 하나와 같이 되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그 대가로 죽음을 받게 된다.

 

세이렌의 목소리나 노래 자체는 선악과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뱀의 유혹에 가깝다. 뱀의 유혹이 거짓말이듯이 세이렌의 유혹도 순전히 거짓일 수 있다. 아무튼 꿀처럼 달콤한 유혹하는 말을 듣고 세이렌에게 접근하는 것이 선악과를 따먹으려는 행위와 같다면 몸을 묶어서 막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민한 독자들은 세이렌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침묵했는지도 모른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귀를 막을 필요도 없고, 오디세우스가 몸을 묶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세이렌은 여인의 얼굴을 하고 있고, 몸은 새의 형상이라고 한다. 후대 사람들은 이 여인에게 새의 몸이 아니라 아름다운 여인의 육체를 부여했으며 인어와 같은 형상으로 묘사했다. 아마도 여자 얼굴에 새의 몸이란 그리 에로틱하게 보이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래서야 어디 남자들을 홀릴 수 있겠는가.

 

얼굴은 여인, 몸은 새의 형상을 한 세이렌

세이렌은 오늘날 위험을 경고하는 사이렌의 역할을 감당한다.

그렇다면 역설적이게도 세이렌은 오디세우스에게 어떤 즐김, 어떤 향유를 권유하는 동시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죽음에 이른다고 경고하는 대상물 이라고 할 수 있다.

 

오디세우스가 키르케와 1년 동안 즐긴 뒤 세이렌에게 접근해서 더 많이 즐기는 것은 그리스의 성문화에서도 넘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죽음에 가까이 가는 잉여 향락일 수 있다. 아마도 세이렌은 그리스 남자들에게 이것을 경고하는 사이렌으로서 기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이렌의 목소리는 노래가 아닌 침묵, 텅 빈 것, 알맹이 없는 거짓 유혹, 모든 것 같지만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댓글